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가 다시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를 끝으로 페이즈4가 문을 닫고 페이즈5가 본격적인 시동을 건다. 페이즈5의 문을 여는 건 다름 아닌 <앤트맨>이다. 5년 만에 돌아온 <앤트맨>의 신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서 이후 MCU를 책임질 최종 빌런 캉이 마침내 등장한다. 언뜻 그간 MCU에서 감초나 조연처럼 활약해온 앤트맨이 전면에 나서는 게 이색적으로 다가오지만 이건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우주를 무한히 확장해온 MCU는 드디어 양자에까지 발을 들였기 때문이다. MCU는 여전히 흥미롭지만 그만큼 방대해졌다. 페이즈5의 시작에 앞서 그간 너무 많은 영화와 시리즈가 나와 복잡해진 MCU의 지도를 한번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미리 보기와 함께 지난 페이즈4를 정리해보았다. 여기에 앞으로 등장할 페이즈5의 기대 요소와 함께 MCU가 나아갈 향방을 가늠해본다. 덧붙여 앤트맨 역의 폴 러드와 캉 역의 조너선 메이저스의 인터뷰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페이즈5의 시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앤트맨>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이자 MCU 페이즈5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타노스가 사라진 후 스캇 랭(폴 러드)은 순조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고 마침내 가족, 그러니까 파트너 호프 반 다인(에반젤린 릴리), 호프의 부모 재닛(미셸 파이퍼)과 행크(마이클 더글러스), 그리고 사랑하는 딸 캐시(캐스린 뉴턴)와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캐시는 아빠 스캇과 달리 과학기술, 특히 양자 영역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대단하다. 심지어 재능도 있어 양자 영역에 신호를 보내는 기계를 만드는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스캇과 호프, 재닛과 행크 모두 양자 영역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출구 없는 양자 영역을 헤매는 중에 앤트맨 패밀리는 그곳에서 군림하는 정복자 캉(조너선 메이저스)과 조우한다. 캉이 머무는 양자 세계는 한창 전쟁 중이다. 시간의 주인을 자처하는 캉의 계획을 알게 된 이들은 스캇과 캐시, 호프와 재닛과 행크가 팀을 이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그저 <앤트맨>의 속편이 아니라 새로운 페이즈에 접어든 마블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그에 따라 그간 MCU에서 양념 같은 느낌으로 가볍고 유쾌한 모험을 주로 보여줬던 <앤트맨>의 이전 작품과 달리 호러와 스릴러가 살짝 가미된 듯 한층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앤트맨>의 시작과 끝, 가족이라는 팀
슈퍼히어로는 정체성의 숙명을 안고 산다. 아이언맨은 ‘지식의 저주’로 불안을 안고 살고, 캡틴 아메리카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 굳건한 의지로 팀을 이끈다. 스파이더맨에겐 ‘큰 힘과 책임’이 따르고, 토르는 이제 사랑과 자유를 외치며 우주를 누빈다. 평범 그 자체인 앤트맨, 스캇 랭의 중심은 언제나 가족이었다. 무리를 짓는 개미처럼 앤트맨은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한명의 ‘맨’이 아니라 팀으로 움직인다. 페이턴 리드 감독은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캔버스가 훨씬 커졌지만 동시에 가족 관계를 더 깊이, 복잡하게 파고들어간다”고 밝혔다. 스캇 랭과 그의 파트너 호프 반 다인, 호프의 부모 재닛 반 다인과 행크 핌, 그리고 스캇의 딸 캐시 랭까지, 말하자면 이건 ‘팀 앤트맨’에 대한 이야기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는 가족 모험 영화다. 기본적으로 슈퍼히어로 가족이 양자 영역 안에서 모험에 휘말리는 이야기고 그 안에서 대서사적인 SF 전쟁 영화도 되고 성장담도 된다.”(제작자 스티븐 브루사드)
인생은 앤트맨처럼, 폴 러드의 남루한 매력
앤트맨을 앤트맨답게 하는 건 무엇일까. 물체의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만 있다면 누구나 앤트맨이 될 수 있고, 신체능력 등 여타 재능을 따져보면 스캇 랭은 같은 장비를 지닌 와스프보다 역량이 떨어진다고 해도 빈말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스캇 랭이 앤트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폴 러드의 남루한 매력 덕분이다. 폴 러드는 생활에 찌든 피로를 몸에 두르고, 지금이라도 마트에 나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함의 외투를 걸친 배우다. 허우대가 멀쩡해 보이지만 한끗 모자라고 시시해 보여서 더 매력적인 폴 러드는 마블에서 가장 인간적인 히어로 앤트맨의 매력을 살릴 최적의 선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앤트맨은 매 시리즈 보기 드문 성장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같은 청년이 성장하는 건 당연하게 다가오지만 스캇 랭 같은 위기의 중년이 진지하게 성장하는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뒤늦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든다. 이쯤 되면 스캇 랭과 폴 러드가 구분이 안될 지경인데 발빠른 마블은 이를 놓치지 않고 농담 같은 마케팅으로 적극 활용 중이다. 스캇 랭이 최근 앤트맨의 활약상을 담은 <스캇 랭-작은 남자를 지켜라>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실제로 아마존닷컴에서 판매 중이다. “잘하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라는 유쾌한 추천사는 앤트맨의 매력이 무엇인지 한줄로 증명한다.
양자역학의 세계, 퀀텀매니아
“여기에는 세계들이 있어. 세계 위에 또 세계가 있지. 시공간 밖이야. 우리 세상 밑 비밀 우주.” 30년간 양자 영역에 갇혀 있다 돌아온 재닛 반 다인은 자신이 겪은 미지의 세계를 또 다른 우주로 묘사한다. MCU는 꾸준히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왔다. 페이즈3가 우주의 탄생과 균형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페이즈4는 멀티버스라는 아이디어로 세계를 확장시켰다. 페이즈5는 양자 우주라는 또 다른 세계를 핵심 키워드로 한다. 양자역학은 한마디로 미지의 세계다. 다들 양자역학을 말하지만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다. 그저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양자역학 자체가 애초에 이해 범주 바깥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무언가 작동한다’고 상정하는 과학이다. 미지를 미지의 영역에 둔 채 활용하는 거라 해도 좋겠다. 페이즈5에서는 바로 이 양자 영역을 본격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 출발선에는 당연히 이를 경험하고 온 앤트맨 패밀리가 서 있다. <앤트맨과 와스프>(2018)에서 맛보기만 보여줬다면 이번엔 양자 세계를 본격적으로 묘사한다. “양자 영역은 세계관 창조 작업의 끝판왕이다. 도시들과 문명들을 디자인할 뿐만 아니라 그 안의 논리와 역사 또한 창조하고 그다음에는 그 안을 온갖 생명체, 존재, 구조물로 채워야 했다. 전자 현미경 사진부터 70, 80년대 헤비메탈 잡지 사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었다.”(페이턴 리드 감독)
최종 빌런, 정복자 캉의 등장
정복자 캉은 타노스 이후 마블의 한쪽 기둥을 책임질 빌런이다. 시리즈 <로키>에서 첫선을 보인 캉을 두고 로키는 ‘계속 존재하는 자’라고 표현한다. 마블 코믹스에서도 인기 있는 빌런 중 하나인 캉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존재로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단순히 강하다는 걸 넘어 창의적인 발상이 흥미로운 빌런이다. 캉이 관장하는 힘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캉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고 초월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로키>에 이어 이번에도 캉 역할을 맡은 조너선 메이저스는 이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두고 “나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인간관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그 말처럼 행크, 재닛, 스캇 등 각 캐릭터는 시간의 위협이나 약속에 대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처한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캉의 군대를 위해 만든 요새 크로노 폴리스와 또 다른 빌런 M.O.D.O.K도 모습을 드러내 기대를 자아낸다. 해외 평에서는 이미 캉의 존재감과 이를 연기한 조너선 메이저스의 카리스마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약하고 하찮은 히어로 앤트맨이 가장 강력한 존재인 정복자 캉과 맞선다는 점에서 어쩌면 최적의 빌런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