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으면 심심해. 애들이랑 있는 게 좋아.” 연보라가 아늑한 집을 떠나 군사훈련에 참가한 계기는 수능 가산점을 노리는 다른 친구들의 목적과 사뭇 다르다. 이 장면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매사 냉랭하게 구는 연보라의 평소 모습과 달라 의외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는 태블릿PC에 친구들 얼굴을 그려 간직하는 다정함을 숨기고 있다. 연보라의 매력 포인트인 이 간극은 곧 배우 권은빈의 과제로 돌아왔다.
“보라가 겉으로는 거칠어 보여도 무리지어 다니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는 아니다. 유독 조용한 애설(이연)에게 답답함을 느껴 자주 화를 내지만 그게 학교 폭력처럼 비치면 안됐다. 그래서 중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모난 태도로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으나 멀리서 친구들을 바라보는 아이. 다소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성향에도 권은빈은 자기만의 정답을 찾아냈다. “직설적인 말로 아이들을 짓누르기보다 분위기를 장악할 줄 아는 카리스마를 떠올렸다. 냉소적이면 서도 극한상황에서 아이들이 점차 따르고 싶어 하는 인물을 보여주고자 했다.” 천편일률적인 군복과 교복 차림 속에서 보라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권은빈은 게임을 떠올렸다. “감독님이 처음 제안하신 건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었다. 그와 비슷한 이미지를 찾다 보니 재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보라의 강한 의지와 결연한 모습이 게임 캐릭터와 닮아 보였다. 특히 보라는 추후에 놀라운 외형 변화를 꾀한다. 그런 점도 극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다.”
촬영 내내 현실을 방불케 하는 군사훈련도 받았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평범한 10대를 연기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사격, 장전, 총기 분해 등의 단어를 늘어놓는 배우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던 찰나, 밝은 목소리로 권은빈이 덧붙였다. “땡볕에서 훈련 과정을 촬영해 두피가 타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내추럴한 모습으로 촬영한 건 처음인데 그건 또 그만의 매력이 있더라. 뭐랄까, 꼬질꼬질한 게 생각보다 청순하다! (웃음)” 박수치며 해맑게 웃는, 보라와는 다른 표정의 권은빈을 보면서 강단 있고 굳건한 어린 전사가 어떻게 완성됐을지 더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