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윤 작가의 ‘이 장면, 이 대사’
정도윤 작가에겐 “대사를 쓰면서 행복한 순간이 확실히 있”다. “마지막회의 엔딩 신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하는 대사를 쓰는 순간이요. 드디어 이 대본 지옥에서 해방이구나 하는 후련함도 있지만, 16회 동안 온갖 고난을 겪은 주인공에게도 자유를 선물하는 느낌이 있어요.” 마이듬은 “지금부터 솔직하게 답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바로 그 유명한 마이듬 검사거든요”라고 당차게 외치며 <마녀의 법정>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정도윤 작가가 보내온 사진 속 대본의 지문처럼 ‘씨익’ 웃으며 말이다.
“<미치지 않고서야>의 엔딩 신에선 대사는 없고 지문으로 ‘작은 성취를 이루고 행복해하는…’이라고 쓴 것 같은데요. 워커홀릭인 반석(정재영)에게 진짜 행복을 선물한 것 같아서 저도 행복했습니다.” 개발자 반석 역시 진행하던 코딩 작업을 마무리하고,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미치지 않고서야>의 끝을 알린다. 크고 작은 굴곡을 넘어 마침내 정상에 선 주인공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웃으며 헤어진 두 사람의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에필로그
“그런 깡다구도 없이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합니까. 본인 밥그릇은 본인이 챙기는 거지. 이렇게 운다고 누가 챙겨주나. 울지 말고, 힘내고.” 최반석(정재영)의 무심한 말과 다독임에 심히 위로받던 시간들이 있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미치지 않고서야> 방영 당시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보니 마음이 따뜻해진 시청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듯하다.
또 다른 공통점을 꼽자면 다들 퇴근하고도 드라마를 보며 “다시 출근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것. <미치지 않고서야>의 편집본 영상엔 “이걸 왜 지금 봤을까”, “최근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 “결국 정주행하고 왔다”는 댓글이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시청자로 하여금 정주행하고, 재주행하고, 기어코 ‘잘 봤다’는 댓글까지 쓰게 만드는 작품. 정도윤 작가의 글이 지닌 힘에 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정도윤 작가는 사정상 대면 인터뷰가 어려워 서면으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아야 했다. 섭외가 뒤늦게 확정된 터라 답변을 작성할 시간이 적게 주어진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시간이 더 필요하면 이야기해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요청한 마감일 저녁에 칼 같이 날아든 메일. 짧게 주석까지 달린 답변지와 요청한 것보다 충실하게 온 사진들.
<마녀의 법정> 종방 후, 윤현민 배우가 “작가님은 한번도 대본 마감을 어기신 적이 없다”고 인터뷰를 통해 전한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첨부된 정도윤 작가의 작업실 사진을 보니 그의 신작을 얼른 정주행하고 싶어진다. 추가로 알고 싶은 것 한 가지. 그를 인터뷰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그의 마감 비법에 관해 보다 자세히, 꼼꼼히 물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