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놓아주고, 바라보고, 흘려보내기 - 청소년 발달단계로 보는 라일리의 말과 행동
2024-06-21
글 : 신지수 ( 연세도우리 아동청소년과 발달클리닉 센터장)

자녀의 사춘기를 앞두고 충분한 상상과 대비를 했더라도,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는 부모는 드물다. “내가 알던 우리 애는 사라지고 없어요.” 사춘기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겪는 걸까. 뇌와 신경계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 ‘시냅스’로 불리는 뉴런간 연결을 통해 작동한다. 영아는 성인보다 1.5배 많은 뉴런과 시냅스를 갖고 태어난다. 아이가 태어날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러한 뉴런의 절반가량은 생의 초기에 죽게 된다.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부분을 정리해서 보다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셈이다. 0살부터 3살까지 이어지는 가지치기는 전두엽을 제외한 대뇌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아이가 잘 자고 걷고 뛰고 말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뇌 부위들이다. 이 시기를 잘 넘긴 아이들은 밝고 건강하게 크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어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곧 무시무시한 사춘기가 도래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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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들이 ‘엉망’인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이차성징에 대한 당혹감,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주변인’으로서의 소외감, 높아진 주변의 기대와 사회적 책임 등 사태를 파악하는 데만 해도 숨이 차다. 하지만 더 큰 일은 아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진다. 두 번째 가지치기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도 고차원적인 인지기능, 정서 조절, 사회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에 집중적으로 말이다. 이번 작업은 20대까지 계속되지만 10대 초반에 이미 50% 이상의 가지치기가 완성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라일리의 제어 센터에도 인부들이 연장을 챙겨 지체 없이 도착했다. 어느 날 아침, 아직도 짐을 싸지 못한 채 무계획적인 모습, 별안간 자기 스스로가 역겨워 평생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한다는 판단력 저하와 분노 조절 실패는 가지치기로 인해 전두엽 기능이 취약해져 있음을 잘 반영한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극적인 성장통을 견디고 나면 전두엽은 기능적으로 크게 향상된다. 상대에게 실망하고 서운해도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정서를 통제하는 힘이 생기고 인지적으로도 발달돼서 미래지향적인 자기 초상을 형성하려는 욕구도 생긴다. “만약 ~라면”이라는 가정된 질문에도 능숙해진다. 이런 질문들은 계획 세우기를 돕고 구체적인 소망을 그리게 한다. ‘내가 원하는 미래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끔찍한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물론 구체적인 걱정이 누적되면서 끔찍한 불안을 탄생시킬 수도.

불안의 탄생

속편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인식, 나에 대한 평가에 따르는 당혹감, 부러움 등 인지능력에 의존하는 복합정서(complex emotion)가 등장한다. 그중 불안은 라일리의 자아를 그야말로 뒤흔들어버린다. 왜 하필 불안일까? 이전에도 ‘두려움’은 있었다. 두려움(fear)과 불안(anxiety)은 자주 혼용되지만 다르다. 두려움은 구체적인 자극에 대한 일시적 반응이다. 하던 행동을 멈추고 위험한 대상으로부터 도피하도록 준비시킴으로써 생존을 돕는다. 위협 자극이 사라지면 두려움은 점차 누그러진다. 이와 달리 불안은 심리적 대상, 사회적 상황 같은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이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지만 불안정하고 취약한 자기 개념이 활성화될 때 작동한다. 보호받지 못할 것이며 무능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안정되어야 불안은 진정 가라앉는다.

작고 안전한 세상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모르는 것이 많아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 일의 슬픔은 알지만 그 의미를 자신과 연관 짓는 법을 알지 못해 고통스럽지 않았다. 타인이 기대하는 나와 실제 내가 얼마나 다른지 이해하지 못해 조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이제 아는 게 많아졌다. 친절하던 선생님은 규칙에 엄격해지고,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은 타인의 손에 달려 있다. 나는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된다. 무능력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거절로 이어질 것이고 혼자 낙오될 것이 분명하다. 취약해진 전두엽은 자꾸만 왜곡을 만드는데 하필 사춘기에 급증하는 테스토스테론은 편도체를 부추긴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뇌 구조다.

불안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기

불안을 멈출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취약한 자기감을 가진 채 그대로 커버린 어른마저 달래주는 그 무언가가. 라일리의 불안은 어떻게 진정되었던가. 여기서 몇줄의 문장으로 반짝 솔루션을 전할 수는 없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상, 생각을 붙잡아 변화시켜 잠시간 안심할 수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불안을 통제하려다 오히려 주도권을 내어주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쁨이가 그러하였듯 불안의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옆에 서는 일 정도다.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장면, 생각을 가만히 바라보며 약간의 시간을 견디는 일. 감정에서 벗어나려 투쟁하지 말고 논쟁하지 않고 마음을 관찰하는 일. ‘모든 애정을 박탈당할 거야’, ‘쓸모없는 사람으로 기억될 거야’라는 생각을 외면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의 강에 흘려보내주는 일. 나의 모든 면을 인정하고 기꺼이 끌어안는 일. 우리를 죽일 것같이 강렬한 감정들은 어차피 예상처럼 오래가지 못한다. 기쁨이가 불안이의 손을 이끌고 소파에 앉히는 장면으로 돌아가보면 알 수 있다. 우리도 각자의 마음 어느 구석에 불안이의 자리를 마련해두자. 충분히 불안해하고 나면 그 자리에 데려다 앉혀 둘 것이다. 거슬리면 거슬리는 대로 두고, 우리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현실에 전념해보자. 놓아줄수록 감정은 빠르게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내 안의 불안이도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니까 눈치껏 사라져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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