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월트디즈니(이하 디즈니)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하 픽사)가 직원 175명을 해고했다. 이는 1300명에 이르던 자사 인력의 14%에 이르는 수치다. 짐 모리스 픽사 CEO는 인원 감축의 이유로 “디즈니+의 스트리밍 시리즈 대신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에 집중”하기로 한 정황을 밝혔다. 혁신을 위해 이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할 만큼 픽사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었으며 <버즈 라이트이어> <엘리멘탈> 등 극장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들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영향이 크다. 그러니 <인사이드 아웃2>의 흥행 여부에 시선이 쏠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를 감지한 짐 모리스 CEO는 “<인사이드 아웃2>가 (픽사의) 다음 스텝을 확인할 좋은 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사이드 아웃2>는 <토이 스토리4> 이후 픽사가 5년 만에 내놓는 속편이다. 피트 닥터 픽사 CCO가 2019년 <토이 스토리4>가 개봉한 뒤 자사의 “오리지널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인사이드 아웃>의 시리즈화는 사실 예정된 바가 없었다. 기존의 인기 IP 활용이 일정 수준의 흥행을 담보할 수는 있지만, 현상 유지 이상의 도약을 꾀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픽사는 오리지널 IP 개발에 힘을 쏟으려는 계획을 바꿔 예전 작품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 왜 다시 <인사이드 아웃>인가.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선 <버즈 라이트이어>를 비롯한 디즈니, 픽사 영화의 흥행 실패 이유와 그로 인해 제작사의 방향성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디즈니의 구조조정에 얽힌 속사정은?
2022년 개봉한 <버즈 라이트이어>는 우주특공대원인 버즈 라이트이어의 모험을 그린 영화다. <토이 스토리>에서 앤디가 갖고 놀던 ‘버즈’의 모델이 <버즈 라이트이어> 속 우주비행사라는 설정이다. 픽사 최고의 프랜차이즈 <토이 스 토리>의 스핀오프임에도 <버즈 라이트이어>의 글로벌 수익은 2억1870만달러에 그쳤다. 그로부터 1년 뒤 극장에 걸린 <엘리멘탈>은 2950만달러라는 픽사 역사상 가장 낮은 개봉주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로 입소문을 타면서 총 4억96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긴 했으나 이 역시 성공적인 결과라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두 작품이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버즈 라이트이어>의 경우 인기 캐릭터를 활용하긴 했지만 원작과의 연계성이 너무 적었고, 그로 인해 원작 팬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을 등장시키고 동성간의 입맞춤 장면을 넣어 LGBT 요소를 강화한 점도 거론됐다. 제작사의 의도와 별개로 해당 이유로 인해 결국 중동 국가들에서 개봉하지 못했고 일부 보수층의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또 다른 최근작들, <엘리멘탈>과 실사화 영화 <인어공주>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이들이 다수를 모객하는 데 실패한 건 문화 및 인종 다양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해 나온 애니메이션 <위시>도 기대를 모았으나 전작들의 장점을 고민 없이 답습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리해보면 최근 몇년간 디즈니 픽사가 선보인 신작들은 정치적 올바름(PC)과 인종·문화 다양성, 성소수성을 강조했고, 기시감이 들며, 익숙한 캐릭터를 활용하되 낯선 세계관을 펼쳤다는 이유로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추가로 영향을 준 세부 요인들은 존재하겠지만 이후 디즈니와 픽사의 행보로 미루어볼 때 내부적으로 이와 비슷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의 선택은 냉정했다. 올해 픽사가 인원을 감축한 것처럼, 지난해 7천명의 직원을 해고하며 7조원에 이르는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창작자 및 임원 구성에도 변동이 있었다. <버즈 라이트이어>의 감독 앵거스 매클레인, 프로듀서 게린 서스먼은 디즈니의 구조조정 시기에 해고됐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디즈니의 최고다양성책임자(CDO)로서 인종, 성별, 성적 지향성과 같은 문제를 다뤄온 래톤드라 뉴턴도 지난해 사표를 냈다. 밥 체이펙에게 디즈니 CEO 자리를 내어주고 물러났던 밥 아이거는 다시 복귀했다. <CNBC>에 따르면 밥 아이거 CEO는 “작품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 창작자의 최우선 목표는 재미지 메시지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피트 닥터 CCO도 “감독 개인의 서사에서 이야기가 출발할 수는 있지만, 수정 보완을 거쳐 허구적인 캐릭터를 위해 작동해야 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논란의 여지를 주지 않는 동시에 더 많은 관객을 타기팅할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디즈니 픽사의 새로운 목표에 <인사이드 아웃>만큼 부합하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미국, 영국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8억5800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하며 픽사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영화다. 주제 면에서도 유년기의 감정 변화라는 보편적 경험을 건드린다. <인사이드 아웃2>도 마찬가지다. 13살이 된 라일리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겪는 교우 관계 문제, 신체·정서적 변화를 묘사하는데 이는 인종,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다수의 관객에게 소구 가능한 스토리다. “감정을 느껴본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데드라인>)이라는 <인사이드 아웃2>의 제작자 마크 닐슨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라일리와 함께 하키를 하는 캐릭터들의 설정에서 인종 다양성을 꾀하긴 했지만 전작들처럼 이를 강조해 드러내진 않는다. <인사이드 아웃2>를 기대하는 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인사이드 아웃2>의 티저 예고편은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157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모아나2>의 예고편이 공개되기 전까지 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예고편 역대 최고의 시청 기록이었다.
혁신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박스오피스 예측도 긍정적이다. <버라이어티> <데드라인> <박스오피스 프로> 등 외신들은 <듄: 파트2>(8250만달러),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8천만달러)를 제치고 <인사이드 아웃2>가 올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높은 개봉 성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6월14~16일, 아버지의 날이 포함된 주말 기간 동안 유일한 북미 전국 개봉작이며 가족 단위 관객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2> 제작은 디즈니 픽사의 최근작들이 논란에 휩싸이기 이전에 논의됐다. 하지만 정치적 메시지 없이 보편적 공감의 가능성은 유지한 이 속편의 개봉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적절해 보인다. 이변이 없다면 픽사의 구원투수가 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2>의 성적만큼이나 이후 공개될 픽사 차기작들의 행방도 주시해야 한다. 지금까진 <엘리오>가 2025년 6월13일, <토이 스토리5>가 2026년 6월19일 개봉 소식을 알린 상태다. 픽사의 새로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엘리오>) 그리고 대표 프랜차이즈의 속편(<토이 스토리5>)으로서 이들이 어떤 결과를 얻어낼지에 따라 픽사의 행보는 유지될 수도, 다시금 변화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이 혁신으로 위장한 퇴보의 길은 아니길 (픽사의 작품에 울고 웃었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