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에 따르면 <삼식이 삼촌> 속 김산은 “매 사에 진지하고 진중하며 진심인, 편견이 없는” 1960년대 엘리트 청년이다. 육사 출신 올브라이트 장학생, 미국 경제학 전공생인 김산은 재무부 과장으로 복무하며 전후 대한민국의 국가 재건을 위해 힘쓰지만, 그의 계획은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의 벽에 좌절한 청년에게 “당신은 대통령도 할 사람”이라며 삼식이 삼촌(송강호)이 접근해온다. 회유와 거절, 설득과 번민의 반복 속에 김산의 가슴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 김산은 대한민국을 공업국가, 무역국가로 만들려는 꿈을 품고 귀국한 청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뜻과 신념을 같이한다고 믿는 혁신당 주인태 의원(오광록)을 지지하기도 한다. 김산은 유학 생활 중 경제학뿐 아니라 민주시민의 자세까지 배워온 듯 보이는데.
= 김산은 미국에서 사람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편견 없이 사람을 마주하고 관계를 맺는 법 등 말이다. 육사는 단체생활을 요하는 군대다. 거기서 장학금을 받고 그중에서 1등을 할 정도면 그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능력이지 않았을까. 유학생 신분으로서 김산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벽이 또 있었을 것이다. 이상향이거나 허황된 판타지일 수도 있다. 김산은 그게 무엇인지 뚜렷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한국에 왔겠지. 엘리트 청년이어도 국가의 성장에 자신이 기여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산은 자신이 꿈꾸는 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 역동적인 사내다.
- 김산의 혁신당 찬조 연설 장면이 예고에서부터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 김산이 삼식이 삼촌에게 잠재력을 인정받는 계기면서 시청자에게도 김산이 지닌 이상을 입증해내는 장면인데.
= 나 역시 이 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김산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연습과 분석이 들어갔다. 그리고 현장에선 연극을 하듯 생생함을 살려 4분 정도의 연설 장면을 통으로, 세 테이크 정도에 장면을 끝마쳤다. 평소 엔지를 내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는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크루들에게도 배우 변요한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다. 준비 방도는 결국 진심이다. 서툴더라도 진심으로 외치고 설득하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심지어 상대 배우가 리버스숏을 촬영할 때도 동일한 에너지 크기를 가지고 앞에서 연기했다.
- 어쨌든 나를 보고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상대는 연인이든 귀인이든 남다르다. 김산은 삼식이 삼촌의 어떤 점에 감응했을까.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누구를 처음 만나 대화하면 의심부터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상대는 자기를 치장해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속내를 안 들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테니까. 그런데 적어도 삼식이 삼촌은 진실을 꺼내 보인다. 도리어 그 점이 김산에겐 위협으로 다가 왔을 것이다. 일견 고맙다가도 당혹감도 느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날? 왜?’ (웃음)
- 시대극이었던 <미스터 션샤인> 정도를 제외하면 안경을 쓰고 등장한 작품이 거의 없다.
= 계산이 있었다. 김산의 피로를 드러내는 소품으로 안경을 사용했다. 김산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나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안경을 쓰거나 벗었다. 말하자면 장치다. 안경을 쓰면 김산의 지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다. 그러다 안경을 벗을 때면 안경 뒤에 숨긴 김산의 복잡한 감정을 들키게 할 수도 있다.
- 김산과 변요한의 닮은 점이 있다면.
= 꿈과 목표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걸 이루어나 가려 하는 점. 작품을 만났을 때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 뜨거운 꿈을 가슴에 품은 청년의 모습을 시청자들도 봐주었으면 한다.
- 그래서 전작 중 김산과 유사한 캐릭터는 <소셜포비아>(2015)의 지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캐릭터 모두 시대의 격동이나 징후가 꿈 많은 청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나.
= 동감한다. 나는 196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셜포비아>만 해도 10년 전 작품이다. 그런데 2010년대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과 지금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1960년대의 젊은이들의 마음과 2024년의 젊은이의 마음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국 문명 발달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뇌하는 청년의 본질은 같다. 묻고 싶다. 더 좋은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김산은 좋은 사람인가.
= 아니다. 그렇다면 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얼까? <삼식이 삼촌>에서도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게 이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다. 지금의 내 판단으론 이해할 수 있는 타인이 내 편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욕망은 어떤 캐릭터에게 가 있는지 찾으며 작품을 본다면 훨씬 즐거울 것이다.
- 최근 배우 변요한의 필모그래피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더블’이 아닐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선 김윤석과 2인1역이었다. <자산어보>의 창대는 정약전(설경구)과 사제 관계고, <한산: 용의 출현>의 와키자카는 이순신(박해일)의 숙적이다. 김산은 삼식이 삼촌과 짝패가 된다.
= 부반장을 주로 맡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운명이 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있는 운명이었지만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 나를 냉철히 객관화했을 때, 몇몇 독립영화에서 잠깐 주목받았다는 이유로 작품 전체를 단독으로 떠받드는 배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후배 상관없이 가르침을 받는 대상에게 배울수 있는 한 배우고 싶다. ‘변요한은 크레딧 1번 에만 이름을 올리는 배우다’라는 문장이 박히는것 딱 질색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잘하는 재밌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