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즐겨봤다. 그전에는 <사이렌: 불의 섬>을 열심히 봤고 <골 때리는 그녀들>도 좋아한다. 공통점은 ‘움직이는 여자들’을 실컷 볼 수 있다는 것. 그 여자들의 몸은 대체로 마르고 여리여리하지 않으며 그들의 움직임은 예쁘고 섹시해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들을 보고 나면 해독 주스를 마신 듯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많은 이들이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이 지나치게 대상화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많은 챗봇이 여성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고 많은 안드로이드가 여성의 외형으로 만들어져왔듯이 미디어에서 찬사를 받는 많은 몸들은 여성의 것이었다. 챗봇이나 로봇을 남성으로 만들고 미디어에서도 남성의 몸만 재현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미디어가 여성의 몸을 보여준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여성의 ‘어떤 몸’을 보여주는가에 있다. 우리는 여성이 어떤 몸이어야 사랑받는지 알고 있다. 섹시하지만 너무 섹시해서는 안되고 예쁘지만 부자연스럽게 예뻐서도 안된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는 좋지만 매끈한 라인을 어지럽히는 굵직한 근육은 곤란하다.
여성의 몸을 ‘여성의 몸’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 이런 의문이 생기는 분이라면 운동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움직여!>를 보시기를 권한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다큐 <오픈 셔터스>를 만든 도유진 감독의 작품이고 감독 이름과 제목으로 검색하면 공식 웹사이트에서 바로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상에 코멘터리를 하는 역할로 출연했음을 밝힌다.) 이 영상을 소개하는 첫 문구는 “뛰고, 차고, 오르고, 호흡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뛰고, 차고, 오르고, 호흡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몸’이라니 세상 특별한 것 없는 몸이지만 그것이 여자들의 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평범한 몸이야말로 ‘여성성’이라는 독소를 뺀 몸이기 때문이다. 독소가 빠져나간 자리는 운동하는 여자들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다.
이 영상에는 각각 요가, 폴댄스, 유도, 풋살을 하는 네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이 네 운동의 조합이 또 기가 막힌다. 요가와 폴댄스 그리고 유도와 풋살의 차이가 혼자 하느냐 여럿이 하느냐를 넘어선 이야기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요가와 폴댄스를 하는 두분 모두 오롯이 자신의 몸을 대면하는 운동을 통해 직장과 가정의 일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반면 유도와 풋살은 엄마와 아내 혹은 여직원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온 여자들의 몸을 끈끈하게 엉겨 붙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상을 보고 나면 ‘움직이는 몸’이야말로 홀로 자유롭게 살기도 힘들고 다른 여자들과 연대하기도 어려운 사회에서 여자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새해에는 움직이자. 그리고 움직이는 여자들을 보자. 여자들의 몸과 여자들의 몸을 보는 눈을 해독하려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뛰고, 차고, 오르고, 호흡하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여자들’을 보며 더 많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움직여!>를 <골 때리는 그녀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사이렌: 불의 섬>과 함께 4대 해독 영상으로 지정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