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 ‘달짝지근해: 7510’ 이한 감독, 중년의 멜로에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 있다
2023-08-17
글 : 이자연
사진 : 백종헌

과자 회사를 다니며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루틴을 따라야 마음이 놓이는 치호(유해진)는 노름에 빠진 형을 대신해 다달이 돈을 갚는다. 빚을 갚기 위해 캐피털 상담원으로 취직한 일영(김희선)은 우연히 만난 치호의 다정함과 순수함을 알아보고 사랑에 빠진다. 말 많은 여자와 혼잣말이 편한 남자. 홀로 식사하는 게 익숙한 남자와 식탁을 나누고 싶은 여자.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둘은 서로의 연결점을 알고 깊이 파고든다. 어색한 듯 이제 막 가까워지기 시작한 두 남녀의 어긋난 박자는 모두가 공감하는 친근한 웃음으로 전환되며 어느새 달짝지근해진다. <연애소설> <청춘만화> <완득이> <증인> 등을 만든 이한 감독에게 풋풋하면서도 능청스러운 40대의 연애담에 대해 물었다.

- 이병헌 감독이 <달짝지근해: 7510> 각본을 쓰고 이한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두 감독의 인연이 궁금하다.

= 10년 전쯤 내가 한 시나리오 공모전의 심사를 맡았는데, 당시 이병헌 감독이 출품한 작품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무작정 전화를 걸어 같이 술 마시자고 했다. 그때를 계기로 가까워져서 이병헌 감독이 쓴 초기작을 거의 모두 읽어볼 수 있었다. <달짝지근해: 7510>도 그때 접한 것 중 하나다. 10년도 더 된 시나리오라 시대상에 맞지 않는 것들만 각색했다.

- 일영 역으로 김희선 배우를, 치호 역으로 유해진 배우를 낙점했다.

= 감정 표현에 거리낌 없는 순수한 치호가 유해진 배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마침 우리팀 프로듀서와 전작을 함께했던 연이 있어 제안했고, 유해진 배우가 흔쾌히 응해주었다. 일영이는 푼수 같지만 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이 중요하다. 이러한 일영의 성격과 누가 가장 비슷할까 고민하니 단번에 김희선 배우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김희선 배우가 영화 작업이 오랜만이라며 고사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설득했다. 김희선이 아닌 일영은 상상할 수 없었다.

- 로맨스 장르라 하면 보편적으로 2030세대 남녀주인공의 이야기를 떠올리지만, <달짝지근해: 7510> 은 40대 남녀의 평범한 연애와 이별을 다룬다.

=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부분이 중년의 사랑을 다룬다. <프랭키와 쟈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린 카드> 등 중년의 사랑은 젊은 세대의 것만큼 발랄하고 통통 튀진 않지만 고유한 깊이를 지닌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시선부터 이별 후에도 아픔을 딛고 일상을 살아야 하는 현실까지 인간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중년의 멜로를 통해 나이듦에 담긴 다양한 사랑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 치호는 상대방을 신경 쓰지 않고 속마음을 쏟아내는 등 사회성이 일면 부족해 보이는 인물이다. 극 중에서 치호가 가장 많이 듣는 말도 ‘이상하다’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그를 따르는 사람도 많다. 치호는 어떤 유형의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인가.

= 일반 사람이 보기에 치호는 이상해 보인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자면 비정상에 가깝다. 어릴 적에 사고를 겪은 뒤, 어떤 날에는 괜찮지만 또 어떤 날에는 정신이 흐리멍텅하다. 유해진 배우가 이 미묘한 변화를 정말 잘 그려냈다. 본인 말로는 (제정신이)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한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도움됐다고 한다. 치호 나이 정도 되면 사회에서 통용되는 예절과 규범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게 이 사람에게는 작동이 잘 안된다. 치호처럼 언뜻 보기에 이질적이고 낯선 사람이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 치호의 형 석호(차인표)는 일영의 존재를 경계한다. 카페에서, 김밥집에서, 일영의 집에서 총 세번 석호가 일영을 위협하는데 이 과정이 다소 폭력적으로 비쳐진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무게와 석호의 설정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가졌나.

= 정말 어려웠다. 석호의 위협이 너무 현실적이면 극의 분위기가 바뀔 것 같고, 그렇다고 위협적이지 않으면 개연성이 떨어진다. 일종의 딜레마였다. 하지만 치호와 일영에게도 난관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너무 쉽게 이뤄지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덜 끌린다. 인생사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석호의 질주는 이들에게 예견된 갈등이었다. 석호의 난입이 복합적인 이해관계를 보여줄 거라는 믿음으로 촬영하면서, 일부러 풀숏으로 담았다. 이들의 싸움이 너무 확대되거나 강조돼 보이지 않길 바랐다. 나도 폭력을 싫어한다. (웃음) 다만 석호의 위협 앞에서 일영이나 일영의 딸도 쉽게 무너지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도 싸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 웃음을 겨냥한 장면이 많아서인지 촬영 현장 분위기도 무척 화기애애했다고. 배우들의 애드리브는 어느 정도 반영되었나.

= 내가 컷해도 배우들이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과정에서 즉흥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다. 배우들의 그런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게 좋았다. 자동차 극장 시퀀스도 유해진 배우의 애드리브가 반영된 것이다. 그 장면에서 스탭들도 모두 빵 터져 웃었다. 매운맛의 유해진도 좋더라.

- 임시완, 고아성, 염혜란, 정우성… 다양한 배우가 특별 출연을 했다. 모두 <오빠생각> <증인> <우아한 거짓말> 등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 처음에 특별 출연을 넣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거의 없기도 하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긴장됐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건 임시완 배우에게 제격인데?’ ‘이건 고아성 배우가 하면 잘 어울리겠다’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래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아닌, 나름의 색깔과 개성이 살아 있는 이들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배우들이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주었다. 정우성 배우는 연락하자마자 “감독님, 제가 보고 싶으시구나?” 하더라. (웃음) 나는 연기자 복이 많은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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