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에서의 예기치 못한 사고로 교사 도경(전석호)과 중학생 지용(김정철)이 목숨을 잃는다. 남겨진 자들은 떠나간 이를 애도하기는 커녕 자신들을 짓누르는 슬픔과 고통을 견뎌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눈물 자국을 제대로 닦지도 못했지만 하루하루 무심하게도 시간은 흘러가고, 일상의 풍경 속으로 죽은 자들의 환상이 불쑥불쑥 틈입한다. 그러던 중 도경의 아내 명지(박하선)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사는 사촌 언니의 빈집에서 얼마간 머무르기로 하는데, 그곳에서 대학 동창 현석(김남희)과 조우한다. 도경이 죽었단 사실을 모르는 현석에게 명지는 굳이 그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고 묘한 기류가 흐르는 두 사람은 이국의 거리를 거닌다. 한편 부모 없이 동생과 의지하며 살아가던 지용의 누나 지은(정민주)은 지용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몸에 마비가 와 병원에 입원한다. 친구 지용을 잊지 못하던 해수(문우진)는 그런 지은 곁을 맴돈다.
<설행_눈길을 걷다> <프랑스여자> 등 인물들의 상처와 상실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온 김희정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으로, 학생을 구하려다 희생된 교사 남편의 죽음을 마주한 아내 명지의 비애와 고통, 성찰을 그려낸다. 영화는 원작인 김애란의 동명의 단편소설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있는데, 하나는 명지가 머무는 도시가 영국 에든버러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명지에겐 낯설지만 감독에겐 유학 생활로 익숙한 나라 폴란드를 배경 삼아 쇼팽의 심장이 묻힌 성당, 시민들의 바르샤바 봉기 추모 묵념 장면 등을 자연스레 녹여내며 시공간을 뛰어넘는 그리움과 애도의 정서를 담아낸다. 원작과의 또 다른 차이점은 ‘해수’라는 인물이다. 원작에선 지은의 편지에서 짧게 언급되는 지용의 친구를 영화는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중학생 소년 해수로 재탄생시켜 죽음의 무게에 압도당해 삶이 멈춰버린 명지와 지은을 잇는 역할을 부여한다. 명지, 지은과 달리 해수는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무망한 생이 품고 있는 활력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고루 우수하지만, 무엇보다도 박하선의 절제된 연기가 영화를 미덥게 지탱한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