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유해 발굴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한다, ‘206: 사라지지 않는’ 허철녕 감독
2023-06-22
글 : 정재현
사진 : 최성열

- 전작 <말해의 사계절>(2017)의 공개 시점부터 <206: 사라지지 않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안다.

= 말해 할머니에 관한 영화를 완성했음에도, 할머니의 상실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할머니는 종종 60년대 학살터에서 남편의 유해를 찾던 이야길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상실엔 학살터의 기억이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하던 중 SNS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민간인 학살터에 유해 발굴을 다닌다는 소식을 접했다. 운명인가 싶었다. 처음 자원봉사자로 발굴단에 합류했을 때, 발굴단원 중 한분이 내 직업이 감독이란 걸 알고 발굴 과정의 기록을 요청하셨다. 영화화까진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되레 내가 “제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니 촬영은 기본이고 이 기록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분들이 흔쾌히 허락해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화 작업이 시작됐다.

- 발굴단 분들도 기록이나 홍보에 갈증을 느꼈을 듯하다.

= 발굴단 분들이 공인된 단체라기보다 자발적으로 집결한 결사체에 가까워 유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비용과 인력의 한계를 늘 겪는다. 몇년 전 경남 진주에서 30구가 넘는 유해가 발굴된 적 있다. 그런데 발굴 도중 갑자기 터를 파란 천으로 덮더라. 이유를 여쭤보니 “더 조사하는 게 맞지만 돈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우리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말씀하셨다. 발굴이 이루어졌음에도 다시 복토(復土)를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 가슴 아팠다. 이 현실을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 더욱 영화를 완성하고 싶었다.

- 긴 테이크로 발굴 현장을 진득하게 담고, 통상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인터뷰 인서트에 자막을 달지 않았다.

= 우리 영화는 줄곧 땅만 파는 영화다. 보통의 다큐멘터리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의 개인사를 담지 않는다. 발굴단 분들 모두 개인으로선 만만찮은 사연을 가진 터라 언급한 연출 방향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면서 유해를 마주할 일이 가족의 장례식을 제외하면 없지 않나. 그렇다면 100분이 안되는 영화에서 70년간 묻혀 있었던 분들을 진중히 바라보는 시간만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 영화는 결과가 아닌 과정의 영화다. 발굴 현장을 방문하는 수많은 언론들은 언제나 결과에 주목한다. 발굴된 유해의 개수, 발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국회의원들의 입법 여부와 같은. 하지만 나는 감독이면서 발굴단원이지 않나. 발굴된 유해가 60구라면 결과값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60구 각각이 어떤 아픔을 겪은 후 세상에 드러난 건지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막의 경우 우리가 음향 믹싱에 굉장히 공들였기 때문에 발굴단의 대화나 인터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판단해 넣지 않았다.

- 발굴단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영화의 외피는 김말해 할머니에게 쓰는 감독 본인의 편지다. 직접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도 했는데.

= 제작 초기만 해도 내레이션을 넣을 생각이 없었다. 이 영화의 첫 관객은 무조건 할머니여야 한다는 점이 영화 완성의 단일한 목표여서 빨리 완성해 할머니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더라. 내 첫 관객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한동안 힘들었다. 그 무렵 영화의 편집감독님이 할머니의 존재가 내게 얼마큼 큰지 아시게 됐고, 내게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하늘에 계신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구성해보면 어떻겠냐 제안하셨다.

- <206: 사라지지 않는>의 영화제 상영 당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속 한 구절이 인용됐는데, 개봉판에선 이 부분이 편집됐다.

= 영화제 상영 버전에선 말해 할머니가 영화 초반 8~9분가량 등장했고, 할머니가 보고 겪으신 민간인 학살 현장의 구술이 포함됐다. 이후 개봉을 위한 여러 자문을 거친 결과, 발굴 현장에서 영화가 바로 시작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들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아닌, 내가 할머니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로 편집 방향이 바뀌었다.

- 그래서 발굴 현장 속 유해의 시점숏으로 영화가 시작하는 건가. 언뜻 <헤어질 결심>(2022)의 변사체 시점숏이 생각나기도 한다.

= 많은 분들이 <헤어질 결심> 이야기를 하시는데 공개 시점은 우리 영화가 먼저다. (웃음) 흙 속에 묻히는 유해의 시점숏을 통해 잊히는 죽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다음 숏으로 넘어가면 발굴단이 흙을 들춰내지 않나. 그 두숏에 영화의 컨셉을 함축하고 싶었다. 잊힌 유해들과 그것을 파헤치는 사람들.

- 영화의 가장 강렬한 장면이자 감정을 고양하는 장면은 출토된 유골 사진 위로 온갖 굉음이 덮이는 시퀀스다. 언뜻 들었을 땐 셔터, 사이렌, 클랙슨 소리가 분간되던데.

= 유해 출토가 완료되면 감식이 시작된다. 감식이 끝나면 유골 사진을 찍는데 그 과정이 7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영령의 영정 사진을 찍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힌 자들의 유해가 이제야 세상에 드러날 동안 우린 무얼 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이 시퀀스에서 던지고 싶었다. 영정 사진에 더해진 굉음들은 지난 70년간의 한국 현대사와 관련 있다. 시작부의 폭탄 소리와 기관총 소리는 한국전쟁을, 망치 소리는 산업화 시대를, 집회의 아우성은 민주화 투쟁 시대를 상징한다. 그 후의 셔터, 사이렌, 클랙슨 소리로 대표되는 첨단 도시의 시대를 지나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의 소리로 마무리된다.

- 밀양 송전탑 투쟁을 다룬 <밀양, 반가운 손님>(2014)과 <말해의 사계절>,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유해발굴 과정을 다룬 이번 영화까지. 감독의 영화는 폭력의 역사를 마주한 개인을 꾸준히 탐구한다.

=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런 것 같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백상현 교수가 쓴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가 나왔다. 그 책의 제목이 딱 나와 발굴단의 마음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은 방황의 과정이지만 방황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거대 권력이 은폐한 폭력이 무엇인지 계속해 발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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