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편집증을 앓는 보(호아킨 피닉스)는 집착적인 성향의 어머니 (패티 루폰)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이해 공항으로 떠나려던 그는 이상 징후같이 밀려드는 이상한 사건에 자꾸만 휘말린다. 지나치게 예민한 이웃, 잘못된 알약 복용, 좀비 떼처럼 몰려다니는 사람들과 교통사고, 그리고 어머니의 사망 소식까지. 디스토피아 혹은 망상장애의 한축으로 비치는 보의 세상은 제동장치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갈지자로 방향 없이 질주한다.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온화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 염증처럼 부풀어오른 상처와 자기 연민, 과잉된 의존성을 은유적으로 비춘다. 대척점에 있지만 교묘한 교집합을 지닌 두 모자는 다소 기괴한 방식으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여느 가족에서 발생할 법한 보편적 갈등과 균열을 그려 낸다. 어머니의 둥지로부터 벗어나 누구보다 자립하고 싶은 보는 한평생 자신을 떠난 적 없는 오랜 트라우마를 마침내 정면으로 응시하고 다시금 패배한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공포와 좌절은 이를 익숙하게 학습해 온 보를 쉬이 떠날 줄 모른다. 이유 없이 쏟아지는 파괴적인 전투 신,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과 소멸까지 호흡을 가다듬을 새 없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씨네21
검색관련 영화
관련 인물
최신기사
-
[리뷰] ‘Wicked’ Little Letters, 마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려는 시도들, <X를 담아, 당신에게>
-
[리뷰] 에드 우드와 토미 웨소도 한수 배울 열화판의 심연, <거친 녀석들: 히틀러 암살단>
-
[리뷰] 불멸의 사랑을 위하여, <더 크로우>
-
[리뷰] 기억이 된 기록, ‘콘텐츠’ 소비와 ‘작품’ 감상의 차이는 공간에서부터, <움베르토 에코. 세계의 도서관>
-
[리뷰] 모양은 달라도 맛은 좋은 각자의 진심이 담긴 푸짐한 한 그릇, <대가족>
-
[리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뇌관을 기폭하는 극단의 시청각적 자극, <서브스턴스>
-
[리뷰] 타인의 고통에 용기낼 때 자기도 치유됨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영화의 새 고전, <이처럼 사소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