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말맛 나게, 속도감 있게, <러닝메이트> 한진원 감독
2024-01-19
글 : 이유채
사진 : 오계옥

<기생충>의 공동 각본을 맡았던 한진원 감독이 저택과 반지하 집이 아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자신의 첫 연출작으로 선보인다. <러닝메이트>는 ‘발기남’이라는 별명을 얻는 바람에 이미지 쇄신이 필요했던 영진고 모범생 세훈(윤현수)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친구 원대(최우성)의 러닝메이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머지않아 자신이 원대의 유일한 러닝메이트가 아니란 걸 알게 된 세훈은 ‘지역구 핵인싸’ 상현(이정식)과 손잡고 새판을 짠다. 한진원 감독은 연출은 처음이라 모든 게 부족했다며 겸손을 표하면서도 <러닝메이트>가 유망한 젊은 신인배우들의 보고와도 같은 작품이 될 거라 확신한다며 눈을 반짝였다.

- 2014년에 한 친구에게 이메일로 연재한 소설 <소라게>가 <러닝메이트>의 원안인 걸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포인트가 맞물려 시작된 이야기다. 연출부를 그만두고 다시 뭘 써볼까 작정하고 고민하던 시기에 1인칭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경도되어 있었다.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리게 해준 <미생>을 보면서 어떤 세계관 속에서 부딪히고 성장해나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았다. 여기에 학생회장 선거에 관한 실제 기억까지 붙으면서 이야기가 점차 꼴을 갖췄다. 일인자가 1등 하는 이야기에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인지라 이인자가 주인공인 <러닝메이트>를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주인공감이 아닌 세훈이 어떻게 선거의 중심에 서게 되는지를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를 살려줄 세계관 설명이 총 9부작 중 3부까지 이어진다. 신선하고 젊은 배우들, 내 또래의 80년생들로 꾸린 키 스탭들과 비만 안 오면 뭐든 찍을 수 있다는 열정으로 만든 내 첫 연출작을 못 잊을 것 같다.

- 2020년대의 10대들은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한 자료 조사가 필수였을 것 같은데.

10대 동생이나 학생 조카가 있는 연출부가 그들에게 들은 바를 전해주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조사도 하고, 때에 따라서 직접 취재를 나가기도 했다. 그랬지만 결국 원안에서 크게 바뀌진 않았다. 단어 하나를 두고 요즘 쓰는 신조어가 맞다 아니다 따지고 드니 대본 쓰면서 감당이 안되더라. 조금만 지나도 그 신조어들이 다 옛말이 될 걸 생각하니 더더욱 고증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 각양각색의 선거 유세, 각종 꼼수와 비리, 네거티브 전략을 보는 재미가 클 것 같다.

당연히 빠질 수 없는 재미다. 실리를 따져 캠프를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도 하고, 크고 작은 배신이 이어지고 빌런이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빌런이 아닌 반전도 벌어진다. 특색 있는 선거송과 응원 구호를 만들기 위해 구본춘 음악감독과 처음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 배우들은 촬영 몇달 전부터 서강대학교 응원단 학생들과 함께 연습에 매진했다. 어디서 훈련하든 늘 과한 열정으로 시끄럽다고 쫓겨나 송준 프로듀서가 장소를 물색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웃음) 모두가 불사른 퍼포먼스 장면들이 뮤직비디오 스케치처럼 극에 담겼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

- ‘본격 명랑 정치 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빠르고 발칙한 느낌의 드라마일 거란 예상도 든다.

에드거 라이트 작품의 속도까지는 엄두가 안 나고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에런 소킨 작가의 <소셜 네크워크>처럼 리드미컬한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다. 편집 과정에서 질질 끈다고 느껴지는 구간이 없도록 신경 쓰고 대사의 말맛, 인물들의 티키타카를 살리고자 했다. 레퍼런스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은 알렉산더 페인의 <일렉션>이다. 역시 고교 학생회장 선거를 다루는데 다양한 인물이 가진 각자의 사정을 맛깔나게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며 도움을 받았다.

- 기존의 익숙한 어른들의 정치 드라마와는 어떻게 다를까.

음흉하고 속을 모르겠는 어른들에 비해 10대들은 솔직하고, 감정을 숨기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다는 게 내가 파악한 젊은이의 특징이다. 그런 모습을 대놓고 담았다. 화난다고, 이기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사고뭉치처럼 보이는 친구는 진짜 사고를 치고 다닌다. 그래서 보면서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끝까지 학생들이 주축이었으면 해서 교사, 학부모 등 어른들은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다.

- 세훈 역의 윤현수, 상현 역의 이정식 등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젊은 배우들에게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고 캐스팅했는지 궁금하다.

윤현수 배우는 첫 만남에 ‘이 친구가 세훈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막연히 떠올렸던 세훈의 얼굴과 말투를 다 가지고 있었다. 특히 오자마자 화장실 먼저 가겠다면서 어딘가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 것까지 세훈 그 자체였다. 함께 작업하면서 <미생>에서 임시완 배우를 발견했을 때만큼의 충격을 윤현수 배우에게 받았다. 이정식 배우는 데뷔한 지는 꽤 됐으나 아직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보석 같은 친구다. 보통 오디션에서 신인들은 폭발시키고 자신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기 마련인데 이정식 배우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어냈고 그 와중에 연기력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었다. 서늘한 면과 아주 나이스한 면을 동시에 가졌는데 그 점이 상현에게도 있어 잘 어울렸다. 세훈과 상현이 상반된 느낌이었으면 했는데 윤현수 배우가 본능적이고 상큼 발랄한 매력이 있다면 이정식 배우는 진중하고 무거운 매력이 있어 흡족하다. 촬영 다 끝나고 이정식 배우에게 이런 말을 건넨 적 있다. “앞으로 네가 어떤 배우인지는 <러닝메이트> 하나로 다 설명될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에게 <러닝메이트>가 든든한 데모 영상이 될 거란 기대와 확신이 있다. 작품이 공개되고 나면 아마 모두가 배우들 때문에 들썩일 것이다.

한진원 감독이 말하는 관전 포인트

“제목에 ‘러닝’이 들어가서일까. 세훈이 버스 정류장으로, 학교로, 그 어딘가로 달려가는 장면이 정말 많다. 달리는 순간마다 세훈의 감정 상태가 다 다른데, 그때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뛰는지 주목해주길 바란다. 세훈의 감정을 매번 고스란히 띄우는 윤현수 배우의 얼굴도 놓치면 안된다.”

제작 블레이드이엔티, 에이스메이커 스튜디오, 러닝메이트 / 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 감독 한진원 / 각본 한진원, 홍지수, 오도건 / 출연 윤현수, 이정식, 최우성, 홍화연, 이봉준, 김지우, 옥진욱, 윤도건 / 채널 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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