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모방 심리 자극 않고 몰두할 수 있는 방안 찾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백시원 PD
2023-07-07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백시원 PD에겐 독특한 이력이 있다. 단편영화 <대청소>(2020), <젖꼭지 3차대전>(2020), <겹겹이 여름>(2022) 등 꾸준히 영화 작업을 하며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주여성영화제 등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08년 PD로 입사한 SBS에서 휴직을 결심한 후 한창 영화를 공부했을 때, 그는 주변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글은 울면서 쓰는 거야.” <그것이 알고 싶다> <SBS 스페셜> 등을 통해 취재원과의 거리두기를 탐사 보도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온 그는 타인이 되는 법을 익히며 당사자의 감정을 생각하고 그에 공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를 촬영하며 매주 울음을 삼킨다는 백시원 PD의 이야기를 들으며, 역사 속에 숨은 한편의 사연을 재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되짚을 수 있었다.

- <꼬꼬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포맷으로 화제가 되었다. 초창기 기획 단계 이야기가 궁금하다.

=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최삼호, 안윤태, 유혜승 PD가 처음 <꼬꼬무>를 기획했다. 술자리에서 썰 풀듯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고 쉽게 해보자는 게 당시 기본 취지였다. 유난히 말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저녁 시간처럼. 처음엔 <SBS 스페셜>에서 배우 남보라와 다른 출연자들이 직접 지인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그 시도를 기점으로 장성규, 장도연, 장항준 감독을 섭외해 초창기 <꼬꼬무>가 완성됐다. 지금은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씨가 함께하고 있다.

- 많은 사건 중에서 되돌아볼 만한 사건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을 이끌 만한 이야기인지에 대한 여부다. 우선 역사 관련 책을 두고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연대기별로 중요 사건을 촘촘하게 추렸다. 그다음에 많은 역사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아이템을 다시 정리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하고 있는 사건들을 참고하며 취재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현대사를 중심으로 탐색하는데 그중에서 드라마적 가치가 높은 이야기를 선택하려 한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잘 아는 인물임에도 잘 몰랐던 일대기를 간직하고 있거나, 사건·사고 중 현대적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예를 들어 최초로 처벌받았던 스토킹 범죄나 학교 폭력 등 현재의 문제의식과 연결될 수 있는 맥락을 신경 쓰고 있다. 또 10·26 박정희 암살 사건의 경우 이미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다루었지만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궁정동에서 실제 일했던 요리사나 경비원 등을 섭외해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은 대체로 어떻게 발굴하나.

= 보통 그런 사건들은 기록에도 개요 정도만 나와 있다. 교과서나 역사서에 한줄 실려 있거나 기사에 짧게 정리돼 있는 식이다. 최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건을 다룬 적 있는데 이 사건 또한 대중적으로 노출이 거의 안되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기숙 학원에서 가출한 여성 청소년들을 감금했는데 갑자기 불이 나면서 많은 아이들이 사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주동자가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딱 그 정도의 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여느 시사 프로그램처럼 제보를 받아 뛰어다니며 당시 관련자나 변호사를 만나 취재를 했다. 기록된 사건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사건의 디테일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 이야기를 전하는 출연자의 재담과 구술 능력은 <꼬꼬무>만의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다. 이런 부분은 따로 디렉팅을 주는 편인가.

= 이 부분은 연출자로서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현재 출연자인 장성규, 장도연, 장현성씨의 연기력이 워낙 좋다. 물론 큐카드가 준비돼 있긴 하다. 소품을 보여줄 타이밍이나 영상을 봐야 할 타이밍 등 가이드라인을 적고 ‘긴박하게’ , ‘조곤조곤하게’같이 지문 정도가 있다. 세 출연자가 매주 리딩을 함께하면서 입에 잘 안 붙거나 이해가 잘 안 가는 대사는 보충하고 수정한다. 다들 연극배우처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 MC의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큰 리액션은 <꼬꼬무>의 감동이나 긴장감을 극화한다. 청자는 촬영에 대한 정보를 얼마만큼 알고 임하나.

=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웃음) 섭외 과정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청자들의 반응은 100% 진짜다. 게스트들이 눈물을 보일 때에는 제작진도 함께 운다. 매주 울고 있다. (웃음)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다. 다만 섭외 과정에 이런 경우는 있다. 아이돌은 해외 활동이 중요하고 다양한 국가 출신의 멤버가 포함된 그룹도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아이템은 일부러 배정하지 않으려 한다.

- 청자로 출연하길 바라는 아이돌 게스트가 많다고. <꼬꼬무>의 어떤 점이 게스트를 이끈다고 생각하나.

= 춤이나 장기자랑을 시키지 않는 예능이라서? (웃음) 인간적인 리액션을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 이야기를 들으며 몰입하기만 하면 된다는, 비교적 미션이 단순해서 게스트가 느끼는 부담이 덜한 것 같다.

- 최근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재현 윤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사건을 다시 보여주면서 재현의 수위와 강도 등을 어떻게 조율하고자 했나.

= <꼬꼬무>팀 내부적으로 재현 장면은 간접적으로 촬영한다는 원칙이 있다. <꼬꼬무>는 프로그램 특성상 누군가 꼭 사망한다. 사고든 자살이든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그 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강가에 신발을 두거나 실루엣이나 그림자로 암시하거나 범인이 어딘가 들어가거나 하면서 상상을 이끌 뿐이다. 무엇보다 <꼬꼬무>는 초등학생 시청자가 많다. 그래서 더더욱 신경 쓰려 한다. 모방 심리를 자극하지 않고 시청자가 사건에 몰두할 수 있는 방안을 살피고 있다.

- 온라인상에 <꼬꼬무> 형식을 패러디해 팬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놀이 문화도 많이 보인다. 콘텐츠 N차 가공 문화라 할 수 있는데, <꼬꼬무>의 어떤 점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나.

= 신기하게도 정말 많이 본다. “때는 2010년…” 하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웃음) 얼마 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사내 교육용 콘텐츠로 만든 영상을 봤다. “이번에 신차가 출시됐는데…” 하면서 마주 앉은 사람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로 설명을 하더라. 아무래도 <꼬꼬무> 화법이 정보를 전달하는 데 적합해서 그런 게 아닐까. 또 그 정보를 스토리텔링화해서 알려주는 방식에도 잘 어울린다. 편집할 때 상대방이 놀랄 때 눈이 커지는 장면을 많이 활용하는데, 이런 패러디에 그런 묘사도 함께 적어주시더라. 하나의 클리셰가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다.

- OTT와 뉴미디어의 보편화와 함께 레거시 미디어의 위기론이 부각되기도 했다. 방송국 연출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 내부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SBS에서도 일일 드라마와 아침 드라마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콘텐츠를 정리하고 시청률이나 수익이 담보되는 프로그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도 은연중 생겨났다. 방송국은 광고가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수입원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통해 광고를 이끌어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는 변함이 없다.

- MBC에서는 올해 <피지컬: 100>의 제작을 맡아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하기도 했다. 방송국이 OTT 콘텐츠 제작을 선택한 이례적인 사례였다.

= 이제는 방송국과 OTT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SBS에서도 배정훈 PD가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를 제작하기도 했다. 기획안 공모를 할 때에도 OTT용 기획안을 내기도 하고. 실제로 젊은 PD 사이에 OTT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싶어 하는 연출자들이 많이 늘었다. 시청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가운데 제작비 규모도 배로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출자의 지적재산권인 IP를 인정해주는 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몇년 안에 연출자의 IP 소유 여부가 더 주요하게 다뤄질 것 같다.

- 2008년 입사했을 때 여성 PD 선배가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지난 15년을 돌아볼 때 방송가에 나타난 젠더 관점의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

= 갓 입사했을 때 여성 PD 선배가 딱 둘 있었다. 그런데 각자의 사정으로 모두 팀을 이동하면서 이제는 내가 가장 높은 선배가 되었다.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사이에 여성 PD가 급격히 늘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3명을 채용한다고 가정하면 여자 1명, 남자 2명이 뽑히는 게 흔했고 전부 남성만 뽑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반대다. 최종 면접에 올라오는 지원자 성비도 남녀 2:8 정도로 나뉜다고 한다. 2000년대에는 방송국 일이 체력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남성이 가진 신체적 조건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주 52시간 근무제가 들어서면서 정보 집약적, 효율 중심의 환경이 구축됐다. 그렇게 제도적·환경적 우선순위가 변하면서 체력으로 많은 걸 버텨야만 했던 시절과는 많은 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여성들도 강해졌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잘 버티고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인다. 주변에 운동을 시작한 여성들이 많은데 그런 분위기가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 긍정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을 꼽고 싶나.

= 우리 시사교양팀을 생각해본다면 부장급 이상에 여성이 없다는 점. 책임 PD(CP)에 여성이 전무하다. 드라마국에도 없다. 예능국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결정권을 가진 직급에 여성이 없으니 여성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어도 가로막힐 때가 많다. 그래도 요즘엔 <골 때리는 그녀들> <사이렌: 불의 섬> 등 다양한 여성 중심 콘텐츠가 대중에게 사랑받으면서 예전보다는 설득이 수월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런 콘텐츠를 처음 시작해낸 연출자들의 경험이 정말 궁금하다. 이들이 다른 여성 연출자에게 길을 만들어줬다. 대단하다.

나를 연출자로 만든 것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보임과 느낌’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서 어설프게 영화를 찍었다. 낡은 8mm짜리 캠코더를 들고 서로를 찍고 집에서 편집했다. 학교 축제에선 상영회를 열기도 하고. 마치 뉴진스의 <Ditto>처럼. 그때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을 하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

주말 이른 아침마다 즐기는 소중한 루틴이 하나 있다. 인왕산 입구까지 산책하여 커피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초소 책방에 가는 것. 큰 야외 공간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등장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거기서부터 따릉이 타고 집까지 오면 행복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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