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시인이자 작가, 정치인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의 삶을 그린 <리모노프: 더 발라드>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칸영화제를 찾았다. <레토> <차이콥스키의 아내>에 연이은 경쟁부문 초청이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특정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들거나 자기 영역에 혁신을 일으킨 실존 인물에 주목해왔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제작사의 제안으로 시작된 영화이긴 하나 “리모노프는 1990년대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대단했던 사람”이라는 점에 감독 역시 동의했다. “그는 항상 ‘러시아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거나 ‘소련을 재건하자’라고 말하곤 했다. 극우 성향이 강했고 록 스타 같은 에너지를 지녔었는데 그런 그의 활력과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주의, 반서방주의적 태도에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매료되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그의 포스터를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모노프의 전기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감독의 목표는 아니었다. “리모노프의 실제 생을 옮기기보다 에마뉘엘 카레르가 쓴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과 접근 방식을 따랐다. 그렇기에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감독의 해석에 의해 창조된 리모노프는 ‘러시아 조커’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개의 인격을 갖고 있으며 죽은 뒤 새롭게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다. “죽음의 방식”의 일례로 그는 리모노프가 자신의 뮤즈였던 엘레나와 헤어진 뒤 방황하다 동성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잇츠 미, 에디>(It’s Me, Eddie)라는 리모노프의 저서에서 따온 장면인데 이는 러시아 최초의 동성애 묘사였다. 90년대 러시아인들에겐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리모노프의 성정체성이 변화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고, 엘레나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드러내면서 관념적 죽음에 이르렀던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감독이 벤 위쇼를 리모노프 역에 캐스팅한 이유는 “그가 유약해 보이면서도 섬세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무척 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 그의 연기를 봤을 때 매우 감동받았고 ‘이 사람이다’라고 느꼈다. 단순히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훌륭한 배우다.” 영화는 리모노프가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의 여정에 집중한다. 때문에 1970년대 뉴욕을 재현하는 것이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당시 뉴욕 거리의 보행자들을 담은 영상이나 스트리트 사진작가들의 아카이브를 많이 참고했다. 모스크바에 세트를 지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로 파괴됐다. 그러다 제작자들의 제안으로 라트비아에 세트를 다시 만들어 CG 기술을 적용해 세트에 캐릭터를 접목시켰다.” 현재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역시 러시아를 떠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작업 중이다. 감독은 스스로를 ‘러시아 파시스트’로 칭했던 리모노프를 통해 관객들이 “러시아 파시즘 및 제국주의 사상의 뿌리에 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러시아가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하고 있는 일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한 아이디어도 줄 것”이라 전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작품이 무척 현대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