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행 티켓을 끊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화, 영상 마켓인 홍콩필름마트(The Hong Kong International Film and TV Market, 주최 홍콩무역발전국(HKTDC))가 4년 만에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들려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온라인으로 행사를 축소했던 홍콩필름마트가 올해는 3월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에서 열렸다. 다시 오프라인으로 나온 홍콩필름마트의 열기를 체감하기 위해 <씨네21>도 홍콩필름마트를 찾았다. 나흘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올해 홍콩필름마트 취재기와 함께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독설변호사>의 오위륜 감독과 2위의 <6인용 식탁> 천진훙 감독을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인터뷰를 전한다. 두 영화인의 인터뷰가 홍콩영화계의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때마침 비슷한 기간에 <헤어질 결심>으로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 참석한 배우 박해일도 만났다.
다시 열린 홍콩은 활기찼다. 봄날 같은 3월 홍콩 거리에서 양조위의 신작 <무명>의 포스터가 도배된 트램이 종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인 회랑을 따라 바쁜 홍콩 사람들이 출근을 재촉하고 있었다. 의외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드물었고, 점심시간에는 어깨를 부딪히지 않으면 쉽게 걷기 힘들만큼 많은 홍콩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홍콩의 밤풍경을 붉게 밝히던 네온사인의 상당수가 LED로 교체돼 풍경이 변한 건 낯설면서도 씁쓸했다. 홍콩 사람들의 행렬에 따라 회랑을 걸으며 홍콩필름마트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로 향했다. 영화 <폴리스 스토리> <젠 엑스 캅>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곳은 영화와 뗄 수 없는 운명인 공간이다. 오프라인으로 문을 연 홍콩필름마트 현장에 들어서니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실감했다. 전세계 총3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 세일즈, 바이어, 창작자(감독, 프로듀서, 제작자, 배우) 5000여명이 이곳에 모였다. 전세계 콘텐츠 산업을 움직이고 있는 방송사, 영화 배급사, 수입사 등 약700곳이 부스를 열어 손님을 맞고 세일즈를 시작했다.
필름마트에 들어서자마자 홍콩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부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간도> 시리즈로 홍콩누아르를 전세계에 알린 미디어 아시아는 홍콩의 골목길을 연상시키는 부스를 만들어 신작들을 소개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엠퍼러 모션 픽처스 부스는 모기업의 심볼인 시계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꾸미고 <금수지>를 홍보하고 있었다. <금수지>는 양조위와 유덕화가 <무간도> 시리즈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됐었다. 만다린 필름, 유니버설 필름, 실-메트로폴, 홍콩 OTT 플랫폼 VIU 등 홍콩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제일 앞줄을 차지했다. 그 뒤로 한국, 일본, 타이 등의 파빌리온이 꾸려졌는데, 패트릭 라우 HKTDC 수석부사장은 “올해는 중국의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거 참여했고, 한국과 일본 등 20개 이상의 국가별 파빌리온이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에서도 홍콩필름마트에 참여했는데 중동 국가의 홍콩필름마트 참석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한국, 일본 등 전세계 30여개국, 5000여명이 홍콩필름마트를 찾아
올해 홍콩필름마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대륙에서 많이 참가했다는 사실이다. 푸젠성, 광둥성, 후난성, 장쑤성, 산시성, 산둥성 등 대륙 각지에서 온 업체만 무려 330개 이상이라고 한다. 올해 홍콩필름마트에 참여한 업체의 약 절반 정도가 중국 본토에서 온 것이다. 패트릭 라우 HKTDC 수석부사장은 홍콩필름마트에서 중국업체의 참여가 늘어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한다. “작년 중국영화의 80%가 홍콩과의 합작으로 제작됐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공동 제작 혹은 합작을 하려면 홍콩을 통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급성장하면서 홍콩필름마트의 풍경도 바뀌었다. 아이치이, 텐센트, 유쿠 등 중국 3대 OTT 메이저 플랫폼이 처음으로 홍콩필름마트에 참가했다.
제작자 성룡과 감독 사정봉의 만남 <뉴 폴리스 스토리2> 양조위와 유덕화의 18년만의 만남 <금수지> 등 신작 홍콩영화 발표
둘째 날인 14일 오전, 필름마트의 열기는 고조됐다. 초대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공개된 엠퍼러 모션 픽쳐스의 쇼케이스에서 성룡, 양조위, 유덕화 등 홍콩 최고의 스타들이 총 출동했다. 나이를 많이 먹었음에도 인기가 여전한 스타 배우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뉴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신작인 <뉴 폴리스 스토리2>가 제작을 깜짝 발표했다. 지난 2004년 개봉했던 <뉴 폴리스 스토리>는 3부작으로 제작됐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에서 웃음기를 덜어내고 액션을 강화했던 작품으로, 그때 이후 10여년 만에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시 돌아온 성룡이 제작하고,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출연했던 배우 사정봉이 이 영화의 연출을 맡는다. 전작에서 선후배 형사로 만났던 성룡과 사정봉이 배우와 감독으로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뉴 폴리스 스토리2>의 제작 발표만큼이나 열기가 뜨거웠던 현장은 양조위와 유덕화가 나란히 섰을 때다. 두 사람은 <무간도> 시리즈 이후 18년만에 의기투합해 <금수지>로 다시 만났는데, 이 작품은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쇼케이스의 후반 홍콩 영화인들이 연대의 의미로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양조위와 유덕화가 나란히 서면서 많은 관계자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독설변호사> <6인용 식탁> 젊고 새로운 홍콩영화가 역대 홍콩 박스오피스 1, 2위에 올라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멈췄듯 홍콩영화계도 느리게 흘러갔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홍콩에서는 새로운 영화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코로나 19 기간에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1, 2위를 갈아치운 두 작품 모두 홍콩영화였다. 영화 <매염방>의 시나리오를 쓴 시나리오 작가 오위륜의 감독 데뷔작 <독설변호사>는 올해 춘절에 개봉해 역대 홍콩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익을 거뒀다. 이 영화가 극장에서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완화된 코로나 19 규제 덕분이기도 하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극장 좌석의 80% 수준만 허용되었지만, 올해 홍콩 질병 당국의 코로나 19 규제가 다소 완화되면서 극장 좌석 전체를 열 수 있었고, <독설변호사>가 그 혜택을 받으며 홍콩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2년 9월에 개봉한 천진훙 감독의 <6인용 식탁>은 가족 코미디 장르로, <독설변호사>에 이어 역대 홍콩영화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젊은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연달아 홍콩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이다. 홍콩영화 산업이 부지런히 젊고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은 덕분이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분위기가 좋아졌다.” <6인용 식탁>의 천진훙 감독은 “관객들이 SNS에 홍콩영화를 알리는 글을 올리고, 감상을 공유하는 일이 많이 늘었다”고 달라진 관객 분위기를 전했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홍콩영화를 봤다는 사실을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이 홍콩영화에 대한 지지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국영과 매염방이 호흡을 맞췄던 영화 <연지구>를 포함해 <장한가> <완령옥> 최근의 <초연>까지 여성 서사를 주로 연출했던 관금붕 감독을 홍콩에서 만났는데, 그 역시 “홍콩영화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영화산업이 과거 황금기로 돌아가기 쉽진 않겠지만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그는 전했다.
이같은 홍콩영화의 변화는 홍콩필름마트에서 열린 제작 지원 피칭 프로그램인 ‘홍콩-아시아필름 파이낸싱 포럼(The Hong Kong - Asia Film Financing Forum, 이하 HAF)’에서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HAF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은 홍콩의 젊은 여성감독의 프로젝트였다. 사샤 척 감독의 <플라이 투 더 문>은 HAF에서 5관왕을 석권하면서 제작비 55만 홍콩달러를 확보했다. 이 작품은 그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관금붕 감독은 일면식도 없던 사샤 척 감독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시나리오를 봐달라고 요청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시나리오가 훌륭해 제작자를 맡게 됐다”는 관금붕 감독은 이 영화가 “두 자매의 이야기와 홍콩의 역사를 엮은 드라마”라고 귀띔했다.
CJ, 롯데, 쇼박스 등 영화 배급사 불참...K드라마 강세
CJ, 롯데, 쇼박스 등 대형 한국 영화 투자배급사와 수입사 상당수가 홍콩을 찾지 않았다. 홍콩필름마트는 2월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러피안 필름 마켓에 이어 열리는 마켓으로, 중화권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인데도 올해 홍콩필름마트에 참석하지 않은 건 여러 이유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한령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중국에서 개봉하려면 수입 영화 쿼터에 포함되어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한국 배급사나 수입사들이 아직은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박희성 영화진흥위원회 국제교류지원팀 과장은 “적극적으로 합작을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국의 IP를 가져가 중국에서 리메이크하는 소극적 합작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예전처럼 교류가 활발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메가박스 플러스엠,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 바른손E&A 등은 홍콩필름마트에 찾았다. 메가박스 플러스엠은 김창훈 감독의 신작 <화란>과 이종필 감독의 <탈주>를 소개했고,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는 김한민 감독의 <노량: 죽음의 바다>와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를 알렸다. 바른손 E&A 역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과 이한 감독의 <달짝지근해>를, 콘텐츠판다는 박훈정 감독의 <더 차일드>를 각각 적극적으로 세일즈했다. 최윤희 바른손 E&A 이사는 “한국 시리즈에 대한 수요가 크지만,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수요가 완전히 없다고 보긴 힘들다”면서 “오히려 정말 매력적이고 좋은 영화를 찾으려는 수요가 남아있다”고 말한다.
영화배급사나 수입사가 예전만큼 출석율이 높지 않은 반면, 한국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사들은 대거 홍콩을 찾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꾸린 부스에 지상파 방송국 3사 KBS, MBC, SBS를 비롯해 스튜디오웨이브와 SLL, 스튜디오지니, CJ ENM 엔터테인먼트 부문 등 23개의 업체가 이번 필름마트에 참석했다. 웨스트월드 스토리가 제작하는 신작 시리즈 <룩 앳 미>에 출연한 배우 이민기, 한지현은 홍콩필름마트에서 열린 쇼케이스에 참여해 현지 프레스와 바이어들을 만났다. VIU에 서비스될 예정인 <모범택시2>의 배우 이제훈도 홍콩 현지의 열띤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4년만에 오프라인으로 문을 연 홍콩필름마트는 총 4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문을 닫았다. <폴리스 스토리>에서 홍콩 컨벤션&엑시비션 센터를 열심히 뛰어다녔던 성룡은 바로 그 장소에서 <뉴 폴리스 스토리 2>로 발표했고, 홍콩영화의 신예 사샤 척은 같은 공간에서 가능성을 인정 받아 첫 장편영화 제작비로 투입할 지원금을 받았다. 홍콩 영화의 전통과 새로움이 교차하는 홍콩필름마트. 오랜만에 만난 홍콩필름마트는 우리가 사랑했던 홍콩영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기회이자, 새로운 홍콩영화인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웨스트월드스토리 신작 <룩 앳 미>로 홍콩을 찾은 배우 이민기, 한지현
시리즈 <룩 앳 미>는 어떤 이야기인가.
한지현 K성형외과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로, 정우(이민기)가 범죄 피해자의 재건수술을 하면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얘기를 다룬다. 내 캐릭터인 민형은 당돌하고 솔직하고 자기 생각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는 형사다. 경력이 좀 있는, 촉이 좋고 분석력도 좋은 강력계 에이스라 몸도 잘 쓴다.
이민기 정우는 본래 뷰티성형계에서 유명한 성형외과의사인데 수사에 협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염산 테러라든지 아니면 병에 찔리는 식으로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목적의 재건 수술을 한다. 정우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잘 안 섞으려 하는 무덤덤한 사람이고, 속은 따뜻하나 굳이 표현을 하지 않는 유형의 캐릭터다.
<룩 앳 미>의 어떤 점에 끌려 작품을 택했나.
한지현 내가 여태까지 한 연기는 다 학생 역할이었다. 내 첫 성인 연기를 한 작품이 이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스토리가 재밌었다.
이민기 일단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성형외과를 다루는 점도 신선했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보니 에피소드들이 계속 있는데, 각각의 에피소드가 담고 있는 정서가 다채로웠다. 그리고 나도 의사역할은 처음이라 여러모로 새롭고 도전할 게 많았다.
각자의 직업을 연기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나.
한지현 원래 수사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많이 봤고, 액션스쿨에서 호신술과 포박술을 배우면서 기초 체력을 올리려고 노력했다. 액션스쿨에서 3시간만 훈련해도 눈앞이 하얘졌다. (웃음)
이민기 의사들이 수술 준비하는 과정이나 간호사들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봉합하는 실습도 하고, 집에 가져가서 연습도 했다.
영화 <블라인드> <순수의 시대> <나는 증인이다>를 연출한 안상훈 감독과 호흡을 맞춘다. 시리즈 현장이지만 영화 감독의 현장이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민기 영화는 늘 콘티 작업을 하잖나. 드라마에서는 콘티 작업을 하는 분들도 드물게 계시지만 거의 안 한다. 그런데 이번에 수술 장면을 연습하러 가서 보니 안상훈 감독님이 콘티작업을 다 해놓으셨더라. 만듦새 있는 숏들이 나올 것 같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만났으니 가장 좋아하는 홍콩영화를 꼽는다면.
이민기 사실 <천장지구>를 50번에서 100번 사이로 봤다. 집에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는데 계속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한지현 나는 <엽문>! <엽문>의 은근한 유머를 좋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