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도련님에서 자신을 배척하는 이들의 우두머리로, 죽음을 무릅쓰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거머쥔 예언자로, 스스로 황좌를 탈취한 황제로 거듭나는 폴 아트레이데스를, <듄: 파트2>의 티모테 샬라메는 온전히 연기해낸다. 폴은 <듄: 파트2>에서 폴 이상의 존재로 성장해간다. 사실 성장한다는 말로는 충분치 않아서, 그는 마주하는 모든 위기에서 잠재력을 폭발하며 대서사시 속 전설의 존재가 되어간다. <듄: 파트2>에서 폴은 퀴사츠 해더락(‘길을 단축하는 자’), 무앗딥(아라키스의 사막에 서식하는 쥐, ‘길을 가리키는 자’라는 뜻도 있다), 우술, 마디(‘낙원으로 이끌 자’),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을 비롯해 여러 방식으로 호명되는데,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티모테 샬라메의 폴은 <듄>에 처음 등장할 때는 15살의 소년으로, 다소 유약한 인상이었다. 전투력은 노력해 쌓아가는 중으로, 가족 안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하며 우군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하지만 음모로 인한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어머니와 함께 도망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힘을 부수듯 깨워간다.
티모테 샬라메는 <듄> 시리즈에서 자주 광대한 사막의 작은 점으로, 자연 앞에서 왜소한 인간의 현존을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폴이 처한 상황도, 티모테 샬라메가 연기를 통해 보여주어야 할 성장 서사도 비현실적으로 잔혹하다. 도련님이 폭압적으로 각성하는 순간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원작 소설 <듄>의 오랜 팬으로 알려진 드니 빌뇌브는 <듄> 촬영 초반 곰 자바 장면을 찍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티모테가 변신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다른 무언가가 되어가는 광경을 보며 나는 카메라 뒤에서 춤을 추었다. 그는 정말 대단했다. 강력했다. 나는 몹시 행복했다. 영화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망치지 않았군요. 나는 폴 아트레이데스를 제대로 캐스팅했다!”(avclub.com) 그는 티모테 샬라메가 “그의 세대에서 최고의 배우 중 하나일 뿐 아니라 2시간30분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한 어깨를 지녔기 때문”에, “플랜B 없는 폴 아트레이데스”라고 강조했다.(베니스국제영화제 기자회견) 티모테 샬라메가 액션이나 SF보다 드라마 장르에서 뛰어난 성취를 쌓아온 배우라는 점을 감안하면 드니 빌뇌브의 이 감탄에는 안도감이 얼핏 서린 듯 느껴진다.
티모테 샬라메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엘리오는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는 소년이었고, <레이니 데이 인 뉴욕>(2019)의 개츠비는 뉴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는 젊은이였으며, <레이디 버드> (2017)와 <작은 아씨들>(2019)에서는 소녀들의 중심에 선 나른한 미청년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루카 구아다니노와 다시 협업한 <본즈 앤 올>에서는 식인을 하는 ‘이터’인 리를 연기하지만 어디까지나 잔혹한 살육극이 아니라 존재의 ‘허기’가, 아웃사이더라는 정체성의 표현이 중심에 있다. <듄: 파트2> 직전에 개봉한 <웡카> (2023)의 윌리 웡카는 마법사로,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동화적인 캐릭터였다. <듄>의 폴과 가장 근접할 뻔했던(동시에 그의 첫 시리즈 영화였을 수 있었던) 역할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스파이더 맨이었는데, 이 배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톰 홀랜드가 가져갔다. <듄>은 티모테 샬라메가 할리우드의 화제작에 얼굴을 내미는 최고의 유망주임은 확실하지만 수줍은, 상냥한, 짓궂은, 우스운, 애틋한 미청년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있을지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 우리 앞에 도착했다. 티모테 샬라메가 <듄> 시리즈에서 증명한 것은 그가 폴 아트레이데스는 물론, 그외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듄> 시리즈에서 폴이 경험하는 내적 성장의 과정은 티모테 샬라메에게도 해당된다. <듄> 원작 팬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폴이 그러하듯 티모테 샬라메 역시 가면증후군과 맞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은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일.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나는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진실로 깨달았다.”(<버라이어티>) 연민하는(동시에 번민하는) 영웅이라는 폴의 캐릭터는 <듄>의 곰 자바 장면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일종의 영웅/반영웅 서사에서 폭발력을 지닌다. <듄> 시리즈에서 폴의 성장을 드러내는 지표로 머리카락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듄>의 초반에 이마 양옆으로 단정하게 세팅되어 있던 앞머리는 <듄: 파트2> 초반에 이마에 흘러내려 눈을 반쯤은 늘 가리고, 후반부에 이르러 폴이 온전히 자신의 힘을 각성하는 순간 얼굴이 온전히 드러난다.
티모테 샬라메의 커리어는 분명 <듄> 시리즈를 중심에 두고 어떤 식으로든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배우들의 시리즈 이후는 어땠나? 배우로서의 역량을 다양한 작품에서 실험하기 전인 젊은 나이에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긴 시간을 보내기란 매혹인 동시에 리스크다. 매혹은 선명하다. <듄: 파트2>의 후반부, 폴이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의미에서 자기됨을 온전히 선언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의 티모테 샬라메는 압도하는 흡인력을 보여준다. 맞서 싸우는 이보다 체구가 작다 해도 우습게 볼 수 없는 힘을, 위엄을 연기해낸다. 이 과정에는 작은 도움도 있었다. <듄> 이후 티모테 샬라메는 톰 크루즈로부터 격려의 이메일을 받았다. 예전의 할리우드에서라면 춤 훈련과 격투 훈련을 받았을 테지만, 오늘날은 아무도 그를 그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을 테고, 그래서 모든 일은 그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그 이메일은 전장에서의 외침 같았다. 2022년 여름과 가을에 <듄: 파트2>를 촬영하면서 그는 <탑건: 매버릭>을 8번 봤다. 한번은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화관을 좌석당 2달러에 사서 전 출연진과 제작진을 데려갔다. 그 결과 드니 빌뇌브는 “액션 측면에서 그가 1편에서보다 더 훈련되었고 준비되었다”고 느꼈다. 그는 촬영장에서 항상 준비되어 있는 첫 번째 사람이었다. “<듄: 파트2>는 소년에서 남자로, 나아가 리더가 되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다. 어둡고 카리스마 있고 메시아적인 인물 말이다. 내 카메라 앞에서 누군가가 성장하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GQ>)
<듄>을 연기할 때는 데이비드 린치의 <사구> (1984)에서 폴을 연기한 카일 매클라클런이라는 선례가 있었고, <웡카>를 연기할 때는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웡카를 연기한 조니 뎁이라는 사례가 있었으며, 제작 중인 제임스 맨골드의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인 뮤지션 밥 딜런을 연기하게 된다. 앞 세대의 자장 밖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필모그래피에 더해가는 중이다. <듄>에서 티모테 샬라메는 오스카 아이작, 조시 브롤린, 제이슨 모모아 같은 앞 세대의 배우들과 연기했다. <듄: 파트2>에 이르러 그는 젠다야, 오스틴 버틀러, 플로렌스 퓨를 비롯한 또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이야기는 전진하고, 배우는 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