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쿨리는 울지 않는다' 팜응옥란 감독, 베트남의 고전영화처럼
2024-05-16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남편을 떠나보내고 고국으로 돌아온 중년 여성 응우옌(민차우),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서둘러 결혼을 준비하는 어린 조카 반(하푸엉). 베트남의 역사와 시간의 속성에 대한 팜응옥란 감독의 오랜 고찰은 올해 전주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쿨리는 울지 않는다> 속마주 보는 두 세대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시간의 유동성에 천착하게 된 계기로 어릴 적 할머니가 불러주신 <Thin Thai>(낙원)라는 자장가를 떠올렸다. “영화에서 응우옌이 방문한 클럽에서 흐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천국 같은 섬에서 살다 고향에 돌아왔더니 시간이 너무 느리거나 빠르게 흘러간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도 창조된 세계가 실제와 가까워질 때, 또 꿈과 가까워질 때 각각 체현되는 시간의 상대적 속도를 표현하고 싶었다.” 기존에는 의도에 없었던 흑백 연출도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느낌을 구현”하는 효과를 낳았다. “촬영 직전 배우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제작 비용이 덜 드는 흑백 연출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각본을 재작성하며 베트남의 고전영화들을 닮은 질감을 표현해 보려 했다.”

영화는 응우옌과 반, 두 세대 모두와 일정한 정서적 거리를 유지하며 시간의 흐름에 판단의 전권을 내어준다. 일례로 응우옌이 추억하는 과거는 플래시백으로 직접 보이는 대신 그저 보이스오버로 들릴 뿐이다. 팜응옥란 감독은 “한번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법칙의 절대성을 존중하고자 했다”는 말로 중립적 태도의 저의를 설명했다. 자연의 풍경과 소리를 담아내는 긴 호흡도 정서적 중용에 기여한다. “극영화 속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사실적 촬영을 활용한다. 세계가 내내 개인적이고 상징적인 영역에 치우치는 것도 적절하지 않고, 실생활에 온전히 밀착 하는 것도 지양하려 한다.”

그렇다고 <쿨리는 울지 않는다>를 무정한 영화로 부를 수는 없다. 오히려 팜응옥란 감독의 세계의 근본정신은 다정하고 사려 깊은 무심함이다. 반에게 왼손이 없다는 사실에 영화가 집중 하지 않는 것 또한 “장애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 속에서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캐스팅 때에도 반의 장애 유무는 전제 조건이 아니었다. 하푸엉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저 패션과 연기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녀가 요가하는 모습에서 반의 이미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캐스팅했을 뿐이다. 촬영 시에도 카메라가 절대 반의 손을 의식하지 않도록 했다.”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스팅은 분명 작은 야생동물 쿨리일 것이다. 팜응옥란 감독은 “동그랗고 초롱초롱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쿨리의 눈에서 민차우의 눈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스크린에서 본 민차우의 눈이 오랫동안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 자연스레 그녀를 캐스팅하게 되었고, 쿨리의 눈에서도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