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정지된 삶의 순간을 영속시키기 위하여, ‘206: 사라지지 않는’
2023-06-22
글 : 정재현

몇해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비올라 데이비스는 연단에 서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물을 때면 나는 언제나 묘지에 가보라 답한다. 그곳에 묻힌 이들의 유해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발굴하라고.” 죽음은 늘 이야기를 남긴다. ‘생인’(生因)이 사어에 가까운 데 비해 ‘사인’(死因)이 여러 분야에 걸쳐 상용되는 까닭도 삶과 달리 죽음에는 그 상태를 야기하는 필연적인 줄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줄거리는 안장된 죽음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전역에서 자행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의 유해를 발굴하는 시민발굴단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발굴단원들은 이유 없이 학살돼 수십년간 은폐된 유해들을 찾아나선다. 전국 각지를 도는 이들의 여정엔 허철녕 감독이 동반자로 곁을 지킨다. 허 감독은 밀양 송전탑 투쟁 당시 한전과의 합의를 거부한 김말해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 <말해의 사계절>(2017) 촬영 후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발굴단과 함께하며 국가적 폭력 앞에 무참히 스러진 죽음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감독이 스스로 품은 의문에 자문자답해가는 방식은 크게 두 종류다. 첫째 방식은 편지다. 감독은 직접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편지를 쓴다. 편지의 수취인은 순례의 기원인 김말해 할머니다. 감독은 편지를 쓰며 학살 유가족인 김광욱씨의 눈물 겨운 사연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집단 학살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이야기 등 집단 학살에 관한 미시사와 거시사를 얽고 무고한 죽음의 내력들을 돌아본다.

둘째 방식은 카메라의 진득한 응시다. 발굴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담는 카메라의 프레임은 발굴단의 지난한 작업을 관객이 함께 겪도록 한다. 이후 관객이 얼마간 마주하는 풍경은 발굴 터의 헤집어진 자국이다. 유해가 안치된 다음에도 영화는 유해가 있던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길게 응시하는 유해 터엔 관객 각자의 기억이 틈입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관객이라면 한국전쟁 이후로도 수많은 집단 죽음을 세대와 무관하게 목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사 희생자들의 죽음이 1950년에도, 2014년에도, 2022년에도 하나같이 규명되지 못했단 영화 밖 현실의 비극은 어느새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 움푹 팬 유해 터의 빈곳을 반반하게 채운다.

206개의 신체 뼈가 세상 밖으로 출토되면 발굴단은 오랫동안 이야기되지 못한 죽음에 비로소 사연을 부여하는 의례를 거친다. 이는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 진짜 죽음이 된다고 말하는 발굴단의 노용석 교수가 지닌 믿음의 실현이다. 그에 따르면 발굴은 “정지된 삶의 순간을 영속시키는 행위”다. 요컨대 <206: 사라지지 않는>은 이야기되지 못한 죽음을 96분간 이야기하는 동시에 땅 밑 영령들의 억울한 사연과 땅 위 관객 각자가 기억하는 상실의 고통을 영화를 매개로 연결해 서로의 아픔을 해원하길 시도하는 영화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