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한눈팔 새 없이 재밌다, 왬!에 관한 다큐멘터리 ‘왬!’
2023-07-28
글 : 정재현

1975년 영국의 한 학교에 그리스계 남학생 예오르요스가 전학 온다. 전학생을 빤히 보던 이집트계 남학생 앤드루는, 어쩌면 저 전학생이 자신의 평생 단짝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앤드루는 전학생에게 ‘요그’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선뜻 자신의 옆자리를 제의한다. 그렇게 솔메이트가 된 요그와 앤드루는 밴드를 결성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지지를 받는다. 활동 기간 중에도 큰 의견 충돌이 없던 둘은 정상의 위치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서로에게 고한다. 만사가 일사천리여서 ‘영화도 아니고’류의 비판을 받을 법한 이 이야기는 실화다. 이는 1981년부터 1986년 영국과 전세계를 풍미한 전설의 듀오 ‘왬!’(이하 왬)에 관한 이야기다. 앤드루는 왬의 앤드루 리즐리이고, 요그는 조지 마이클이다.

<왬!>은 두 멤버의 구술 기록과 활동 영상만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다. 충실하고 꼼꼼한 푸티지는 모두 앤드루 리즐리로부터 나왔다. 리즐리의 모친은 50권에 달하는 스크랩북을 만들어 왬의 활동을 기록했고, 여기에 리즐리는 자신이 소장한 미공개 영상과 미공개 음성파일을 영화에 제공했다. <왬!>은 (당연하지만 또 놀랍게도) 조지 마이클과 동등한 비중으로 리즐리를 담고, 마이클에 다소간 가려진 리즐리의 미덕을 관객에게 털어놓는다. 리즐리는 활동 내내 “조지의 인기가 부럽진 않나”와 같은 우문을 받았고 이에 언제나 말 대신 행동으로 현답을 제시해왔다. 왬 하면 떠오르는 스타일링과 이미지 PR은 모두 리즐리의 아이디어고, 내성적이고 소심한 요그 속에 잠재된 슈퍼스타 조지 마이클을 끌어낸 공신도 리즐리다. 물론 리즐리는 마이클에게 서운해하지 않았고, 마이클은 사망 직전까지 모든 인터뷰에서 리즐리의 공을 치하했다.

활동 기간 내내 멤버간 심각한 갈등이 없던 왬의 커리어처럼, <왬!> 또한 92분의 러닝타임 동안 덜컹이는 구석 없이 정석적으로 흘러간다. 달리 말해 <왬!>엔 형식적인 실험을 감행한 부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딱 꼬집어 흠잡을 구석도 없다. <왬!>은 한눈팔 새 없이 재밌다. 이같은 영화의 특성은 그룹 내에서 프로듀서와 송라이팅을 전담한, 마이클을 향해 제기된 평단의 비판을 떠오르게 한다. 왬은 인기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이래 줄곧 ‘데뷔 극초기와 달리 사회적 메시지가 노래에 전무하다’, ‘인기에 영합한 곡을 낸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주류 문화에 자신들의 음악이 이름을 올리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영화에서 그는 차트 1위 수성을 위한 판촉 계획을 끊임없이 고민했고, 왬 활동 중엔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커밍아웃하는 대신 성공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기로 다짐한다. 특정 예술가가 소수자 집단에 속해 미개척지의 개척자로 불릴 때면, 평단과 대중은 그가 으레 선봉장의 역할까지 도맡으리라 넘겨 짚으며 예술가에게 과도한 윤리의식을 청구하거나 공인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의 변혁이 아닌 미학의 실현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왬!>은, 왬의 활동이 그랬듯 파격의 실행이나 메시지 추구 없이도 잘 만들어진(well-made) 다큐멘터리를 찍을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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