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의 작품들을 둘러보면 아주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월화수목금토일, 어느 요일을 가든 상위권엔 ‘박태준 만화회사’의 작품이 걸려 있다. <외모지상주의>로 메가급 흥행을 거뒀던 박태준 작가를 중심으로 모인 박태준 만화회사의 괄목할 만한 성과다. 정식 사명은 더그림엔터테인먼트, 국내 최대 규모의 웹툰 회사 중 하나인 이곳엔 웹툰 집단창작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 개인 단위의 창작 분야로 시작했던 웹툰 산업이지만, 산업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창작 체제의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K웹툰은 북미 등 거대 소비 시장으로 뻗어가며 성공적인 스토리텔링 사례로 자리 잡고 있다. 핀테크, IT 산업에 종사하다가 2년 반 전에 더그림엔터테인먼트에 안착한 안형수 이사를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 웹툰 집단창작 체제를 구상한 계기는.
= 웹툰 산업에 입성했을 때 첫 번째로 든 의문이 있다. ‘왜 웹툰이 이렇게까지 잘되냐?’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간단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이 재밌는 작품을 만들면 인기를 끈다. 그렇다면 사업가로서 해야 할 임무는 박태준 대표처럼 성공적인 창작자들의 작품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는 일이었다. 마침 박태준 대표가 나에게 원한 것도 웹툰 회사를 어엿한 회사처럼 운영하는 체계적 방법의 강구였다. 그래서 다수 인원이 팀 단위로 움직이는 집단창작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도입하게 됐다.
- 집단창작의 형태를 참고한 분야가 있다면.
= 특정 선례를 따라 하진 않았다. 다만 국내외 드라마 작가들의 집단창작 사례를 알고 있긴 했다. 메인 작가가 보조 작가와 일하면서 여러 집단지성을 이용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도 CP(Chief Producer, 책임 프로듀서)라는 직책을 만들어서 웹툰 공정 과정을 총괄하게 했다. 그리고 스토리, 채색, 후보정, 배경 등의 스탭들을 팀 단위로 꾸렸다. 회의, 피드백, 수정, 완성의 소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CP가 원래 하던 개인 작업의 5배 가까운 아웃풋을 낼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었다. 한편으론 CP 아래 팀원들이 자연스럽게 업무에 숙달되고, CP 직책까지 오르게 되는 회사 내의 인력적인 선순환도 목표로 했다.
- 작품 기획이 실제 웹툰 제작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궁금하다.
= 작가나 PD, 혹은 다른 제작 인력들이 아이템을 내면 CP급 인력들이 이후 과정을 판단한다. 기획이 신선하고 좋다 싶으면 작품의 컨셉을 가장 잘 소화할 인력부터 찾는다. 내부에서 구하긴 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외부에서도 수급한다. 그리고 메인 인력을 기반으로 3화까지 웹툰을 만들어본다. 결과가 괜찮다는 내부 평가가 있으면 최종 CP를 정하고 팀을 구성한다. 팀원 전원이 인하우스일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외부 인력을 써도 된다. 특별한 규칙 없이 최대한 유동적인 절차로 운영하려 한다.
- 개인 작업에 익숙한 기성 작가들이 집단창작 체계나 CP 직책에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
= 대부분이 좋아했다. 아마 많은 기성 작가들이 일종의 조급함을 느끼는 것 같다. 1, 2세대 웹툰 작가 중 상당수가 은퇴한 상황인 데다 신진 작가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본인의 창작욕이 사그라지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시장이 너무 급변하는 거다. 다만 개인 창작으로는 물리적으로 두 작품 이상을 만들기가 어렵다. 박태준 대표가 한때 <인생존망> <싸움독학> <외모지상주의> 등 3편을 동시 연재했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기더라. 그래서인지 기성 작가들도 집단창작으로의 변화에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 기성 작가의 섭외 기준, 조건 등이 있었나.
= 이미 개인 작품으로 최정상 순위를 유지하는 작가들을 회사 내로 섭외하긴 어렵다. 대신 우리 기준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마니아층도 두텁지만 플랫폼의 문제 등으로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분들을 많이 모시려 했다. <쇼미더머니>에서 언더그라운드의 고수들이 대중적 인기까지 얻게 되듯이 새로운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 그림을 원했다.
- 현재 회사 내부의 제작 인력 규모는.
= CP 주재의 집단창작 작업실은 5개 정도다. 전체 직원이 120명이고 제작 인력은 80명쯤 된다. CP를 보조하는 연출팀이나 PD들도 다 글과 콘티를 만들 줄 아는 인력이어서 포함하는 게 맞겠다. 애초에 PD를 채용할 때부터 이야기를 만들어본 사람을 뽑는다. 단순히 오탈자를 체크하고 업로드하는 PD여선 안된다. 창작 경험이 없으면 작가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렵다. 서로간의 존중이 어느 정도는 명확하게 증빙되어야 한다. PD나 스탭들에겐 언제든 본인 작품의 기획안을 올려서 데뷔하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보상 체계다. 과거 어시스턴트 제도의 가장 큰 문제, 해당 모델의 지속이 어려웠던 이유가 이 지점이다. 스탭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메인 작가만 수익을 불린다. 우린 모든 직원에게 매출과 연동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작품의 특정 분야가 흥행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 웹툰의 흥행을 판별하는 주요 지표는.
= 조회수다. 매출로 직결된다. 웹툰 플랫폼의 조회, 유료 구매에서 나오는 수익이 회사 매출의 90%다. 캐릭터 사업이나 IP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점차 비중이 커지긴 할 것 같다. 그래도 조회 수익이 70~80%는 차지할 것 같다.
- IP 사업 분야의 계획은.
= 웹툰 회사들이 원소스 멀티유스(OSMU) 전략을 많이 택하고 있다. 그런데 더그림엔터테인먼트의 경영 철학은 조금 다르다. 우린 본질에 집중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웹툰을 재밌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면 IP든 2차 창작이든 알아서 따라오게 돼 있다. 그래서 우린 기획 단계에서 영상화의 가능성 같은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웹툰 연재 중에 영상화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 지난해 최대 매출액을 달성했고, 지난 1월엔 14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런 성과에 기반해 어떤 사업 확장 계획이 있나.
= 인력적인 투자를 무척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PD를 섭외하더라도 PD 개인보단 이미 좋은 성과를 낸 팀원 전체를 끌어오는 식이다. 웹툰에 기초 준비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는 마케팅, 홍보 비용에도 거의 돈을 안 쓴다. 영화나 드라마가 하는 바이럴 마케팅에도 손을 안 댄다. 웹툰은 플랫폼 순위가 최고의 마케팅 수단이다. 그래서 더욱더 순위에 집중하고 이 일을 잘 수행할 인력을 뽑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의 몸집을 불린 후 내년쯤에 우리의 판단이 맞는지 재차 확인할 예정이다.
- 이후 웹툰 시장의 지형도를 예상한다면.
= 네이버 웹툰을 예로 들면, 쿠키(유료 웹툰을 결제하는 가상 화폐 단위)의 소비자 수가 대폭 늘고 소요되는 쿠키 수도 1.5배로 뛰고 있다. 플랫폼이 수익 창출에 무리한다기보단 집단창작 시스템 확장에 따른 구조적 변화로 보인다. 산업 규모가 커지고 만들어지는 작품이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다. 네이버 웹툰이 곧 미국에서 상장하게 되면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 같다. 이 구조를 안정적으로 확충하기 위해 신인 작가들의 발굴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웹툰 플랫폼의 공모전이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이라면, 우리 회사는 SM, JYP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사가 되려는 셈이다. 신인 작가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데뷔시키는 역할로서 산업의 주요 플레이어로 자리 잡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