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송경원 편집장] <건국전쟁>, 믿음과 염치의 상관관계
2024-02-16
글 : 송경원

(약간의 과장을 보태) 잡지 제작 에너지의 삼 할은 실수를 바로 잡는 작업에 투입된다. 몇번을 체크해도 안 보이던 오타는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인쇄만 들어가면 잃어버렸던 동전마냥 데굴데굴 잘도 나온다. 오타로 인한 좌절감은 그나마 귀여운 수준이고 간혹 이름이나 제목이라도 틀리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에게 혼쭐이 났지만 마지막엔 꼭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던 게 생각난다. 그렇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그 말이 당사자 입에서 나오면 곤란하다. 그건 염치의 문제다. 부끄러움이 없어지면 둔해지고, 둔해지면 습관이 된다. 주변에서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말에 더 창피하고 무겁게 느껴질 때까진 아직 괜찮은 거다. 스스로 괜찮다고 합리화하기 시작한 순간이야말로 진정 위험신호를 울려야 할 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화제다. 2월1일 개봉한 이 비밀스런 영화는 설 연휴 크고 작은 영화들을 제치고 벌써 43만 관객(2월15일 기준)의 선택을 받았다. 한데 정작 영화 전문지에서 설 연휴 극장가를 점령한 영화의 프리뷰도 다루지 못했다. 개봉작 프리뷰가 빠졌다는 걸 작품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뒤에야 알았다. 면목 없는 실수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유를 살펴봤더니 안 다룬 게 아니라 못 다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건국전쟁>은 언론 시사를 생략하고 후원자 위주의 이벤트만 가진 뒤 조용히 개봉했다. 기존 언론 홍보 창구를 거치는 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걸 수도 있고, 신뢰가 없어 회피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언론 입장에선 누락했다기보단 소개하고 판단할 기회를 빼앗긴 쪽에 가깝다.

<건국전쟁>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방식은 직관적 혹은 노골적이다. 국내 주요 교회들의 단체관람 위주로 관객 모집을 하는 건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10~40대 관객에게 티켓값을 100% 환급해주는 페이백 이벤트는 다소 염치없어 보인다. 영화 안팎의 의도가 투명할 정도로 일치한다고 해야 할까. 결국 뒤늦게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늘 생각해왔던 거지만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담는다는 건 환상이다. 실은 다큐멘터리만큼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언어도 드물다. 홍보, 선전부터 설득을 거쳐 선동, 이념의 주입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영화는 기본적으로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토록 많은 감독들이 이 위험한 도구를 의심하고 검토하면서 조심스레 다뤄왔는지도 모른다. <건국전쟁>에는 그런 고민의 그림자가 없다.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확신에 차 있고 깔끔하다. 언젠가부터 근현대사 실존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넘쳐나는 중이다. <문재인입니다> <길위에 김대중> 등의 다큐멘터리도 넓게 보면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건 방향과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토록 노골적이고 한톨의 의심도 없는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 아니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프로파간다의 등장은 오히려 반갑다. 역사를 믿음으로 접근할 때 제일 먼저 희생당하는 건 염치다. 바야흐로 믿음이 넘치고 염치가 희귀해진 시대, 낯부끄러운 자기합리화로 무장한 다큐멘터리의 흥행만큼 확실한 위험신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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