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23-05-04
글 : 김소미

자크 오몽은 멀지 않은 과거에 “비평가는 지성, 섬세함, 그리고 의식을 요구하는 매우 까다로운 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씨네21>에 썼는데, 나는 여기에 지금 신진 비평가들에겐 “적나라한 감정과 솔직함, 자전적 서사, 그리고 전략” 역시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성 언론에 칼럼을 싣거나 연재를 하고 단행본을 쓰긴 하지만, 정기적인 지면이나 소속의 문제는 그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때때로 불편한 제안일 수 있다. 영화를 붙들고 글쓰거나 말하려는 사람들은 동의하는 주제, 필요한 장소, 환기하는 만남이 있다면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온다. 영화평론가들은 더이상 영화만을 말하지 않고 미술, 만화, 힙합, 하위문화를 함께 거론한다. 네이버 블로그나 브런치의 주인, 개인 SNS 계정으로 우리에게 먼저 당도하는 사람들. 왓챠의 네임드, 노션 링크 속 발화자, 나아가 보다 심미적으로 꾸려져 있는 웹사이트에 게재된 긴 평론의 필자들로 다가오는 동시대 비평가들이 있다. 문학·미술·퀴어 잡지들이 마련한 독립적인 지면에서도 그들은 자주 머문다.

<씨네21>이 이번에 만난 인물들 중 강덕구, 박예지, 윤아랑, 김병규 평론가는 모두 블로거이고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에 이르는 자기만의 블로그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디지털 세계에서 영화를 배우는 이들의 입문을 돕고 최초의 취향과 교양을 형성해주는 교육적 역할을 지니고 있으면서, 트위터 계정에 “아, 화장실 가고 싶다”라고 쓸 수도 있는 SNS 인플루언서로 계속해서 존재한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된 등단 평론가이자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의 윤아랑 평론가는 자기 책에서 쓴 대로 “SNS와 공식적 담론장 둘 모두에 걸쳐 있는 내부자, 당사자들. (…) 자기 계정에 일상과 취향 얘기, 냉소적인 유머부터 자기가 속한 분야의 정보와 인상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게재하고 그 안에서 타인과 교류하는 사람들. (…) 작가이면서 인플루언서인 사람들” 중 하나다. 왜 이런 온라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냐고? “자율성이라는 심급이 설 자리가 나날이 줄어가니, 아예 과도하리만큼 세속적인 행위들을 SNS 게재 대상에 포함해 그 불투명함으로 자신의 자아를 투명하게 구성하려는 무의식적 제스처”라고 그는 덧붙인다. 말하자면 이것이 동시대 비평가들의 표면적 페르소나다. 이런 분열과 괴리에 매혹된 독자들은 곧 더 과격한 메타비평과 동세대 문화 전반에 대한 탐구로 점철된 토끼굴 속에서 기분 좋게 길을 잃는다.

‘시대착오적’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 아마추어리즘의 가능성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혐오를 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영화 보기는 본질적으로 도피 행위라는 것 혹은 일종의 여행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만족하면 영화를 안 본다. 미셸 우엘베크가 영화관을 가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삶을 사랑하기란 힘든 일이란 말도 했듯이.” (강덕구) 자기혐오, 그리고 동세대와 불화하는 감각은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재료다. 2010년대 문화 전반에 대한 전방위적 분석인 <밀레니얼의 마음: 2010년대, 그리고 MZ의 탄생>에서 강덕구는 듀나의 영화낙서판, <키노>에서부터 온갖 독립 출판물과 비평 웹진의 출현, 심형래의 <디 워> 논란과 진보 논객의 활약,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OTT로 이어지는 경험들을 언급하지 않고 영화를 비평하는 일이 기만적인 것처럼 쓴다. 또한 그에게 지금 한국영화사에서 간과된 장소는 ‘태름아버지’로 대변되는 영화 자막계의 거대 해적선, ‘씨네스트’ 사이트다. 영화평론가의 주제가 오직 영화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탈피하려는 듯 보인다.

2021년 독립영화비평상을 수상한 박동수 평론가는 게임 비평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의 제1회 게임비평공모전에 당선됐고, 석사 논문 ‘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야인시대> 밈 이미지에 대한 매체적 연구’로 SNS상에서 그야말로 밈이 되었다가 곧 단행본 출간을 앞둔 김경수 평론가는 약 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페이스북 유머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김경수는 이곳에서 비평과 ‘썰’을 섞는다. 매체와 장르를 가볍게 넘나드는 젊은 비평가들의 이런 궤적은 단순히 비평의 재료나 장소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연상, 비약, 반말과 비속어의 틈입 등 문체와 표현법의 형태로도 튀어나오고 있다.

“아마추어리즘에 가까운 태도, 기성 매체가 필요 없다거나 아니면 당대적인 흐름에 거부하고 거리를 두려는 태도에 대해서 공감하고 나 역시 어느 정도 기여하고 싶다.” (윤아랑) 아마추어리즘은 지금 기성 트랙 바깥에서 빈번히 논의되고 있는 비평가들의 자세이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아마추어적’인 것의 의미와는 다른데, 여기서의 ‘아마추어리즘’은 더욱 진보적이고 공격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생동성을 지키고 위계로부터 짓눌리지 않으려는 움직임에 가깝다. 이런 태도가 대단히 널리 퍼져 있다거나 합의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빈곤한 청년 담론을 향한 반감과 지루함 속에서 비평가들은 가능한 한 더 첨예하고 개별적인 주제의식과 방법론에 순수하게 몰두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착취당할 ‘열정’을 남겨두지 않은 허무와 냉소가 비평장에서는 오히려 부지런한 실천을 낳고 있다. 온라인 공론장 ‘모두의 연구실 코랄’(세마코랄)을 만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해 열린 좌담회, ‘아마추어리즘과 비평/ SeMA 비평연구 프로젝트: 2022 라운드테이블 2회차’ (이연숙, 이여로, 강덕구)는 이러한 목소리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부조리의 세계에서 윤리의 세계로-박찬욱 감독론’으로 2022년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을 수상한 박예지 평론가는 올해 1월 결과가 발표된 직후, “쓰는 자의 위치성”을 지향하며 매주 1편의 정기적 비평글과 영화일기가 발송되는 구독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플루언서 작가들이 수필과 소설, 여행기를 메일링하는 것은 더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평론가가 등단의 기점을 트리거 삼아 스스로 기획·집필·유통하는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경우는 그동안 드물었다. 박예지 평론가 이전에는 2020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한 김철홍 평론가가 당선과 함께 브런치 페이지를 개설하고, 이후 <원데이 원무비> 뉴스레터를 시작한 사례가 있었다. 독자적인 비평 경로를 확보하는 움직임은 등단 평론가들에게도 이제 자연스럽다. 구태여 자기 PR이나 생존을 위한 타이밍 같은 것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비평공유플랫폼 ‘콜리그’ , 문화예술 웹진 <크리틱-칼>은 고료 유무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투고-게재라는 일종의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아마추어리즘의 현장을 개척했다. 작금의 이 흥미로운 풍경에 대해서 함연선 <마테리알> 편집인이 보탠 또 다른 시각도 덧붙인다. “블로그, 트위터를 중심으로 가시화된 비평가들 중 남성이 훨씬 많다는 인상, 아마추어리즘의 젠더 편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문제다.”

예술로 더 다가서기 혹은 멀어지기

김예솔비 평론가는 전시에 관한 글을 쓰거나 촬영하며 최근 자신의 영화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블로그 논객을 거쳐 <필로>, 그리고 <씨네21> 평론가로 합류한 김병규 평론가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박예지 평론가는 GL 웹드라마 감독이다. 강덕구 평론가가 목표하는 다음 작업은 소설 쓰기다. 오디오비주얼크리틱에서 에세이영화로 나아간 오진우 평론가는 시네필리아적 경험을 담아 <영상자료원 가는 길>을 만들었다. 창작 세계와도 교통하는 지금 평론가들은 제도권의 관점대로 이쪽과 저쪽을 본업이나 부업, 부캐나 페르소나 같은 얄팍한 층위로 구분하지 않는다. 둘은 자연스럽게 추동되어 만났다가 멀어진다.

홀로 문턱을 넘고 경계를 흐리는 비평가들의 움직임은 때로 느슨한 점선을 그리며 연결을 이루고 있다. 2022년 4월 시작된 <마테리알의 ‘오픈 스페이스: 영화를 가르는 패스’는 열린 공간에서의 발제를 통해 영화담론을 전개하되, 가능한 한 여러 평자가 자신의 다양한 의제를 나누도록 조직한 릴레이 비평 활동이다. 함연선 편집인은 이 자리에서 비평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인식되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의 “비천한” 영화들- <화산고> <광복절 특사>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에 대한 재고려를 요청했는데, 이 주장은 곧장 금정연, 정지돈 작가가 교차 연재한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에 영감을 주어 이들이 다시 흥미로운 자전적 비평을 전개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이번 <씨네21> 기획 대담에서 언급되어 “<씨네21>에서도 비평에 관한 여정으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질서 바깥의 영화들과 마주치는, 그런 형태의 연재가 있었으면” 하는 김예솔비 평론가의 제언으로 이어진다. 지금 평론가들이 서 있는 드넓은 교차로를 바라보고자 했던 이 시도의 배경을 글의 말미에서 어쭙잖게 변명하자면, 거기엔 바로 이런 스쳐 지나가기, 때로는 적신호 앞에서 서로 대치하거나 상대를 추격, 충돌을 일삼는 광경 가장자리에 독자인 내가 흥분한 목격자로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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