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70년대에는 서스펜스가 구축되는 방식 자체가 달라요.”, ‘밀수’ 류승완 x 박찬욱 대담 1
2023-08-07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류승완 제 영화를 가지고 감독님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지 않나요?

박찬욱 아, 그래? 그런가?

류승완 저는 감독님 영화가 개봉하면 GV도 하고 블루레이 코멘터리도 하고….

박찬욱 아니, 류 감독의 요청이 없어서….

류승완 저한텐 상당히 떨리는 자리예요. 물론 감독님은 항상 제 영화의 가장 첫 번째 관객이시고 대본을 쓸 때나 편집본을 만들 때나 떨리는 기분으로 말씀을 청해 듣곤 하는데 오늘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하니 좋네요.

박찬욱 부르지도 않는데 내가 먼저 전화해서 “GV 좀 하면 안될까?” 할 순 없잖아요. <밀수>는 제가 예전에 가편집본으로 마지막 물속 액션 시퀀스를 봤어요. 수조 세트에 바위만 몇개 있었지 그냥 퍼런 배경이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물속에서 액션을 구사할 수 있을까 정말 놀랐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물론 그 장면도 압권이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신나고 활력이 있었어요. 제가 류승완 감독 영화 중 제일 좋아했던 것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이었는데 <밀수>가 더 재밌었어요.

<밀수>의 70년대, <동조자>의 70년대

박찬욱 지금 편집하고 있는 <동조자>도, 이전의 <리틀 드러머 걸>(2018)도 1970년대가 배경이에요. 70년대를 좋아하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는 적어도.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시대고 또 70년대 영화들이 좋잖아요. 그리고 패션이나 공산품, 산업디자인, 음악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70년대가 활기 있고 생명력 넘치는 시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70년대 얘기가 나오면 일단 관심이 생겨요.

류승완 70년대에는 휴대폰을 쓸 수 없으니까 서스펜스가 구축되는 방식 자체가 달라요. 어딘가에서 큰일이 나서 집에다 말해야 하면, 그것만으로도 긴장감이 다르잖아요.

박찬욱 휴대폰하고 CCTV가 없으니까.

류승완 저는 감독님하고 나이 차이가 10년 나잖아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려서부터 당시 유행곡보다 좀 흘러간 노래가 좋았어요. 아버지한테 음악과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늘 집에 음악이 흘렀어요.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레스토랑에는 당신이 직접 디제잉한 카세트가 있고 그랬거든요.

박찬욱 이야~.

류승완 제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영화를 봤으니까 처음 본 영화도 70년대 것이었어요. TV에서 봤던 <미녀 삼총사> 등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 옷 입는 방식을 보면서 ‘저렇게 풍성하고 멋있는 세상이 있구나’ 하고 느꼈죠. 이번 영화에서 제가 제일 좋았던 것은 그 시절 음악을 원없이 쓸 수 있었던 것이에요.

박찬욱 그러면 선곡이 다 감독의 뜻이에요? 음악감독 장기하씨의 의견이 있었어요?

류승완 선곡은 제가 대본을 쓸 때부터 아예 써놨어요. 선곡된 음악만으로도 러닝타임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잖아요. 자칫하면 작곡한 스코어랑 안 붙을 수 있어서 이 시절의 대중가요와 피가 통하는 아티스트가 누굴까 생각하다가 장기하씨를 떠올렸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박찬욱 애꾸(정도원)가 호텔 방에서 음악에 심취해 팔을 까딱까딱하는 것도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인가요?

류승완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가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행동을 가져온 거예요. (웃음) 감독님의 <리틀 드러머 걸>도 그렇고 <동조자>도 그렇고 70년대가 배경인데, 이 시절 음악을 <동조자>에서는 어떻게 쓰실지 궁금해요.

박찬욱 <리틀 드러머 걸>에선 별로 안 썼고요. 이번 <동조자>에는 아주 많이 써요.

류승완 <리틀 드러머 걸>을 스코어 위주로 가신 이유가 있나요?

박찬욱 스파이, 음모, 국제정치에 대한 얘기라서 대중음악을 안 썼죠. 그게 아쉬워서 이번에는 많이 써요. 근데 그게 다 돈 문제라서 내가 원하는 만큼 쓸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한데, 워낙 미국 팝은 다양하니까 이 곡이 비싸면 싼 걸 찾아보는데 다른 좋은 곡도 많아요. 그래서 재밌게 찾고 있어요. <밀수>에서는 <연안부두>하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 두곡이 정말 압권이었던 것 같아요.

류승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밴드 ‘산울림’의 김창완 선생 라이브를 보면,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록인데 재킷에 넥타이를 매고 기타를 연주하거든요. 당시 ‘송골매’를 비롯해서 많은 밴드들이 청바지에 터프한 모습으로 나왔는데, 산울림은 회사원 같은 모습으로 나와서 기타를 치니까 ‘와, 저게 뭐지?’ 싶었죠. 가사는 서정적인데….

박찬욱 음악은 사이키델릭하고!

류승완 이상하게 폭력적인 기운이 느껴졌어요. 언젠가는 저 음악에 살벌한 액션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는데 이번에 구현할 수 있었죠. 이번 영화음악에는 감독님의 영향도 있어요. 연출부 시절 가까이에서 본 감독님은 클래식부터 하드록까지 다 들으시는데, 영화에서 의외의 가요를 툭툭 쓰실 때가 있어요. <박쥐>에서 이난영의 곡도 그렇고요. 이게 어울릴까 싶지만 곡이 세련되게 영화와 딱 붙잖아요. <스토커> 선곡도 좋아서‘와, 저 감각을 어떻게 흉내낼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근데 제가 하면 왜 촌스러울까요?

박찬욱 뭐가 촌스러워~. (웃음) <밀수>를 보고 나서 김지운 감독하고 밥먹을 때 김지운 감독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시퀀스는 정말 탁월하다고 말했잖아요. 진짜 의외의 선곡이고 그런 곡을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곡이 장면을 아주 빛나게 해줬어요.

류승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로 고민이 좀 있었는데, 시퀀스가 곡의 길이보다 길었거든요.

박찬욱 전주를 좀 손봤나요?

류승완 네. 근데 장기하 음악감독 말이 “이 시절의 사운드는 구현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마이크 상태도 지금과 달라서 안되고, 연주 방식도 악보를 보고 합을 맞춘 게 아니라서 지금의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박자를 가지고 흉내내면 스피드도 안 맞는대요. 고민고민하다 장기하 음악감독이 “원곡자에게 허락을 받고 이 곡을 편집해서 늘이는 게 최선인 것 같다”고 해서 허락을 받고 전주를 늘였어요. 장기하 음악감독과의 작업이 좋았던 게 장 감독이 휴대폰으로 작곡한 음악을 보내오는 것이었어요. 들어보니 음악도 좋고 재밌어서 “진짜 잘하고 계신다. 영화음악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저한테 속아서 계속 음악을 미리 만들어서 보냈어요.

박찬욱 미리? 촬영 중에?

류승완 미리! 촬영 전에!

박찬욱 엥?

류승완 김혜수, 염정아 배우가 밤에 대화하는 장면에 깔리는 음악 있잖아요. 그때의 기타 음악과 사진으로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음악은 다 미리 나온 것들이에요. 밀수할 때 나오는 음악 같은 것도요. 현장에서 아예 음악을 틀어놓고 찍었어요.

박찬욱 이야~.

류승완 근데 장기하 음악감독이 후반작업 때 음악 작업하는 걸 알아버린 거예요.

박찬욱 알았구나! 몰라야 하는데. 계속 몰랐으면 내가 다음 작품에 장기하 감독을 쓰려고 했는데….

류승완 작업실에 가니까 목디스크 온 것 같은 자세로 앉아서 절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제가 프라이머리한테 알아보니까 영화음악은 미리 작업하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왜 말씀 안 해주셨어요?”라는 거예요. “안 물어보셨잖아요. 만들어주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잖아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저 다시는 이렇게 안 할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후반작업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작업을 진행하잖아요. 그 작업을 반 정도 하고 나서는 아예 “다시는 영화음악을 안 할 거예요”라고. (웃음)

박찬욱 최근에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엔니오 모리코네가 촬영 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음악을 다 만들어놨던데? 그래서 그걸 현장에서 틀어놓고. 그런 사례를 가르쳐줘요, 장기하씨한테.

류승완 안 먹힐 거 같아요. 영화음악을 안 해도 된다고 말하거든요. 아, 내가 너무 고생시켰나봐~.

박찬욱 나도 <공동경비구역 JSA> 할 때 명필름이 “할리우드에서는 다 스토리보드 전체를 만들어요”라고 하는 말에 속아가지고 다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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