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갯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라, ‘수라’ 황윤 감독
2023-06-22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기러기, 도요새, 올빼미의 깃털이다. 이렇게 목걸이로 만들기도 하고 갯벌에서 주워다 집에 두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힘을 받는 기분이 들곤 한다.” 촬영 전, 소품으로 가져왔다며 황윤 감독이 올빼미 깃털을 꺼내들었다. “한번 만져보라”고 그가 쥐어준 깃털은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영화를 관람할 때처럼 새들에 대한 황윤 감독의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동시에 지금도 갯벌 위를 돌아다닐 새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 감독이 군산에 내려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간척사업의 주요 도시에서 살아갈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군산에는 다른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가게 됐고, 그동안은 새만금에 관해 잊고 지냈다. 2006년 대법원의 판결, 가깝게 지내던 어민의 사고사는 내게 큰 트라우마를 안겼기 때문에 다시는 갯벌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당시 찍은 6mm 테이프들도 캐비닛에 넣어 치워둔 상태였다. 내려가서 도시의 온갖 곳에서 ‘새만금’이란 단어를 마주했을 당시엔 ‘내가 잘못 이사 온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오동필 조사단 단장님을 만났다. 갯벌에서 물새를 조사한다고 들었을 때 믿기지가 않았는데 조사단의 정기 모니터링을 쫓아간 날 150여 마리의 저어새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봤다. 만감이 교차했다. 다 파괴됐다고 생각한 곳에 희망이 있었다. 부정적인 그림만 그려오던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습관적으로 들고 다니던 카메라를 꺼냈다. 이건 나의 다음 작품이 되겠다고 직감했다.

- <수라>를 완성하기까지 총 7년이 걸렸다. 조사단이 13년을 바쳐 기록한 자료들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린 게 이유 중 하나라고.

= 정말 깜짝 놀랐다. 현장 기록은 메모부터 녹음본, 사진, 비디오 촬영분 등 다양했는데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조사하고 기록했을까 싶었다. 간척사업으로 인해 갯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감정을 빼고 기록한 객관적인 데이터들이 정말 신기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나 역시 꼼꼼하게 살피게 됐다.

- 물때를 기다려야 하는 등 촬영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와중에도 갯벌을 아름답게 보여주려는 목표가 분명하게 보였다.

= 갯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목표긴 했다. 사실 갯벌 자체가 달과 지구의 만유인력으로 생성된 하나의 작품이지 않나. 그런 갯벌을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갯벌은 정말 고난도의 현장이다. 촬영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조수간만의 차를 잘 파악하고 갯벌의 골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 계절까지 고려해야 했다. 영화제 상영 버전과 다르게 겨울 갯벌의 모습을 촬영한 장면이 새로 들어갔다. 원래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촬영을 취소했는데 촬영감독님이 혼자 가서 드론을 띄워 찍으셨더라. 결국 드론은 추락했지만 다행히 그 속의 녹화분은 얻을 수 있었다.

- 새를 만나는 순간도 감명 깊지 않았나.

= 물론이다! 군산에 살면서 이 지역을 꼭 지키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겼는데 사라진 줄만 알았던 새들을 만나니 너무 황홀했다. 말 그대로 ‘영접’하는 느낌이었달까. (웃음) 한번은 새벽 4시 반에 (오)승준씨와 쇠제비갈매기를 찍으러 갯벌로 갔을 때 분홍색 달이 떠 있던 적이 있다. 흰발농게가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이렇게 우연히 마주한 영화적인 순간들이 정말 아름다웠다. 오동필 단장이 도요새의 군무에 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10만 마리의 도요새가 자기 머리 위에서 춤을 추던 때의 모습과 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들을 때 마치 그 경험이 내게 전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궁금하고, 부럽고, 한편으론 안타까웠다. 관객 역시 나와 같이 느꼈으면 했다. 지금은 사라진 아름다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영화의 정서가 돼서 그것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더불어 아직 갯벌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생명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해서 갯벌에 나가 촬영을 진행했다.

- 새만금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 2차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다. 끝나지 않은 싸움 속에서 언제 촬영을 마치고, 이것을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심했나.

= 오동필 단장의 아들인 승준씨의 역할이 컸다. 사실 다큐멘터리는 촬영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수만 가지 버전이 나올 수 있다. 승준씨를 처음 본 게 중3 때였는데 어느새 대학생이 돼서 동필씨가 하던 일을 똑같이 하고 있더라. 그런 승준씨의 성장을 보면서 영화의 중심축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느꼈다. 영화제 GV 등에서 관객과 이야기해보니 내게 그랬던 것처럼 승준씨라는 존재, 그의 행동들이 관객에게도 에너지가 되어주는 것 같더라.

- <수라>와 더불어 전작들에서도 항상 인간의 이기로 인해 일방적으로 착취당한 생명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려는 인상을 받았다.

= 첫 장편인 <작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철창에서 새끼호랑이가 하루 종일 울며 엄마를 그리워하는 걸 봤을 때, 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달하겠다고 다짐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에서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농장 동물과 나의 관계로 확장했고 <수라>는 아름다운 생명과 이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작업들의 총합이랄까. 내가 카메라를 들 수 있을 때까지는 우리와 비인간 동물들의 관계에 계속 주목하고 싶다. 20년간 해왔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고, 이것만 평생 찍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 차기작도 유사한 주제로 갈 예정인가.

= <수라>로 인해 알게 된 현장에 관해 다루려 한다. 원래 <수라>에 넣으려 했으나 방대해져서 분리를 했다. <수라>의 연작이자 군산 2부작이 되는 셈이다. 수라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살았던 ‘하제’라는 어촌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미군기지의 탄약고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주민 수천명이 거의 반강제로 이주당했다. 그래서 그 마을은 지금 텅 비어 있는데, 거기에 아주 오래되고 아름다운 팽나무가 하나 있다. 600살이 넘은 그 나무가 마지막 주민으로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 마을과 나무에 관해 새 작품에서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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