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만 나열하자면 이렇다. 2부작으로 제작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은 다 합쳐서 약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드디어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62만 관객에 그쳤다. 기대를 모았던, 검증된 중견감독들의 SF 장르 도전은 결과적으로 아쉬운 성적표로 마감됐다. 시야를 지난해까지로 넓히면 김용화 감독의 <더 문>도 눈에 들어온다. 2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51만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제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중견감독들은 (굳이) 왜 (대작) SF에 도전하고, 어떤 이유로 실패하는 거냐고.
중견감독들이 SF에 매혹되었던 이유
질문의 순서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해석은 다채로워진다. ‘대작 SF에 도전했지만 실패’하는 것과 ‘대작 SF를 만들었기에 실패’하는 건 완전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중견감독들이 SF 제작에 매혹되는 것과 그것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분리해서 다뤄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익명을 희망한 한 영화평론가의 지적처럼 “개별 작품들의 실패는 그저 개별의 완성도 탓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구태여 묶어서 어떤 경향으로 파악하는 건 단지 읽어내고 싶은 사람의 욕망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를 철저히 파편적인 개별 작품들의 실패로 보기에는 한국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받은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아쉬운 결과들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요컨대 물길이 바뀌는 징후가 감지된다.
우선 중견감독들이 SF에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SF 장르 자체에 대한 꾸준한 애정이 있는 감독도 있고, 규모를 키우다 보니 필연적으로 SF, 사극, 판타지 장르로 좁혀지는 경향도 있다.”(영화 제작자 A) 두 가지는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SF는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장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불모지에 가깝다. SF가 메이저 장르처럼 보이는 건 단지 일정 이상의 규모가 필요한 ‘볼거리’에 기인한 유사성 탓이다. “최근 중견감독들의 SF는 할리우드 예산으로 보면 중저예산이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SF, 판타지, 슈퍼히어로영화와 같은 눈높이로 평가가 이루어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엄격해졌다”(영화 제작자 B)는 의견은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200억~300억원은 우리 시장 규모로는 블록버스터지만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중저예산”이란 지적은 사태의 핵심을 꿰뚫는다. 근래 중견감독들의 대형 SF영화들은 SF 장르에 대한 이해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결과물이 아니라 규모에 근거한 볼거리로서의 무대 정도로 SF를 활용한 사례에 가깝다. 이렇게 접근하면 장르는 SF, 판타지, 디스토피아, 심지어 사극이라도 상관없다. 중견감독들이 애초에 SF 대작을 염두에 두고 도전하는 것이라기보단 규모를 키웠을 때 가능한 옵션 중에 SF적인 요소가 포함된 것이라 보는 편이 타당하다. 올해 목격하는 것은 대작 SF의 황혼이지만 사실 일련의 흐름은 훨씬 전부터 쌓여왔다. 중견감독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 (2021), 연상호 감독의 <반도>(2020)와 <정이>(2023),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도 유사한 경향 아래 놓여 있다. 물론 이들이 각각 SF적인 요소에 도달한 경위는 다르다. 축약하자면 ‘현실과 다른, 여기가 아닌 어딘가’라는 느슨한 연대로서 규모의 확장이 허용된 결과물처럼 보인다.
이중 중견감독들의 대작 SF행은 차라리 해외 중견감독들이 특정 시기부터 자전적 영화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놓을 수 있다. 핵심은 경험과 역량을 쌓은 감독이 펼쳐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고, 그 바람을 시장이 받아줄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는 거다. 그게 (해외시장에서는 중저예산이지만) 한국영화에서는 블록버스터급에 해당하는 SF영화였다. 다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SF라는 장르적인 맥락에서는 아쉬운 완성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영화평론가이자 SF작가인 듀나는 <외계+인> 2부에 대한 <씨네21> 비평에서 “장르 기반 없이 ‘한국식 SF’를 만들려는 많은 시도가 그렇듯.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지 않는 한 이 모든 건 그냥 장식이고, 장식은 그 밑의 무언가가 지탱해주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건 비단 <외계+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SF를 겉옷처럼 입은 대부분의 영화들이 이 문제를 피해가지 못했다.
블록버스터를 위한 SF는 없다
올해는 텐트폴이 없었다. 정확히는 몇해째 지속된 실패로 얇았던 텐트가 걷히고 있다. 애초에 한국 시장에 텐트폴이란 개념은 ‘다른 영화의 손실을 막아줄 만큼의 큰 흥행’이란 긍정보다, ‘실패하면 스튜디오의 명운이 휘청이는’ 부정의 의미가 더 밀접하게 다가온다. 올여름 가장 큰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였지만 여름 시장을 겨냥했다기보다는 개봉 시기가 밀리면서 여름에 안착한 케이스에 가깝다. 중견감독들의 도전이 아쉬운 결과로 이어진 건 각각의 사정이 있는 개별의 결과다. 다만 그 대부분이 규모 있는 SF였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련의 결과가 수렴하는 공통 신호는 하나다. 어느덧 한국영화 시장의 대작 선호주의는 기반을 잃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CJ ENM,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등 5대 영화 투자배급사가 신작 투자에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가운데 적어도 당분간은 규모에 기댄 프로젝트가 나오기는 희박한 상황이다.
다만 구분해야 할 것은 이들의 실패가 한국영화의 허리를 담당할 중견감독의 실패 혹은 세대교체의 신호로 곧장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범주화만큼 선명하고, 편리하고, 위험한 작업도 드물다. 개별 영화는 각각의 사정이 있고 진실은 언제나 디테일에 깃드는 법이다. 중견감독들이 SF를 택했기 때문에 실패한 게 아니다. 중견감독들의 현재를 한두 차례의 실패로 재단하는 것도 곤란하다. 기성감독의 부진을 말하기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 사례가 있고, 반대로 신진감독의 상업적 도약을 말하기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가 방해가 된다. 예견된 상업적 실패를 감수하고도 자신의 길을 고수한 <리볼버> 오승욱 감독의 뚝심이 보여준 길은 어떤가. <파묘>의 장재현 감독이 확장한 대중적인 화법도 이야기해볼 지점이다.
아직까진 기성감독들이 ‘대작 SF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것인지 ‘대작 SF를 만들었기에 실패’한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어떤 목적으로 카테고리를 묶을 것인지에 따라 결과는 바뀔 수 있다. 확실한 건 SF가, 아니 SF를 비롯한 ‘여기가 아닌 어딘가의 영화들’이 단지 규모의 논리로 선택될 일은 당분간 없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대기 중인 원신연 감독의 <왕을 찾아서>와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이 모든 섣부른 예측을 다 뒤집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제약과 한계를 통해 예술적인 시도가 도약해왔던 사례를 비춰볼 때 이것이 SF 장르, 나아가 한국영화 전반에 득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