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미치지 않고서야’ 정도윤 작가,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작품의 기본값”
2023-03-17
글 : 조현나
<미치지 않고서야>. 사진제공 MBC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캐릭터의 힘

“어유, 소원 성취 하셨네.” “네, 앞으로 당 전무라 불러주세요.”(<미치지 않고서야>)

- <마녀의 법정>의 마이듬 검사(정려원)와 <미치지 않고서야>의 당자영 인사팀장(문소리) 모두 목표 의식이 뚜렷하고 원하는 바를 향해 고민 없이 돌진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입니다. 이런 성향의 캐릭터를 선호하나요? 혹은 특별히 마음이 가는 유형의 캐릭터가 있나요.

=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캐릭터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데 필수 조건이죠. 언제나 작품의 기본값이라 생각하며 작업해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자기 연민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마주해도 징징거리지 않고, 차라리 나를 괴롭게 한 장본인을 찾아가 뒤통수라도 한대 갈겨주고 오는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생각만 해도 유쾌하지 않나요?

“일단 소송 취하부터 하시죠. 안 그러면 2대 투자자로서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다 거절할 거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사진제공 정도윤

- <마녀의 법정>과 <미치지 않고서야> 둘 다 관객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드라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의도된 거라면 그렇게 스토리를 진행한 이유가 있나요.

= 원래 갈등을 길게 끌고 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갈등을 진득하게 끌고 가는 재주가 없기도 하고요. 나부터도 인내심이 부족한 시청자이기 때문에 빨리빨리 카타르시스를 터뜨려주지 않으면 채널이 돌아갈 것 같은 조바심이 들거든요.

- “필요하면 구걸도 하는 게 그게 인사예요. 최 부장님이 인사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쓰레기 같은 망할 놈의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빌어먹을 회사는 망해도 싸요”와 같이 거침없고 귀에 박히는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말맛이 살아 있는 대사들을 듣고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작가님만의 대사를 쓰는 노하우가 있는지요.

= 가끔 작두 타듯이 대사들이 신나게 쏟아져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온 대사들은 자연스럽고 진솔해서 나중에 TV로 볼 때도 편하게 흘러가더라고요. 근데 이건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상황이고 보통은 대사 쓸 때 검열을 많이 합니다. 얘가 지금 괜히 멋 부리며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나 마나 한 뻔한 말을 하고 있진 않은지, 아까 했던 말 또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등등이요. 한마디로 이 캐릭터가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말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를 많이 따져봅니다.

- <마녀의 법정> 때 단 한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마감 기한을 넘기지 않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있는지요.

= <마녀의 법정>은 방영 몇달 전에 편성이 확정된 경우라 촬영도 촉박하게 돌아갔어요. 대본이 하루라도 늦게 나오면 큰일나는 상황이라 마감을 꼭 지켜야만 했죠. 지금은 사전제작 시스템으로 바뀌긴 했지만, 대본이 늦으면 현장에서 준비하는 분들이 그만큼 고생하는 걸 알기 때문에 되도록 마감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고 글감을 찾나요.

= 글감이나 영감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오르기 때문에 일부러 찾으려고 하진 않아요. 다만 글감을 고를 때 저만의 기준은 있어요. 멀리 있는 거창한 이야기보다 가까이에 있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새 작품을 집필할 때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데 그때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써야 하지? 다른 소재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상황을 부정하는 단계가 꼭 오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무도 안 다뤘던 얘기니까 써볼 가치가 있다”라고 스스로 안심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 글 쓸 때의 루틴이 있으세요? 쓰는 장소나 시간이 정해져 있다거나 반드시 써야 하는 제품이 있다든지요.

= 대다수의 작가들처럼 저 역시 규칙적으로 일하고 주중 하루나 이틀은 꼭 쉽니다. 하루의 일정 시간은 딴짓하지 않고 집중력 있게 일하기 위해 특정 사이트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노트북에 설치해뒀어요. 인터넷이 글 쓰는 데 가장 큰 방해꾼이라…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 2009년 등단 이후 꾸준히 드라마 각본을 써오셨죠. 정도윤 작가님에게 글을 쓴다는 것,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출근해서 일하고 월급 받는 것처럼, 저도 주 5일이나 6일은 작업실에 나가 일하고, 그 대가로 생활을 꾸려가요. 다만 저 혼자 쓰는 글이 아니고, 많은 돈이 들어가고, 많은 분들이 함께 애를 써야 하는 대중예술이기 때문에 제가 쓴 이야기가 시장에 나왔을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역량을 다해 일하려 합니다.

사진제공 정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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