필자 소개
최우리 <한겨레> 기자. 기후변화팀에서 기후위기와 환경,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몇해 전 여름, 미국 올랜도에서 놀이공원인 시월드에 갔다. 시월드의 대표 상품인 돌고래와 범고래 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쇼를 보면서 내가 애써 떠올린 것은 자연의 소리였다. 물 밖으로 높게 튀어오르고 지느러미로 물을 튕기고 난 뒤 사육사에게서 죽은 생선을 받아먹는 고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연의 소리를 닮은 음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종일 놀이공원을 돌며 고래들의 쇼만 4번 봤다. 그러고 나자 첫 공연 때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범고래의 역동적인 모습에 감동했지만 번쩍거리는 조명과 시끄러운 클럽 노래 소리의 진동을 견디며 수차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공연장이 슬슬 지겨워졌다. 바닷속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셀 수 없이 반복해온 고래들에게 이곳은 노예노동의 현장이었다. 그날 밤 화가 났고 우울했다.
동물원이나 수족관이 아닌 바다에서 돌고래나 범고래를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본 주변 사람들 중에도 바다에서 고래를 직접 만난 것 같다며 감동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은 고래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사실 고래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래는 중요한 상징을 지닌다. 정확하게는 고래를 닮은 대형 해양생명체 ‘툴쿤’이다.
툴쿤과 고래, 사냥하는 인간
툴쿤 사냥 시퀀스는 현실의 고래 사냥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빠르고 힘이 센 고래를 잡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첨단의 기술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고래를 한 방향으로 몰아세운 뒤 몸에 작살을 꽂거나 그물을 던지는 방식은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전통처럼 자행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래 사냥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을 떠올릴 수 있도록, 영화에서도 아시아계 배우가 툴쿤 사냥을 위해 잠수함을 운전한다. 인간에게 포획된 어미 툴쿤 곁에서 새끼가 떠나지 못하는 장면은 모성애가 뛰어난 어미 고래를 잡기 위해 새끼 고래부터 포획하는 현실 속 상황과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툴쿤은 영혼의 친구인 나비족과 눈빛으로 교감하고 삶을 공유한다. 반면 인간은 돈을 벌겠다는 욕망만으로 툴쿤을 죽인다. 비싸게 거래되는 툴쿤의 신체 일부를 착취하기 위해 인간보다 현명하고 감성이 풍부한 툴쿤의 생명을 쉽게 빼앗는다. 지금도 전세계 고급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샥스핀 요리에 쓰일 지느러미를 얻기 위해 쌍끌이 그물로 상어를 잡고 있다. 배 위에서 지느러미만 잘라낸 선원들은 다시 상어를 바다에 버린다. 지느러미 없는 상어는 앞으로 헤엄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다밑으로 가라앉는다. 아가미로 물을 흘려보내지 못하는 상어는 헤엄치며 입으로 숨을 쉰다. 그러나 지느러미가 없어 헤엄치지 못하는 상어는 결국 죽는다. 2016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오찬 요리로 샥스핀 찜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샥스핀 반대 여론이 높아졌고 이후 서서히 샥스핀 요리를 하는 국내 호텔 수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의 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를 지나며 최근 오름세로 돌아서고 있다고 한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비법을 찾기 위해 나이든 쥐와 젊은 쥐를 상대로 동물실험도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젊은 쥐에게서 피를 뽑아 나이든 쥐에게 주입할 경우 회춘 효과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현실에 적용할 경우 사회적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불로장생의 의약품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중단됐지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해답을 명확히 아는 인간이 있을까.
현재 인간은 지구와 모든 생명의 지배자다. 과학계에서는 약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지질시대, 현세 중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대를 떼어내 ‘인류세’라고 따로 부르자는 목소리가 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바꿔온 역사가 남긴 상처가 깊어 이를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169년 지구, 영화와 얼마나 다를까
인간의 지배를 받은 지구는 병들어갈 것인가. 영화 속 지구는 2169년이 되자 이미 병이 들었다. 인간은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야 한다. 경기 침체와 물가 인상 등 당장 내일, 내년의 일도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먼 미래를 상상할 때 2169년 지구의 모습이 영화와 다를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지구의 기온이 점차 오르는 현상을 가리켜 ‘지구온난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용어는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후변화’로 바뀌었다. 이제는 그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후위기’라 부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를 통해 전세계 수천명의 과학자가 지난 30여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 온난화 현상이 인간의 활동으로 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했기 때문이라는 데까지 의견이 일치했다. 최근 발표한 과학자들의 소명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탄소 배출이 지속된다면 2030~40년 무렵이면 지구가 특정 임계점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당장 인류가 멸망하고 사회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로 돌아가기에는 늦어버린 시점, 과학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한 시점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로부터 150년 정도가 지난 2169년의 미래, 인간이 더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어 새로운 행성을 찾아야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공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현실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2022년 12월의 한파와 폭설로도 우리는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기후위기로 인한 변화가 단순히 이상기후와 재난 상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이 먹통이 됐을 때 닥치는 혼란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비좁게 한다. 지구가 아닌 판도라를 침략하고 나비족과 툴쿤 같은 다른 생명체를 공격하고 이용하는 2169년 인간의 모습에서 슬픔과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지난 3~4년간 전세계 기후운동에 불을 지핀 스웨덴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와 미래 세대들은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하고 병들어가는 지구를 보며 마음 아파한다. 누군가는 이들의 적극적인 실천과 분노에 의아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섬세하고 예민하게 시대를 아파할 수 있는 이들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제이크(샘 워딩턴)와 네이티리(조에 살다나)의 첫째 딸인 키리(시고니 위버)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고통을 공감하는 캐릭터다. 그의 뛰어난 환경 감수성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와 아름다운 자연물을 온몸으로 느끼는 우리 주변의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환경 감수성이란 무엇일까. 기후환경 기사를 쓰면서 자주 고민한다. 모든 생명과 환경 다양성, 사회의 조건에 대해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 영화 안팎의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태도가 필요하다. 키리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의 참여와 다른 생명을 이해하는 마음에 작은 실마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