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영화 만들기, 힘 닿는 데까지 하고 싶어요.", '작은정원' 배우들과의 인터뷰
2023-07-20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카메라에 기록된 세월과 함께

- <작은정원>에서 희자 언니가 길 걷다 말고 젊은 시절에 남편분을 처음 소개받은 사촌 오빠 집을 소개해주시는데, 새삼 세월을 실감했습니다. 네분은 모두 강릉 명주동 토박이신가요. 명주동에서 몇년 사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문춘희 (순남 언니 붙잡으며) 당신은 일루 시집을 왔으니까 지금 계산을 해봐. (웃음) 난 4대가 여기서 살았으니까. 젊을 땐 다른 데 가서 살고도 싶었는데 이젠 못 떠나요.

최순남 53년이네요. 결혼하고 명주동 와서 고생도 참 많이 했고 좋은 일도 많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김희자 전 명주동에서 태어나서 바로 옆 홍제동으로 옮겨갔고 다시 여기 온 지는 46년. 우린 다들 언니들 집에 숟가락 몇개 있는지 알아요.

김혜숙 나는 이 언니들에 비하면 짧아요. 한 40년? 우리 남편이 명주동 가서 새농어촌건설운동(1990년대 강원도 마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새마을운동의 현대판이라 불린다.-편집자) 같은 거 하면서 나도 본격적으로 이쪽에 오게 됐고 작은정원 모임에 가입해서 이렇게 더 가까워졌죠.

- 네분이 인연을 처음 맺은 건 언제인가요.

김혜숙 제가 식당을 했었어요. 다들 우리 집 와서 환갑잔치도 하고 돌잔치도 하고 그런 인연으로 친분을 더 쌓아나갔죠. 강릉 시내가 크다면 크지만 또 거기서 거기거든.

문춘희 희자 언니랑 나는 학창 시절 선후배 관계고. (순남 언니 가리키며) 여기 새댁은 우리 동네 오빠랑 결혼한 거지. 내가 그 오빠랑 같이 컸거든.

김희자 이집 저집 딸끼리 또 친구고. 누가 어디 한번 가자 그러면 몰려가요. 서울 나들이하는데 발 아플까봐 시장 가서 다 같이 옷도 샀고. 이거 이번에 새로 산 신발인데 괜찮아요?

최순남 실 사러 갔다가 옷을 사대. (웃음)

- 젊을 때 운동 선수를 꿈꿨던 춘희 언니는 원래부터 마을 통장 역할을 도맡아 하셨다고 들었어요. 동네 사람들을 살뜰히 아우르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문춘희 아이, 그냥 학교 다닐 때 배구 선수를 한 거죠. 그다음엔 배드민턴에 열성이었고. 명주동에 우리 집 4대가 살았다고 했잖아요. 나는 우리 엄마, 아버지가 닦아놓은 거 잘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마을 사람들 자랑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요즘 도시 사람들이야 또 생각이 다르겠지만 한 동네에서 같이 평생 살면 그냥 가족 같고 자매 같고 그렇거든요. 정말이에요. 하루 종일 서로 걱정한다니까. 그래서 이 나이까지 참 수월하게 왔습니다.

- 희자 언니는 그런 얘길 하셨죠? “내가 죽어도 이 기록은 남는다는 게 참 좋아서” 영화를 계속 찍고 싶다고요.

김희자 그랬죠. 그런데 그 얘길 하면 좀 슬픈 게 우리 남편이 2월에 떠났어요. <작은정원>에 우리 남편도 나오니까 지금은 그게 좀 괴로워요. 조선시대 선비 같았던 남자인데 교직에 있느라고 반평생 학생들 지도하는 일에만 전념했죠. 한창 영화 찍을 땐 남편이 퇴직하고 난 이후인데 한번도 나를 도와주질 않는 거예요. 난 점점 나이를 먹고 힘이 달리는데. 그래서 내가 다큐 찍으면서 남편 세워놓고 그렇게 타박을 했죠. 솥에 있는 밥 좀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하고, 빨래도 이상하게 널어놓고 하니까 화도 내고. 그런데 남편 떠나고 보니까, 카메라 앞에서 남편한테 늘 싫은 소리만 한 것 같아 속이 쓰려요. 내 마음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는데….

문춘희 희자 언니가 시키니까 억지로 빨래를 널긴 너는데 빨랫줄에 옷을 그냥 아무렇게나 걸어놓은 걸 보고 우리 다들 얼마나 웃었는지.

최순남 떠난 사람은 돌아올 길이 없잖아요. 그래도 영화에 남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문춘희 (손 잡아주며) 언니 말대로 된 거야. 기록으로 남은 거야.

김혜숙 나이 들면 마음에 무덤이 많아져요.

문춘희

- 영화에서 춘희 언니도 먼저 떠난 남편 이야길 하시고, 순남 언니는 결혼하고 이제 조금 편해질 만하니 20년 간병 생활이 시작됐다고도 하셨는데요.

문춘희 순남네는 진작에 두번, 세번 떠날 것처럼 고비가 왔던 사람이죠.

김희자 중환자실에 몇번이나 가고도 아직 버티고 있어요. 옆에서 얼마나 잘 돌봤으면.

최순남 간병 잘해서 오래 살고 그런 게 아니고, 다 가는 날이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은 50대에 위암 4기 수술하고도 지금 80대까지 살고 있지요. 중간에 뇌졸중 같은 합병증이 또 오고… 내가 여기 합류해서 영화 찍을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우리 아저씨(남편)가 거동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에요.

문춘희 오늘 언니들 말 듣다보니 이런 얘기가 하고 싶네요. 우리, 영화 또 만들면 안될까. 다들 파이팅하게.

- 혜숙 언니는 큰 식당을 오래 운영하면서 가족까지 챙기며 살아오셨는데 좀처럼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었겠어요.

김혜숙 중심가에서 큰 식당을 했으니 매일 바빴죠. 평생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취미가 뭔지 모르고 살았어요. 우리 영감도 저세상으로 갔는데 실은 뭔가를 열심히 해야 슬픔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내 행복을 찾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친구가 끌어내서 복지관에 갔죠. 거기서 이것저것 배우다보니 노인대학에도 등록했고 난타를 거쳐 시 낭송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시 낭송? 처음엔 황당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어릴 때 시를 참 좋아했던 거 있죠. 그 마음을 펼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낭송이 나한테 너무 잘 맞아서 발표회도 열심히 참석하고, 영화 찍을 때도 내레이션을 맡게 된 거예요. 내 인생에서 한획을 그은 사건이지요. 이게 다 70살 넘어 시작한 거거든요. 우리 애들이 ‘엄마는 배우야, 시 낭송가야’ 할 때 꽤 뿌듯하답니다.

최순남

- <작은정원>에서 나이 들어가는 일의 어려움이나 외로움도 솔직하게 고백하셨어요. 여기선 질문을 바꿔볼게요.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김혜숙 편안해집니다. 이 영화 만들기만 해도 그래요. 선생님들은 우리한테 기회를 주고, 우리는 그냥 다 믿고 따라갔어요. 다 맡겼어요. 그런 게 가능해져요.

문춘희 나나 다른 사람이나 그냥 조금 모자란 모습도 좋아진다고 할까. 너무 매사 똑똑하게 보일 생각 안 해도 돼요. 조금 부족하게 살면 어때요.

김희자 우리 나이대 여자들은 평생 남 챙기며 살았는데 이 나이 먹으니 내 할 일만 하면 되니까 난 그게 좋아요. 그래서 지난해만 해도 애들 다 키워놓고 남편하고 둘이 사니까 걱정이 싹 사라졌는데, 지금은 떠난 지 얼마 안된 남편 생각하느라… 또 세월이 필요하겠지요.

최순남 쫓기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좋아요. 그런데 나는 나이 먹어 좋은 점보다 섭섭하고 서운한 점이 많아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나이 드니 먹는 것, 다니는 것, 다 마음처럼 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에요. 오늘도 실은 언니들이 꼭 나오라고 야단쳐서(웃음) 마음 굳게 먹고 멀리 나왔어요. 안 그럼 남편 돌보고 있었겠지. 근데 막상 나오니까 또 참 좋잖아요. 그러면 됐어요.

- 영화 만들기, 언제까지 하고 싶으세요?

문춘희 힘 닿는 데까지.

최순남 선생님들이 불러줄 때까지. (웃음)

김혜숙 이렇게 건전한 취미가 또 어딨어요? 오래 살면서 꾸준히 해야죠.

김희자 <작은정원> 다큐멘터리에 담긴 3년 동안엔 강원도 마을 지원 사업 덕분에 우리 할머니들에게 고마운 기회가 많았어요. 전 명주동에 여행 온 관광객들한테 폴라로이드 사진 찍어주는 일도 할 수 있었고. 그런데 올해 그 사업이 딱 끝난대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김혜숙 작은정원 덕분에 마을이 아름다워져 젊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잖아요. 그걸 우리가 직접 찍어보자고 사진을 배우게 된 거고. 이어서 영화도 만들었죠. 하나하나 조그맣게 해왔던 거지 큰 목표나 계획 같은 게 있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했을지도 몰라요.

문춘희 참 자랑스러워 다들.

- 마지막으로 네분이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문춘희 이대로만 같이 갑시다. 육체는 어쩔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우리가 먹은 대로 끌고 가자.

김혜숙 아프지 말자.

최순남 지금만큼만 살 수 있으면 제일 좋겠다.

김희자 <우리동네 우체부>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 받았듯이 <작은정원>은 어디 가서 상 안 받나? 반응 괜찮으면 2탄을 만들고 싶은데.

최순남 근데 우리 기자 언니, 이 얘기 다 정리할 수 있어요?

김혜숙 편집을 한참 하셔야 할 것 같아서 어떡해.

문춘희 우리가 너무 떼가리로 지그렸죠.

- 네?

일동 하하하하. 강원도 사투리가 튀어나와버렸네. 무리 지어 하도 떠들었다 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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