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O’PEN)은 CJ ENM이 신인 창작자 발굴, 육성을 위해 2017년 발족한 프로그램이다. 작가 교육뿐만 아니라 오펜 출신 작가들이 다양한 비즈니스 매칭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웹소설, 게임, K팝 등 콘텐츠 산업 전반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스타 작가 한명의 창의성에 의지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신인 작가의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게 돕는 시스템은 드라마 <슈룹> <갯마을 차차차> 등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발판이 됐다. CJ ENM의 사회 공헌 사업에서 시작된 오펜은 최근 새로운 창작 시스템과 IP 비즈니스를 고안하는 센터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처음 오펜을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7년 전만 해도 CJ ENM은 영화가 더 강세였지만 드라마의 입지도 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앞으로 CJ ENM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스토리텔러였다. 잠재성을 가진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해서 현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한국의 스토리 시장도 훨씬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영화와 드라마 산업의 발전은 곧 CJ ENM에도 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 배경은 무엇인가.
= 과거에는 드라마의 인기를 확장하는 측면에서 시즌2를 만들고 싶어도 한 작가가 작품을 준비하는 데 몇 년이 걸리고 배우 캐스팅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의 니즈가 새로운 오리지널에 좀더 쏠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외 시장이 커지면서 한번 만들어진 IP를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최근 시장에서 시즌제나 스핀오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한명의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기획하고 캐릭터를 구성하고 서사를 만드는 시스템은 장점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수 있고 다양한 인물을 구성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생각할 때 기존과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를테면 영화감독과 드라마 작가가 협업을 한다거나 기성 연출자가 크리에이터로 붙고 신인 작가들이 대본을 쓴다거나 서울과 지방 작가들이 같이 글을 쓰는 등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있다. 콘텐츠 산업의 R&D라고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만의 창작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 오펜 설립 이후 콘텐츠 업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영화가 위기를 맞고 OTT 플랫폼은 전성기를 누렸다. 오펜 역시 영향을 받았겠다.
= 여전히 영화, 드라마, 음악으로 부문이 나눠져 있지만 시장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선발이나 교육 과정에 변화가 있었다. 이를테면 영화 작가들이 쓴 시리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영화와 시나리오를 오갈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됐고 작가들의 의지 또한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영화 작가들에게 시나리오 교육만 집중적으로 받게 했다면 지금은 시리즈를 쓸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한 커리큘럼도 제공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 힘이다. 새로운 트렌드와 창작 방식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 지난해 오펜 공모전의 키워드는 ‘캐릭터’, 올해는 ‘캐릭터 어게인’이다. 오펜 작가들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 ‘캐릭터 캠프’ 프로그램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 우리가 캐릭터를 강조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모든 스토리는 캐릭터와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존의 작가 교육은 서사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작가들에게 캐릭터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캐릭터 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두 번째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다. 시즌제, 시퀄, 스핀오프 드라마가 나오고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다양한 트랜스미디어가 시도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캐릭터가 훨씬 강력한 힘을 갖는다. 최근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면 대부분 대중의 응원과 호감을 받는 유니크한 캐릭터들이 존재했다.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리스트를 공유한 뒤 이들을 조별로 집중 연구하는 시간을 갖는다거나 기존 캐릭터 및 실제 주변에 있는 인물을 조합해 에피소드를 만드는 훈련을 한다.
- 상업적인 성공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에 치중하다 보면 개인의 고유한 예술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 않나. 시스템과 창의성은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까.
= 오펜은 창작자의 자율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회사다. 모든 콘텐츠 산업은 독보적인 무언가가 새 시장을 리드하면 다른 것들이 따라오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금이 들어오고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한 일이 개인 한 명에게 너무 의존하면 안된다. 익숙한 것 중에 가장 새로운 것 혹은 새로운 것 중에 가장 익숙한 것의 경계를 찾아야 한다. 작가와 감독의 창의성을 지켜주면서 그게 산업과 배치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시스템의 목표다. 외부의 피드백과 조언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나 시장의 트렌드, 산업 관련 지식을 알려주는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 한국의 스토리텔링이 해외와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나.
= 외신에서는 사회적 계급, 이념적 갈등을 잘 녹여낸다고 평가하는데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랬었나?’ 싶긴 하다. (웃음)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면서 그 안의 사람들은 갈등하고, 어떤 이는 뒤처진다며 스스로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 속에 적응 혹은 부적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갖게 된 것이 한국 스토리 산업을 이끌어온 힘이 아닐까 싶다.
- 영화와 드라마, 웹툰, 웹소설, 게임, K팝 등 다양한 필드가 스토리 산업이라는 공통분모 하에 협업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오펜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실감하나.
= 오펜 소속의 작가와 해외 작가가 협업하는 경우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작가방을 꾸리기 전 초안을 만들 때 한국 작가들에게 컨설팅을 받고 싶어 한다. 한국 드라마가 갖고 있는 장점을 흡수하고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시안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가령 김보통 웹툰 작가와 협업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든지, 최근 드래곤플라이와 신규 스토리 IP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스페셜 포스>의 세계관을 함 께 만드는 식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하고 있다. 웹툰 회사 와이랩의 <아일랜드>가 티빙에서 드라마로 나왔고 <테러맨>은 애니메이션으로 나올 예정이다. 앞으로 웹툰과 게임, 드라마를 동시에 기획하며 각각의 팬덤을 흡수하고 이야기의 폭을 넓히는 시도도 하려고 한다.
- 지금 업계의 화두는 매력 있는 스토리를 강력한 IP로 자리 잡게 하는 데 있는 듯하다.
= ‘IP개발센터’라는 이름도 같은 맥락에 있다. 예전에는 스토리가 하나의 결과물로 이어져 아웃풋을 내고 일정한 팬덤을 확보했다가 휘발됐다면 지금은 IP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과 만나면서 팬덤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졌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 <여고추리반>의 캐릭터를 활용해 이를 스크립트로 바꾼다든지 한국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을 조명하는 기획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