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의 문화 시장, 세계의 음악 시장을 K팝이 선도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성취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K팝의 부흥을 선도한 BTS의 신화엔 한 가지 분명한 경쟁 우위가 있었다. 아티스트를 매개로 한 고유의 스토리텔링이다. 현실의 방탄소년단에 주어진 언더도그 서사가 앨범 《화양연화》 (2015) 속 소년들의 성장 서사와 맞물리면서 전세계 팬들은 그들의 정체성, 스토리, 메시지에 더욱더 몰입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하이브는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을 전폭적으로 펼치고 있다. 소속 아티스트마다 고유의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고, 원천 스토리를 여러 콘텐츠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총괄하는 황보상우 하이브 스토리사업본부 사업대표에게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앨범을 기점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등 주요 그룹들도 오리지널 스토리텔링 사업을 중시하고 있다.
= K팝 산업엔 오랫동안 ‘세계관’이 존재했다. 이는 아티스트와 팬들에게 다양성과 새로운 재미를 준다는 측면에서 유의했다. 다만 하이브는 세계관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세계관은 몇개의 키워드와 상징을 통해 그룹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일에 가까웠다. 반면에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는 구체적인 이야기와 캐릭터에 바탕을 둔다. 어떤 이야기든 구체적일수록 몰입도가 높아진다. 파편적인 설정과 정보들로 이루어진 세계관보다는, 완전한 내러티브가 갖춰진 ‘원전’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BTS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통해 확인한 것은, 스토리가 음악의 메시지를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담 조직이 만들어졌고, 스토리를 아티스트 원천 콘텐츠 외의 다양한 장르와 채널로 확장하는 사업의 한 형태로 발전시켰다.
- 스토리텔링 개발에 참여하는 인력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 기존 엔터테인먼트 산업엔 없는 직무였다. 게다가 창작 관련 역량뿐 아니라 메시지 개발에 대한 능력도 요구되므로 조직을 구성하는 게 쉽진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기획자와 크리에이터들을 채용했고 지금 스토리텔링 조직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꼭 서사 창작에 종사한 경력자만 있진 않다. 광고업 종사자, 웹소설 작가, 기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갖춘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 기본적으로 스토리 기반의 콘텐츠를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 장르와 포맷의 구분 없이 IP 전반을 깊이 있게 즐기는 분들을 고려하고 있다.
- 하이브의 스토리사업본부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개발 과정을 거치나.
= 프로젝트 단위로 기획자와 작가를 배정한다. 스토리는 총괄 프로듀서의 아이디어를 씨앗 삼아 개발하는 사례도 있고, 모두가 함께하는 브레인스토밍과 집단창작 형태로 스토리의 윤곽을 잡는 경우 등으로 다양하다.
- 집단창작 과정과 효과가 궁금하다.
= 하이브의 오리지널 스토리는 전적으로 내부에서 만든다. 스토리 론칭 계획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서 짧고 굵게 아이디어 회의를 계속한다. 아티스트의 활동 시기와 붙어 있고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업무 일정이 분명하다. 내부에서 만든 여러 시놉시스를 중심으로 스토리의 윤곽을 잡아나간다. 그리고 시놉시스, 상세 트리트먼트, 캐릭터 및 설정으로 이루어진 스토리 패키지를 제작한다. 더불어 캐릭터, 배경,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각종 설정집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설정집에는 스토리의 기획 의도, 스토리 개요 및 타임라인, 주요 캐릭터, 배경 등이 상세하게 정리된다.
- 김초엽 작가가 르세라핌의 <크림슨 하트> 프롤로그를 쓰는 등 외부 인력과의 협업도 있다. 협업 과정에서 기존 스토리를 유지하는 방식은.
= 오리지널 스토리는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 출판 등의 콘텐츠 플랫폼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앨범, 곡, 뮤직비디오, 콘서트까지 연계되어 만들어진다. 설정에 있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김초엽 작가 등 외부 필자나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 작가들과 협업할 때도 스토리의 큰 줄기와 주요 설정을 유지하려 하지만 각 콘텐츠의 포맷에 따라 조금씩의 변화는 있다. 내부에서 만들어놓은 이야기의 큰 흐름과 핵심 메시지, 설정 등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창작의 자유와 재미를 위한 여지를 열어둬서 좋은 결과물을 내기도 한다.
- 스토리텔링 전략에 있어 참고한 선례가 있나.
= 특정 선례를 참고하지는 않았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집단창작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분업화가 이뤄지면 자칫 시스템적으로만 일을 하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콘텐츠 유형별 또는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여러 부서의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를 IP 삼아 웹툰, 웹소설, 애니메이션 등으로 재구성하는 이유와 효과는.
= 아티스트의 팬덤, 그리고 콘텐츠를 즐기는 팬덤은 늘 변화한다. 과거에는 상상의 여지나 디깅하는 재미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쉽고 직관적인 콘텐츠를 선호한다. 팬들의 다양한 콘텐츠 소비 패턴에 부합하는 양질의 콘텐츠가 결국 아티스트의 원천 활동과 앨범 등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주며 팬들을 만족시킨다. 또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신규 팬들을 유입하기도 한다. 물론 ‘오리지널 스토리’ 자체로서의 재미가 있어야만 다양한 팬들의 니즈에 부합할 수 있다. 우리가 스토리를 만드는 일에 진심인 이유다. 가끔 하이브가 직접 웹툰과 웹소설을 만드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오해도 있는 것 같은데 절대 아니다. 하이브 아티스트의 팬덤을 비롯한 주 소비층은 웹툰과 웹소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다. 또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를 가장 쉽고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형태가 웹툰, 웹소설이기 때문에 이 장르를 통해 빠르게 제공하는 것에 가깝다. 핵심은 스토리를 가장 재미있게 전달하는 콘텐츠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 그룹 엔하이픈의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다크 문(DARKMOON): 달의 제단>은 웹툰 누적 조회수 1.5억뷰를 달성하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어떤 경쟁 우위가 있었나.
= 아티스트의 실제적인 서사만 이야기로 개발하진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는 판타지이며 해당 아티스트가 하고자 하는 음악적 메시지와 연결된다. 아티스트 서사의 웹툰화가 아니라 오리지널 스토리의 웹툰화다. 이런 측면에서 엔하이픈과 <다크 문> 시리즈의 컬래버레이션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는 ‘뱀파이어’라는 키워드 덕분이다. 엔하이픈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졌다. 아티스트가 평범한 일상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은 곧,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중간자적 존재인 뱀파이어 소재와 잘 맞았고, 오리지널 스토리에까지 잘 녹여졌다. 여기에 환생 등의 트렌디한 키워드까지 적절히 배합됐다. 엔하이픈 팬덤에서도 큰 관심을 가졌고, 엔하이픈이라는 팀을 모르는 웹툰 독자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 차후 K팝 산업 내 스토리텔링 분야의 중요성과 비전을 말해준다면.
= 가장 길고 깊게 몰입할 수 있는 건 결국 ‘이야기’다.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비단 K팝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 산업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K팝 산업에서 하이브 오리지널 스토리가 보여준 즐거움의 확장, 몰입도의 상승적인 측면에서 스토리텔링은 그 가능성을 증명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