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황윤 감독의 ‘수라’, 갯벌은 살아있다.
2023-06-22
글 : 조현나

“‘이제 와서 왜 매립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면, 이 현장에 직접 와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유승호 사진작가) 1991년에 시작해 2000년대 초반, 환경단체의 반발을 넘어 범국민적인 반대 운동을 일으켰던 ‘새만금 간척사업’은 대중에 잊힌 지 오래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강행하라’는 2006년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많은 이들이 좌절했고 그렇게 현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중엔 <수라>를 연출한 황윤 감독도 있었다. <작별> <어느날 그 길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을 통해 인간-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꾸준히 주목해온 그 역시 갯벌로 시선을 돌렸으나 대법원의 판결과 본인을 환대해준 어민의 사고사로 인해 충격을 받고 의도적으로 갯벌을 멀리해왔다. 10여년이 지난 뒤 황윤 감독은 오동필 조사단 단장의 안내로 갯벌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던 150여 마리의 저어새를 목격한다. 척박한 땅 위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갯벌에서 삶을 이어온 생명들을 향해 황윤 감독은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간척사업 옹호파와 반대파가 치열하게 맞붙던 2003년부터 현재까지, <수라>에는 그 20여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사건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간척사업의 영향을 받은 어민과 생물들, 이들을 주시해온 조사단 등 대상을 세축으로 나눠 파고든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황윤 감독의 위치성에서 비롯한다. 20년 전엔 외부인으로서 거리를 두고 갯벌을 바라봤으나 지금은 군산 시민으로서 오염된 바닷물과 미세먼지로 뒤덮인 공기를 살갗으로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극 중 황윤 감독은 모두가 외면해온 갯벌에 13년간 조사단이 꾸준히 걸음하며 쌓아온 데이터를 살핀 뒤,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7년간 갯벌과 어민들에게 깊숙이 다가가며 시야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터전을 잃은 어민들과 사라진 갯벌 생물의 잔재를 적나라하게 직시하면서도 이들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조명한다. 20여년의 세월 속에서도 갯벌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방향에 따라 물길을 내고, 깊게 팬 골들은 빛과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숨을 쉰다. 이곳에 터전을 꾸린 갯지렁이와 조개,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쇠제비갈매기, 흰발농게 등의 법정 보호종들 또한 저마다 생생하게 약동한다.

정부는 조사단과 환경단체의 반발을 ‘갯벌은 이미 육지화된 지 오래이며 쓸모없는 땅’이라 일축하며 간척지에 새만금 신공항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수라>를 본 이라면, 이들이 갯벌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내린 판단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갯벌은 죽은 땅’이라는 오명을 뒤집기 위해 조사단과 황윤 감독은 그토록 오랜 시간 갯벌 생물의 움직임과 소리에 주목하며 기꺼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뻗어왔다. <수라>에는 생에 대한 갯벌 동식물들의 의지, 그런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집념이 촘촘히 응집돼 있다. 영화가 보여준 자연의 생명력에 압도되면서도 이들의 가치를 멋대로 판단하며 죽음을 재단한 인간의 오만함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건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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