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화 찍을 때, 우린 나이 같은 거 몰라요”, ‘작은정원’ 배우들과의 인터뷰
2023-07-20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 오늘 저도 네분 선생님께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일동 너무 좋지요!

김혜숙 하긴, 우린 이미 늘 언니라고 불리는걸. (웃음)

- 이마리오 감독이 완성한 다큐멘터리 <작은정원>을 보니 어떠셨어요?

문춘희 솔직히 말하면, 우리 모습이 너무 부족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그런데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지니까 오히려 영화에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꽤 좋더라고요.

최순남 처음엔 내가 영화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안시루왔어요.(미안했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우리가 움직이는 거 하나하나가 너무 새롭고 고맙고. (이마리오 감독을 향해) 정말 고생 많으셨어.

김혜숙 다 우리 마리오 감독님을 만나서 영화가 된 거죠. 우린 그냥 매일이 실수덩어리인데 그걸 섬세하게 편집해서 이런 작품을 만든 거니까. 나같은 사람 이야기도 영화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요.

- 영화에 나온 본인들의 모습은 마음에 드세요? 처음에 자신을 찍는 셀프 카메라로 촬영하는 과정도 적응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문춘희 처음엔 내 모습이 너~무 미워. 도대체 왜 저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화면 속 내 모습을 보다보면 몰랐던 습관 같은 걸 발견하게 되니까 신기했어요.

김희자 내 목소리는 또 왜 그런대요? (웃음) 남을 찍어주는 건 적응이 됐는데 내가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여전히 너무 어색해요. 그런데 우리가, 자신을 잘 모르잖아요. 영화가 나를 비추면 그제야 알게 되니까 의미 있는 일이죠. 처음엔 내 얼굴이 너무 늙은이 같아서 못 보겠다 싶었는데 자꾸 보니 이 얼굴에 익숙해져.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날 받아들이게 된 것이 좋았어요.

문춘희 난 내 걸음걸이도 처음 알았어.

- 또 예를 들면요?

김희자 화면을 보니까 내가 자꾸만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더라고. ‘아이 참, 진짜 꼴보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일동 웃음) 그 뒤로는 의식적으로 자세도 고치고 그랬어요.

최순남 나도! 고개를 시도 때도 없이 흔들고 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이제 곤친다고 곤칠킬지 모르겠네.(고친다고 고쳐질지 모르겠네)

어쩌다 시작한 영화 만들기

김희자

- 여기 계신 ‘동네 학교’ 선생님들(최승철, 최제헌 연구자)과 사진 찍고 영화 만들기를 배우게 된 게 이제 벌써 8년차라고요.

김희자 다 명주동 덕분이지요. 할머니들이 뭐 할 일이 있어요? 그런데 이 선생님들이 우리 동네에 터를 잡으면서 2016년부터 스마트폰 사진을 배웠어요. 그땐 꽃만 잔뜩 찍었지 나를 찍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근데 숙제를 내주니까 어떻게든 나를 찍고, ‘나 내일 이거 어떻게 가지고 가나’ 밤새 창피해해요. 다음날 숙제를 갖다주면 그걸 또 엄청 큰 화면에 띄워서 같이 봐. (웃음) 선생님들이 이게 이래서 좋고 저게 저래서 좋고 막 칭찬을 해준단 말이에요. 그러면 다음엔 좀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하게 된 거죠. 그게 계속 이어져가지고 나중에는 동영상을 배웠어요. 어쩌다 여기까지 왔네요.

문춘희 선생님들 말을 듣고 조금씩 고쳐나가는데 어느새 내가 발전하고 있더라고요. 나이 들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 아닌가요. 그러면서 재미가 붙었고 우리가 정말로 ‘언니’들처럼 살게 된 게 아닌가 싶어.

- 처음에 스마트폰 사진 동아리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요.

문춘희 우리가 동네 계모임처럼 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화단 가꾸기를 했거든요. ‘작은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명주 동네의 화단을 열심히 가꿨지요. 나중에 그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가 열렸는데, 어느 날 이 언니들이 우리가 직접 사진을 배워서 찍으면 어떻겠냐고 그러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젊은 선생님들이 명주동에 터를 잡은 거예요. 무작정 찾아가서 가르쳐 달라고 그랬죠.

김희자 우리 선생님들이 쾌히 승낙하셔가지고 그날부터 시작해 동네 학교 6학년까지 다니고 지금은 벌써 8년째니까….

김혜숙 근 10년, 우리 참 행복했어요.

- 평균 연령 70대인 동네 학교 졸업식에서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던데요. 학사모 던질 때 기분이 어땠나요.

문춘희 그러게 말이에요. 다큐에도 우리 졸업하는 모습이 나가서 참 기분이 좋아. 그냥 정말로 학교 졸업하는 느낌이었어요. 우리끼리는 불가능했어요. 다 선생님들 덕분이죠.

김혜숙 솔직히 우리 세대는 그 옛날에 학사모 쓸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갖춰 입고 졸업식에 선다는 게 나한테는 상상 이상의 무엇이었어요.

-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극영화에서 자전적 다큐멘터리로 넘어가는 동안 성실히 숙제를 해오는 학생들이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고비였던 순간이 있다면요?

문춘희 우리 나이는 일단 휴대전화 자체가 에룹(어렵)잖아요. 처음엔 고생을 꽤 했죠. 그것도 한참이나. 나중에는 핸드폰으로 찍은 걸 파일 변환해야 하는 게 좀 귀찮았어요. 그런데 우리 나이치고는 이 정도면 잘하는 편이죠? 손주들이 할머니가 이 정도 했다고 하면 깜짝 놀라니까.

김희자 나같은 경우는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한참 동안 사진만 찍어놓고 그랬죠.

김혜숙 선생님들이 시키니까 앞에 카메라 켜놓고 자식들한테 전화 걸어서 “엄마한테 그동안 하고 싶은데 못했던 말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 걸 평생 어떻게 해보겠어요. 그때가 벌써 한 4년 전인데, 나는 참 많이 변했어요. 영화 하면서.

김희자 재밌는 게 애들마다 기억이 다 달라요. 우리 아이 중에 한 아이만 옛날에 나하고 다퉜던 기억을 말하더라고요. 나는 전혀 생각도 안 나는데…. 다른 애들도 모른다 그러고. 그런데 한참 어릴 때 속상했던 그 마음이 여전히 생생한 것 같더라고.

문춘희 와, 나는 그걸 하면서 내 자식들 성격을 새롭게 알았어. 우리 막내가 ‘오글’거린다면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렇게 민망해할 줄은 몰랐거든요. 나는 자식들한테 전화 걸어서 질문해보는 숙제 다시 하라면 또 하고 싶어. (웃음)

김혜숙

- 감독, 스탭, 배우, 촬영감독 등등 여러 역할을 돌아가며 다 경험해보셨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찾으셨어요?

김혜숙 전 내레이션을 했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싶었는데 나중에 참 뿌듯했어요. 낭독하는 일하고 잘 맞는 것 같아요.

문춘희 나는 찍는 거. ‘카메라 롤, 레디, 액션!’ 외치는 게 처음엔 어색하더니 나중엔 시원하게 나와요. 그리고 프레임 안에 거슬리는 게 있을 때 치워달라고 하면 스탭들이 막 분주하게 움직이니까 내 딴엔 신기하고. (웃음) 이거 하다보면 그래서 자꾸 내 나이를 잊어버려.

김희자 나는 촬영. 처음에 자처해서 촬영하겠다고 한 게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였어요. 차선으로 택한 거지만 하다보니 촬영감독만의 묘미를 알게 된 거죠. 한번은 선생님들하고 감독님이 우리 집 와서 촬영을 한다는데, 화면에 걸리기 전에 치워두면 좋을 게 내 눈에 딱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김혜숙 소품도 마련해놓고!

- 혹시 도중에 진도가 막히거나 너무 어려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지금껏 남아 있었던 분들의 동력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문춘희 도중에 그만둔 언니들도 있지요. 지금 남아 있는 언니들은 다 서로 옆에서 당겨주고 밀어주는 바람에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최순남 감독님이 어딜 가든 우리를 따라왔고. (일동 웃음)

김희자 자그마치 3년이나! 내가 말도 안 했는데 나 있는 데 어느새 감독님이 와 있고 그래요.

* 인터뷰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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