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슈가 Agust D 그리고 민윤기
2023-04-27
글 : 임수연
사진 : 이진혁 (출판 편집자)

그저 숨 쉬듯이 음악을 만들 뿐

방탄소년단(BTS)의 래퍼 슈가. 싸이의 <That That>과 아이유의 <에잇>을 프로듀싱하고 피처링한 Prod. SUGA. 그리고 4월21일 솔로 앨범 《D-DAY》를 발표한 아티스트 Agust D. 대체로 ‘방탄소년단 슈가’라고 불리는 인간 민윤기에게는 크게 세 가지 정체성이 있다. 13살 때부터 미디 음악을 만든 작곡가 지망생에서 거친 랩이 어울리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시절을 거쳐 3년여간 아이돌 연습생을 한 후 보이그룹으로 데뷔한 슈가의 다층적인 위치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 역시 이런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데뷔 초 방탄소년단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신인왕 방탄소년단–채널방탄>에서 슈가는 옥상에 올라가 방시혁 현 하이브 이사회 의장을 향해 “3년 전 방 PD님이 감언이설로 나를 속였다”고 아우성쳤다. 사연인즉슨 “윤기야, 너는 1TYM 같은 그런 그룹이 될 거야. 안무는 필요 없고 율동만 하면 돼. 랩만 열심히 하면 돼”라고 설득했으나 막상 데뷔를 하고 보니 “방송국에서 우리 안무가 제일 힘들다”는 것. 빅히트 오디션을 봤을 때만 해도 작곡가, 래퍼 부문에 지원했고 자신이 프로듀서가 될 줄 알았던 사람이 정신 차리고 보니 서태지와 1TYM의 계보를 이으면서 그들보다 훨씬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소화해야 하는 보이그룹의 멤버로 데뷔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슈가가 꿈과 현실의 괴리로 혼란스러워하기는커녕 데뷔 초부터 의외로 아이돌이 어울리는 캐릭터로 각광받았다는 것이다. 여타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그러하듯 방탄소년단은 데뷔 전부터 자신의 프리스타일 랩과 믹스테이프, 작업 일지를 인터넷에 올렸고, 공교롭게도 이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방탄소년단의 ‘마르지 않는 떡밥’의 출발점이 됐다. 연습생 시절부터 진지하게 일상과 작업 이야기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던 방탄소년단은 대형 기획사 소속 아티스트처럼 TV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대신 인터넷 플랫폼을 잘 활용하는 그룹으로 진화했다. 카메라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데 일찌감치 훈련(?)됐던 슈가는 V앱(현재 위버스로 통합)과 트위터를 통한 소통에 유연하게 대응했고 <달려라 방탄>을 비롯한 자체 예능 프로그램도 능숙하게 소화하며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 ‘아이돌스러운’ 팬서비스에 박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부수며 오히려 능청스럽게 팬과 동료들을 대하는 슈가의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그렇게 슈가에겐 ‘나를 힘들게 하는’ ‘위험한 남자’라서 ‘고소하겠다’는 팬덤(해당 밈의 유래를 알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민윤기를 고소합니다’를 검색해보길 바란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는 중독성을 자랑한다)이 붙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앨범 《2 COOL 4 SKOOL》의 타이틀곡 <No More Dream>에서 슈가는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의문을 표했다(“지겨운 same day, 반복되는 매일에/ 어른들과 부모님은 틀에 박힌 꿈을 주입해/ 장래 희망 넘버원… 공무원?/ 강요된 꿈은 아냐, 9회 말 구원”). 자체 프로듀싱이 가능한 래퍼들이 주축이 된 방탄소년단의 서사가 힙합의 저항 정신에서 출발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 방탄소년단의 대표작 <화양연화> 시리즈가 완성한 불안한 청춘의 초상은 힙합 정신에서 출발했기에 구체화될 수 있었고, 거친 소년의 이미지는 SM, YG, JYP가 지배한 아이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됐다. 그리고 ‘아미’라 불리는 충성도 높은 팬덤은 그들이 매료된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마케터 역할을 자처했다. 이른바 ‘해시태그 총공’을 통해 SNS 트렌드 순위에 그들을 노출시키고, 라디오 방송에 그들의 노래를 한번이라도 더 틀기 위해 사연을 보냈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마니아와 대중,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떠올랐지만, 슈가는 자신에게 어떠한 소명 의식도 없었다고 전한다. 그의 작업물은 그저 “음악 외에 딱히 재미있는 게 없어서 취미 생활도 없이 숨 쉬듯이 곡을 만들어왔다”는 기질에서 탄생했을 뿐이다. 의외로 그룹과 솔로곡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작업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때그때 쏟아내야만 하는 감정을 배설해왔다. “부적격이 뜨는 대부분의 이유가 저 때문이었어요. (웃음) 만약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좀더 정제된 느낌이 난다면, 그건 방송 심의 때문이에요. 제가 가이드를 줄 땐 욕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수정된 거죠.”

용산에 위치한 하이브 사옥에서 만난 슈가는 개인 작업실을 ‘그냥 작곡가 방’이라고 소개했다. 팬들에게는 ‘지니어스 랩’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농담 삼아 “어렸을 때 내가 천재라는 말을 들었어!”라는 말을 흘렸더니 A&R팀에서 아예 그의 작업실 이름을 ‘지니어스 랩’이라 지어주면서 굳어진 명칭이란다. 그리고 ‘지니어스 랩’은 어디든지 존재할 수 있다. 《D-DAY》 솔로 앨범 녹음은 모두 사옥 안에서 진행했지만, 곡 작업은 여행지 혹은 낚싯배 위 심지어 <인더숲 BTS편> 촬영을 갔을 때도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은 4월21일 디즈니+에서 공개되는 <SUGA: Road to D-DAY>에도 담겨 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샘플링한 수록곡 <극야>는 매체에서 방탄소년단의 활동 중단을 운운하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낼 때 만든 곡이다. 취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앞으로 닥칠 30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질문하고, 이제는 즐기면서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하고, 30살이 됐을 때 비로소 여행 같은 여행을 처음 가봤다는 현재 진행형의 감정을 쏟아냈다. <사람 Pt.2 (feat. 아이유)>는 제목을 ‘사람’으로 할 것인지 ‘사랑’으로 할 것인지 혹은 리스너의 선택에 맡길 것인지 끝까지 고민했던 곡이다. 작업할 때는 한곡을 수천번 듣지만 릴리즈가 된 후에는 절대 듣지 않는다던 그가 다시 찾는 거의 유일한 곡이 《D-2》 앨범 수록곡 <사람>이라고 한다. “스쳐 지나가면 뭐 어때/ 상처받으면 뭐 어때/ 때론 또 아플지도/ 가끔은 속상해 눈물 흘릴지도 뭐 어때.” 관계에 초연한 심정을 담은 노래를 들으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던 그는 그 후속작에서 똑같이 외로운 처지에 있는 타인을 위로한다. “삶은 저항과 복종 사이의 싸움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로움들과의 싸움이네/ 눈물이 터져 나오면 그대 울어도 돼/ 당신은 사랑받기에도 이미 충분한데.” 20대와 30대의 분기점에서 이 곡을 쓴 슈가가 내비친 변화는 그가 “엄격한 계획에 따라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을 완성한 후 덜어내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을 진솔한 기록이 된다.

지금은 보는 음악의 시대

13살 때부터 음악을 만들고 17살 때 엔지니어 일을 처음 시작했던 슈가는 “무명 뮤지션의 처지가 어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디든 자신의 곡을 받아줄 곳을 찾기 위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 음악을 만들던 에너지는 데뷔 후에도 이어져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1년에 200~300곡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준비된 곡이 어느 정도 쌓이면 믹스테이프를 발표하는 것이 그의 창작 스타일이었다. 동시에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다. 슈가는 자의식에 지배된 오퇴르보다는 같은 내용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기민하게 반응하는 노련한 테크니션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다. “뻔한 것을 한다는 건 사실 많은 사람이 예상했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다만 클리셰가 되면 안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아는 것을 하는 것과 했던 것을 또 하는 건 다르니까요.” 프로듀서로서 외부 작업을 할 때도 “클라이언트한테 다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즐비한 K팝 산업에서 한번 무대에 설 때마다 5만~6만명의 관객을 상대하는 입지를 다진 그는 상대가 원하는 바를 눈치 있게 포착하는 베테랑이다. 이쯤에서 그가 싸이의 <That That>, 아이유의 <에잇>을 대중적으로 성공시킨 프로듀서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최근 슈가가 보여주는 행보는 가장 개인적인 기록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기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인다. 래퍼들이 아이돌이 됐을 때 빚어진 기묘한 충돌이 방탄소년단만의 대중성을 만들었고, 보다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낸 Agust D 삼부작을 완성한 슈가는 그다음의 가능성에 돌진한다. “지금은 보는 음악의 시대”라고 요약한 슈가는 3년 전 믹스테이프 발매 당시 공개한 <대취타>에 이어 타이틀곡 <해금>의 뮤직비디오 콘티를 직접 쓸 만큼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열렬한 관심을 갖는 창작자다. <대취타> 뮤직비디오에서 조선시대 폭군도 슈가, 현대의 자객도 슈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지금의 슈가는 기꺼이 과거의 자신에게 총을 겨눈다. “내가 원했던 것 옷옷 다음은 돈돈 다음은 goal goal 이 다음은 도대체 뭐지/ 그 다음은 그래 뭘까 심히 느껴지는 현타 위가 없는 현상/ 위만 보던 난 이제 걍 아래만 보다가 이대로 착지하고파.” 갑자기 찾아온 성공에 공허한 마음과 추락의 욕망을 노래한 이 곡은 뮤직비디오와 만나 멋스러운 자기반성의 서사를 완성한다.

또 한번 국악의 소리를 재해석한 <해금>의 뮤직비디오는 “금지된 것들로부터의 해방”과 두기봉을 위시한 홍콩영화 속 폭력의 이미지를 병치시킨다. 과잉의 미학으로 오히려 무국적의 양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는 슈가의 솔로 연작은 아이돌과 래퍼, 비디오와 오디오의 경계를 허물어뜨려온 궤적과도 닮았다. 그동안 영화음악 제안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그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할 텐데 긴 마라톤을 달리다 보면 언젠가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여지를 열어뒀다. 누구보다 대중적 감각에 충실히 단련된 아티스트가 K팝 밖으로 확장할 행보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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