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뉴욕 장난감박람회에서 처음 공개된 바비는 등장과 함께 폭풍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세계적으로 1분마다 100개 이상의 인형이 판매됐고 앤디 워홀, 오스카 드 라 렌타 등 유명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었다. 소녀들 역시 열정적으로 바비를 추앙했다. 그러나 바비들의 세계인 ‘바비랜드’에 드러난 문제들, 남성 중심적인 미적 기준, 획일성과 몰개성, 성상품화, 백인 우월주의 등에 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바비에겐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 결국 변화는 찾아왔다. 시대가 바뀌고 여자아이들이 스스로 자기다움을 찾아나서는 동안 바비들 역시 다양성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바비의 제작사 마텔에서 흑인 여성 인형이 처음 나온 건 1968년이다. 바비의 친구인 크리스티는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인종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다른 바비들과 달리 자기만의 오리지널 착장이 없었다(어차피 같은 체형이라며 바비에게 가고 남은 옷을 입어야 했다). 바비의 주변인이 아닌, 바비라는 이름의 흑인 여성이 등장한 건 1980년 들어서면서다. 흑인이자 히스패닉의 정체성을 가진 바비는 등장과 함께 놀라운 반응을 얻었으나 그 호응의 시간이 길진 않았다. 이즈음부터 바비의 외형이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배경과 이력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1985년, 유리 천장을 깨고 올라온 CEO 바비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에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있다’(We Girls Can Do Anything) 캠페인이 이루어졌다. 당시 TV 광고음악으로 만들어진 노래엔 “우리 소녀들은 모든 걸 할 수 있지, 그치 바비? 도전하는 한 뭐든지 가능하지!”(We girls can do anything, right Barbie? Anything is possible as long as I try)라는 가사가 담겨 있는데, 이를 많은 여자아이들이 따라불렀다고 한다. 그 뒤로 해군 바비(1991), 소방관 바비(1995), 대통령 바비(2004), 우주비행사 바비(2015) 등 다양한 인종과 직업군으로 구성된 바비가 생산됐다.
2016년, 마텔사는 전세계적인 페미니즘 열풍과 10대 여자 청소년들의 태도 변화를 인지했고 이러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바비에게 세 가지 체형을 도입했다. 키가 큰 바비, 체격이 큰 바비 그리고 왜소한 바비까지, 새로운 체형의 바비들은 공개되자마자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 체격이 큰 바비는 <타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바비의 남자 친구 켄에게도 이러한 관점을 적용해 키가 크거나 작은 켄, 콘로 형태의 땋은 머리를 한 켄, 주근깨가 있는 켄 등을 디자인했다. 2019년에 이르러서는 휠체어를 탄 바비와 의족을 찬 바비 등을 새롭게 내세우며 바비의 세계 내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당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바비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 영상이 각종 SNS와 영상 플랫폼에 퍼져나가면서 전세계인을 감동시킨 일화도 유명하다.
영화 <바비>에서 사샤(아리아나 그린블랫)가 바비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너는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줘.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강박을 주면서 성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를 하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 사샤가 바비의 아름다움보다 여성들의 자유를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바비는 새로운 질문과 고통을 떠안는다. 인형 바비가 변화해온 방식도 다르지 않다. 달라진 외형과 배경의 바비가 여자아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