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김태리)은 <외계+인> 2부의 서사적 중심이다. 과거와 현재, 외계인과 인간들 사이의 인연을 매개하고 여러 인물과 관계하면서 감정의 고락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김태리 배우는 어릴 적 이별한 로봇 썬더와 만날 땐 <미스터 션샤인>의 애틋한 눈빛을, 전투에 임할 땐 <악귀>의 이중적인 섬뜩함을 보여준다. 더하여 고려 시대에 홀로 남아 겪어야 했던 쓸쓸함과 생활의 능숙함, 절제미 있는 액션에까지 천변만화의 이안을 매 순간 적확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배우의 균형 감각과 능숙한 변화는 다수 인물의 롤플레잉과 플롯의 교차편집이 잦은 <외계+인> 2부에서도 여실히 빛났다.
= 극장에서 처음 보게 된 장면들에 대해 동료들과 소감을 많이 나눴다. 특히 민개인(이하늬)의 첫 등장 장면은 재촬영한 부분이어서 우리도 처음 봤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최동훈 감독님의 특기가 잘 드러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 도입부에서 이안이 콧수염을 달고 나오는 장면이 곧바로 등장한다. 무륵의 말마따나 “거친 처자”로 보였던 이안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 이안이의 생활감이 묻어나와서 재미있는 장면이다. 고려 시대로 온 후 10년 동안 이안이는 살아남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보지 않았을까. 변장도 많이 했을 것 같고, 과거에 연이 있던 남사당패에서 배운 잡기들도 있을 거다. 또 이런 능청스러움이 먹힐 수 있던 것은 이안이의 단단한 실력과 마음 덕이라고도 느꼈다. 이어지는 신 안에서 이안이의 무술 실력과 카리스마도 드러나고, 개똥이와 얘기할 땐 허당기 가득한 모습도 보여주며, 썬더의 정보를 들었을 땐 애틋한 감정까지 표현한다. 배우로서 이토록 많은 감정을 한신에서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감정과 상황을 최대한 잘 따라가려 했다.
- 고려 시대에서 지낸 이안이의 이야기를 스핀오프로 만들어도 재밌겠다.
= 맞다! 이안이뿐 아니라 두 신선, 무륵이의 스핀오프도 좋겠다. 사이사이에 궁금한 이야기가 많다. 2차 창작하듯 영화를 각자의 이야기로 해석하려는 분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단단한 실력과 마음’이 있음에도 외계인들의 무력이 워낙 강한 터라 이안이 쏜 총이 빗나가기도 하고, 신선들이 힘을 펼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물들의 무력감을 느낄 새가 없다.
= 외계인보다 약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무시무시한 전투를 이어가는 데도 일이 완전히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연출자가 관객에게 어떤 안전함의 정서를 잘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 이안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는 것이 1부와 2부의 차이로 느껴진다.
= 맞다. 1부의 이안이는 충분히 함께해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 일이야”라며 독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부에선 각자의 동기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결국 함께 싸운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주변인의 도움을 기꺼이 받겠단 이안이의 선택이 1부의 모습과는 달랐다.
- 2부에선 이안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잘 드러난다. 무륵이와 깊게 포옹하는 장면이 유독 뭉클했다.
= 이안이가 과거로 넘어와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매번 단단한 마음을 유지하진 못했을 것 같다. 혼자 있는 순간, 밤하늘을 보거나 개울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을 거다. 그래서 10년 만에 무륵이의 과거를 알고 제대로 재회했을 때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때 둘의 관계가 로맨스인지 아닌지 등은 방금도 말했던 2차 창작의 영역이지 않을까. (웃음)
- 썬더와의 재회 장면에선 짧은 순간에도 커다란 애상과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무생물과의 감정 교류가 이토록 깊을 수 있는지 놀라운 장면이었다. VFX 기반의 촬영 여건에서 이런 감정 연기가 어렵진 않았는지.
= 영화 바깥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던 썬더와의 기억을 상상하며 눈앞의 썬더가 진짜라고 생각했다. 이것 외엔 아직 다른 방법은 모르겠다. 현장에선 연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썬더나 고양이처럼 VFX 작업을 해야 하는 것들은 미리 도구를 사용해서 배우가 시선을 맞출 수 있었고, 외계 죄수의 움직임도 <부산행> 등에서 좀비 연기를 한 전영 안무가께서 시연해주셨다.
- 이안의 액션은 다른 인물보다 더 절제되고 정확한 동작으로 이루어졌단 느낌이 든다. 총을 꺼내고 쏘기까지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 감독님이 원하신 게 딱 그런 액션이었다. 복장도 멋있고 하니 무륵이처럼 여러 종류의 액션도 해보고 싶었지만 감독님이 원한 이안이의 액션은 경제적이고 탁 바르게 서 있는 느낌이었다.
- <아가씨> 때의 인터뷰를 보면 평소 동작이 역동적이고 동선도 많다고 말했다. 이번엔 평소의 움직임이나 성격을 캐릭터의 기질과 격리하려 했나.
= 데뷔 초기엔 내 실제 모습에서 많은 부분을 이끌고 도움을 받았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내 몸의 습관을 일부러 덜어내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외계+인> 촬영 때만 해도 내 모습이 덜 빠졌었나 보다. 감독님의 디렉팅을 적어놓은 메모를 보니까 감독님께서 “태리씨 성의 있게 걸어주세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더라. (웃음) 이안이의 걸음은 성의와 절제미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평소엔 좀 털레털레 걷나 보다.
- 1부보다 2부에선 이안이 사건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보인다. 극의 중심을 어떤 분위기로 잡아나가려 했나.
= 한 가지, 감독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외계+인> 2부는 이안이뿐 아니라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다. 물론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시간의 선에 이안이가 중심에 있고,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초반 내레이션 등을 맡긴 했다. 이안이 덕에 능파나 자장, 가드 등 여러 시공간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그들의 인연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일 수 있었다.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내에 이런 관계가 모두 묶이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웠다.
- ‘뜰 앞의 잣나무’라는 대사가 인연의 가치라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인연을 믿는 편인지.
= 원래 운명이나 인연을 믿는다거나 의식하며 살진 않았다. 반면에 감독님은 굉장히 낭만적인 분이셔서 운명을 믿고 그것에 관한 영화를 만드셨다. 나도 <외계+인> 시리즈에 임하다 보니 모든 우연 속에서 우리가 만난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됐고 너무 행복했다. 이 만남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운명이라는 단어에 관한 생각이 바뀌게 된 작업이었다.
- 차기작으로 <정년이>가 예정돼 있다.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 여성 국극이란 매력적 소재를 잘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이 촬영 내외로 너무나 큰 노력을 기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님께서 “연기 활동 외적으로도 네가 좋다고 느낀 작품, 책, 영화, 공연 등이 있으면 그걸 영화와 연기로 만드는 기획자로서의 발상도 중요”하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래서 웹툰 원작 <정년이>에 애정을 가진 채 접근하게 됐고 지금은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