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박예지 평론가, 기존의 매체를 벗어나, 나만의 방식으로
2023-05-04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건 ‘2022년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다. 등단 이전의 이력을 살펴보니 거쳐온 분야가 다양하다. 예술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으나 학부에선 철학과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전공은 문화인류학이다. 로펌에서도 잠시 일했고 현재는 외주 제작사 방송 PD로 재직 중이다. 이 폭넓은 관심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화비평으로 좁혀졌나.

= 사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웃음) 영화, 음악, 문학, 철학, 인문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근 20년간 개인 블로그에 관련 작품들의 리뷰를 계속 써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커리어를 더 좁힐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종합해보니 흥미를 잃지 않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영화평론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영화비평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공모전에 글을 냈다.

- 등단 전에도, 후에도 비평을 쓴다는 것엔 변함이 없는데 그럼에도 평론가라는 직함을 필요로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 사실 다양한 영화를 보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다 평론가라고 여기고, 현재도 이 생각은 유효하다.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에서 등단 유무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는 걸 깨달았다. 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보니 글의 노출도가 높은 반면 공공재처럼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졸업 작품의 일부로 내 글을 인용하겠다고 통보하듯 알린 미대생도 있었고, 내 글을 가져다 발표하거나 유튜브 콘텐츠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주변에서 “등단하면 네 글을 함부로 도용하지 못할 것”이란 조언을 해줬다. 기왕 인용될 거라면 정식으로 인용되고 싶었고, 한편으론 내가 쓴 글이 기록에서 소외된다는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2023년 1월에 수상 발표가 난 뒤 영화비평 구독서비스 <씨네픽션>을 시작했다. 한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서비스를 기획하고 구현하는 게 가능하던가.

= 사실 대학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는 애인과 같이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준비해둔 게 있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혼자서도 곧바로 추진할 수 있었다. 스스로 평론가라 생각하고 말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등단했다고 해서 지면이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청탁이 온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요즘엔 독립 잡지나 구독서비스도 많고, 기존 매체에 갇히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나 역시 글을 발표하는 자리를 스스로 마련했다. 매주 1편씩 A4용지 3~5장 분량의 글을 메일로 보내는 형식이다.

- 3개월 정도 <씨네픽션>을 운영해보니 어떤가.

= 동시대성을 갖고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싶어서, 블로그 때와 달리 최근 개봉작들 위주로 비평을 쓰고 있다. 영화를 보고 곧바로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지만 그만큼 피드백이 빠르게 온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글에 대해선 감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답장이 오는데 그 모든 의견들이 반갑고, 연재에 큰 힘이 된다. (웃음)

- 최근 직접 강연을 주최해 <씨네픽션> 독자들과 오프라인 모임도 갖기 시작했다. 혹시 영화평론가들과의 만남도 진행하고 있나.

= 그러지 못해 아쉽다. 의견이 맞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다. 방금 말한 강의는 박찬욱 감독 영화의 여주인공들을 ‘뱀파이어 모티브’로 읽어 분석해주는 강의였는데, 당시 1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이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다들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영화는 잘 모르지만…”이라며 운을 띄우지만 영화도 많이 보고 공부도 깊게 한 분들이었다. 강연뿐만 아니라 독자들과 같이 공부하는 모임을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통의 장을 다방면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고 있다.

- 다양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단편 연출과 시나리오 작업 등 영상 작업을 이어왔다. 영화 연출은 어떻게 시작했나.

=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버킷리스트에 하나씩 도전해갈 때였다. 단편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 중 하나였고 운좋게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3개월간 여성 영화인을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시나리오부터 연출, 촬영, 편집, 후반작업을 거쳐 영화제에 상영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그때 많이 배웠고,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영상을 제작했다.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여성 퀴어들의 하위문화인 드랙킹에 관해 연구했는데, 과 특성상 질적연구방법론으로 현장연구를 해야 했다. 그때 카메라를 들고 1년간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그 영상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본선까지 갔다. 그걸 시작으로 여성구술사 아카이빙 프로젝트 <DRAGX남장신사>의 기획자로 참여하는 동시에 이를 다큐멘터리로 남기는 작업을 했다.

- 앞으로도 비평과 영상 작업을 병행할 생각인가.

= 물론이다. 지금도 단편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CJ문화재단 ‘스토리업’ 등 관련 지원사업에 지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3년 계획이 있다. <씨네픽션>을 꾸준히 이어가며 충분히 독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장편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다.

- 장편 연출을 계획할 정도로 연출에 대한 욕구가 큰데도 비평을 계속 쓰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 내가 좋게 본 영화에 관해 다른 사람이 비슷한 감상평을 남겼을 때는 글을 더 쓸 이유를 못 느낀다. 그런데 그 영화에 관해 아직 아무도 쓰지 않았을 때, 혹은 이 영화에 관해 비슷한 감상을 가진 사람이 없을 때 글을 쓰고 싶어진다. 나는 별로였던 작품을 모두가 좋다고 할 때 반박하고 싶어 쓰기도 한다. (웃음) <씨네픽션>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딸 가진 엄마로서 같은 감상을 느꼈다”는 독자의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내 감상에 공감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한 작품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기 마련이니까 내 글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지점도 남겨두려 한다. 특정 컨셉을 잡아 비평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계속해서 여러 스타일의 글을 쓰고 의견을 공유할 자리를 만들어가는 걸 실험하고 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