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TV드라마 같은 서바이벌을 만들고자 했다, ‘더 디저트’ 김나현 PD
2023-07-07
글 : 정재현
사진 : 최성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프로그램 특유의 공식이 시청자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이모저모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종종 협업하고 주로 대결하는 미션의 양상은 오월동주와 각자도생을 번갈아 수행해야 하는 현대인의 사회생활과 다를 바 없고, 특정 참가자에게 쉬이 애정 혹은 핀잔을 날리게 만드는 편집 방식은 타인의 일면만 보고 그의 전체를 손쉽게 평가하는 사회의 단면과 꼭 닮았다. 국내 최초 디저트 서바이벌을 표방하는 티빙 오리지널 <더 디저트>는 소재의 측면에서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클리셰를 적당히 피해갔다는 점에서도 단연 최초라 불릴 법하다. <더 디저트>의 메인 연출가인 김나현 PD가 지금껏 만든 프로그램 또한 익숙한 포맷에서 최초를 시도한 요소가 많다. JTBC <1호가 될 순 없어>는 부부 관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최초로 전 출연진이 코미디언이었고(물론 이 프로그램에서 이혼한 커플이 나온다면 그 또한 1호, 즉 최초가 될 터다), 넷플릭스 연애 서바이벌 <솔로지옥>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 최초로 넷플릭스 전세계 TV쇼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더 디저트>의 공개 이후 휴식기 중인 김나현 PD를 만났다.

- 전작의 연출 경험이 <더 디저트>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나.

= 관찰 예능 포맷에 흥미를 느낀다. <솔로지옥>도 <1호가 될 순 없어>도 관찰 예능의 형태를 빌리니 기획 의도 이상의 새로운 게 계속 발견되더라. 이번 프로그램에도 같이 생활하고 지내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결합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 공간에 출연진들을 지내게 하면 프로그램에 몰입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며칠씩 머무는 곳이 세상의 전부라는 마음으로, 이곳을 탈출할 땐 승리해서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출연진들이 프로그램에 임했으면 했다. <솔로지옥>을 연출할 때도 느낀 건데 합숙 체제를 도입하면 출연진이 훨씬 상황에 급속도로 몰입한다.

- 처음 <더 디저트>를 기획할 때 해외 디저트 서바이벌을 그대로 현지화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이유가 무엇인가.

= 해외 프로그램을 참고해보니 그들의 디저트 서바이벌엔 스토리가 없고 모든 포커스가 디저트에 맞춰져 있었다. 서구 시청자들은 디저트가 이미 주류 식문화라 스토리의 보강 없이도 전 요리 과정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디저트를 기본으로 하되 우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사람이어야 했다.

- 자신만의 브랜드를 PR하는 미션은 최종 3인만 진행했지만, 프로그램에 참가한 10인 모두에게 개인 브랜드 간판을 공평하게 제작해준 점이 인상적이다.

= 디저트를 만드는 분들의 최종 목표 중 하나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는 거더라. 참가자 모두에게 자기 브랜드명을 제출해달라고 했더니 이미 생각해둔 브랜드명이 있었다.

- 참가자들에게 약속한 한 가지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였다고.

= 이렇게까지 많은 재료와 도구가 베이킹에 사용되는지 몰랐다. 모두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나오지 않았나. 재료나 장비 때문에 디저트를 못 만들었단 소리는 안 하게 하고 싶었다. 밀가루 한 포대, 버터 한 팩까지 최대한 좋은 재료로 마련했다. 그리고 국내에서 디저트 서바이벌 쇼가 처음 시도되다 보니 주방 기구 업체 대표들이 협찬을 정말 잘해주셨다. 이런 프로그램이 잘되면 좋겠다는 말씀도 꼭 덧붙이셨고.

- <더 디저트>는 어떤 걸 ‘하지 않아서’ 더 좋은 서바이벌이다. 요리 서바이벌에 으레 나오는 재료 강탈전이 없고, 시쳇말로 악마의 편집이라 불리며 지적되곤 하는 편집 이슈도 없다.

= 오디션 프로그램 특유의 우승자 발표 편집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향하는 예능은 TV드라마 같은 오디션이다. 그래서 화면 하단의 자막도 출연진의 인터뷰나 대화를 제외하곤 거의 넣지 않았다. 과한 편집이나 자막을 걷어내도 즐거운 서바이벌을 만들 수 있다.

- ‘누가바’ 등 상표명도 가감 없이 공개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 신체에 있던 문신도 모자이크 없이 화면에 나온다. TV에 송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니 편집의 제약도 덜했을 듯하다.

= 지적한 점이 OTT에서 방송을 공개하는 것의 장점이다. 그래서 참가자들끼리 술 마시는 장면도 그대로 나갔다. 친구들끼리 술 한잔 기울이며 나오는 이야기가 ‘찐’일 때가 있지 않나. 참가자들이 술 마시며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도 방송에 편집 없이 담을 수 있어 좋았다.

- 참가자들이 죽기 살기로 만드는 디저트 요리 과정을 동선의 방해 없이 담아내야 하는 촬영팀의 수고도 카메라 너머로 생각하게 됐다.

= 스탭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우리는 기본 조리 시간이 짧아도 3시간, 길면 5시간까지 갔다. 디저트 서바이벌을 시도하지 않았던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듣자하니 찌개는 1시간이면 끓인다던데…. (일동 폭소)

- 출연진별로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 BGM을 사용했나. 음악감독의 이름을 찾아볼 정도였다.

= <솔로지옥>을 함께했던 음악팀과 다시 뭉쳤다. 이번 방송을 위해 음악감독님이 스코어를 새로 작곡하셨다. OTT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국처럼 노래의 저작권을 보유한 것이 아니다 보니 기성곡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처음엔 작곡하는 과정이 고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 프로그램 용도로 노래를 만들다 보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후반에 새로 만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 촬영 중 ‘이건 명장면, 명대사다’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

= 우승자 박지오씨가 1화에서 “저는 디저트 만들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라고 울면서 고백하는 장면이 그랬다. 우리 프로그램의 정체성과도 닿아 있는 대사여서 마지막화 엔딩에 수미상관으로 그 대사를 다시 붙여넣었다.

- <더 디저트>를 연출하며 통제 밖 상황에 당황한 적은 없었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선 케이크 높이 쌓기 미션의 완성작이 과정의 지난함에 비해 비주얼이 아쉬웠다.

= 그날 솔직히 집에 가고 싶었다. (웃음) 촬영 시작 이튿날이었다. 양팀이 만든 케이크를 보는데 내가 이 프로그램을 열흘간 끝까지 찍을 수 있을지 적잖이 고민했다. 이 미션의 경우 심사위원들도 대형 케이크를 만들어본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고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며 우려를 많이 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미관상 별로인 케이크가 처음에 등장하고 점점 발전된 퀄리티의 디저트가 탄생해서 다행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멘붕’이었다.

- <더 디저트>엔 심사위원의 채점 외에 ‘대중 PICK 미션’이 두 차례 있었다. 특히 결승전은 두 참가자가 직접 매장을 한나절 운영하며 손님을 받았다. 통상의 오디션처럼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를 받지 못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대중평가 방식을 도입한 건가.

= 음식 프로그램인데 시청자들이 먹어볼 수 없다는 점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가장 곤란한 부분이었다. 노래나 춤은 시청자들이 보고 듣는 순간 평가가 끝나는데, 음식은 먹어보지 않고선 평가가 불가능하지 않나. 매번 심사위원들이 음식 맛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시청자들과 마지막 방송은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꼭 우리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다.

- 대중 참여형 미션은 연출자에게도 많은 생각을 들게 할 법한 미션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대중의 호응은 결국 프로그램의 성공을 판가름하는 준거 중 하나니까.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향한 방송을 만드는 PD에게 ‘대중성’은 끊임없이 견지해야 하는 부분일 듯하다.

= 사람들이 무얼 좋아할지에 관한 고민은 언제나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이의 지점도 언제나 고민하고. 대중의 취향을 간파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예측만 가능할 뿐 도박에 가깝다. <더 디저트>의 경우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소재가 가져다주는 진입 장벽도 있었다고 본다.

- 전작 <솔로지옥>은 현재 시즌3까지 확정되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동시기 우후죽순 등장했던 많은 연애 예능 중 <솔로지옥>이 거둔 성과에 관해 자평한다면.

= 해외에서까지 사랑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다. <솔로지옥> 또한 여러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했던 작품이다. <더 디저트>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자막은 걷어내고, 최대한 텍스트보단 그림(화면)으로 시청자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소위 예능적인 편집 방식도 가미하지 않다 보니, 해외 시청자들도 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기분으로 우리 작품을 사랑해주었던 것 같다.

- <솔로지옥>의 경우 출연자 사전 검증 당시 전 출연진이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거쳤다는 사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더 디저트>까지 다수의 비연예인과 작업했는데.

= 비연예인을 방송에 노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작업이 검증이다. 넷플릭스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 전 출연진이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상담 과정에 연출진이 동석하진 않지만, 상담 결과에 따른 방송 적합도를 전문의로부터 건네받는다. 화제성이 있는 비연예인들에겐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예능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 대 사람의 일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대화다. 최대한 많은 대화를 사전에 나누다 보면 출연자에 관한 감이 선다.

- 예능 분야에서 여성 연출자로 10년간 살아왔다.

= 10년 전 입사할 때만 해도 남성 PD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촬영 현장에 나가면 아무도 내게 ‘PD님’이라 부르지 않았다. 일터의 동료들도 젊은 여성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일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새 입사하는 신입 PD들을 보면 JTBC의 경우 과반 이상이 여성 PD다. <더 디저트>팀만 해도 공동 연출자인 정종찬 PD를 제외하곤 전부 여성 연출진이었고, <솔로지옥> 때도 연출진의 8할이 여성이었다. 다행히 이 직종 또한 성별의 구분이 점점 무관해지는 중이다.

나를 연출자로 만든 것

어렸을 때부터 TV 보기를 워낙 좋아해서 방송국에 들어가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PD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PD가 꿈이었다. 나도 <무한도전>키드다. 매주 다른 에피소드로 방송을 진행하는 <무한도전>의 포맷이 내가 생각하는 PD의 일과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질릴 만하면 새로운 직업을 프로그램마다 가질 수 있는 일이 예능PD이지 않나.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가만히 앉아 일하는 회사원은 애초에 적성에 안 맞는다 여기기도 했고. (웃음)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

시청자들의 리액션이다. 나의 경우 언제나 프로그램이 공개되면 온갖 커뮤니티의 댓글을 모두 살핀다. 시청자들이 내 연출 의도를 알아봐줄 때 가장 행복하다. 정성스럽게 짤을 만들어주는 분들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