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쳐 있는 대학병원 간호사 유정(박예영)은 좀처럼 얼굴 보기 힘든 고3 동생 기정(이하은)의 소식을 전화 너머 경찰에게 듣는다. 기정이 교내에서 벌어진 영아 유기 사건의 당사자라고 자수해서 구속됐다는 것. 유정은 엄마 노릇을 하며 키워왔던 기정을 구하고자 애쓰지만 동생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어 난항을 겪는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CGV상을 받은 <언니 유정>은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예리하게 묻는다.
서툴지만 분명하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알아가려는 작업에 돌입한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첫 장편 연출작을 5년가량 붙들고 있었던 정해일 감독은 “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1년치 용기를 여기서 얻었다”라며 <언니 유정>을 한국경쟁으로 선정해준 영화제에 감사를 표했다. 그가 영아 유기 사건을 소재로 한 <언니 유정>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뜻밖에도 조카가 태어난 시기였다. “어느 날 문뜩 아기의 탄생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불안과 힘들게 출산한 누나를 보면서 이대로 누나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휩싸였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유정, 기정 두 자매 캐릭터가 떠오른 걸 시작으로 8개 월간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다. <언니 유정>은 언니 유정과 기정의 관계, 간호사 유정과 임신한 환자(한해인)의 관계, 사건의 실마리를 가진 기정의 친구 희진(김이경)과 유정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균형감을 이룬다. 정해일 감독이 플롯 짜기가 까다로웠음에도 헤매지 않았던 건 “기본 뼈대는 분명”해서다. 그는 “큰일을 겪는 유정이가 언제쯤 부정, 슬픔, 이해 단계를 거칠지부터 먼저 잡아놓은 뒤 중간 중간 유정과 환자가 서로 교류하는 에피소드, 그날에 관한 기정과 희진의 회상 장면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며 틈 없는 플롯의 비결을 설명했다. 영화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만듦새를 지닐 수 있었던 건 편집 과정에서 그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러닝타임을 123분에서 102분으로 줄였다. 잔가지를 과감하게 다 쳐내니 처음 생각했던 자매에 집중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이제 그는 9개월간의 눈물의 편집실 생활을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정해일 감독은 고전영화 마니아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영화가 친숙했다. “아버지가 비디오방에 넣어준 만원으로 DVD를 10편씩 빌려보면서” 영화에 흠뻑 취했고 “감독을 염두에 두고 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올라올 때면 불러주고 지원하겠다는 영화제가 나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18년간 영화에 매달려온 삶을 담담히 회고했다. 정해일 감독은 전주의 단꿈에서 깨고 나면 돌입해야 할 시나리오 작업을 은근히 고대하고 있다. “미워하던 아버지에게 신장이식을 해주기로 한 아들이 돌연 그 결심을 철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올해 1월 말에 초고를 끝내고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데 돌아가서 다시 정을 붙여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