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뉴 레트로의 등장을 이야기하다, 콘텐츠 대홍수 시대, 왜 사람들은 20년 전으로 돌아갈까? - 응답하라 2000년대!
2024-09-13
글 : 이자연

<내 이름은 김삼순>과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여름을 기억하고,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쾌걸춘향>으로 겨울을 맞이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 추억 향유를 넘어 산업 전반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드리우고 있다. 일주일에도 시리즈와 드라마, 영화, 유튜브 채널이 무수히 쏟아지는 지금 우리는 질문을 건네보기로 했다. 콘텐츠 춘추전국시대에 왜 사람들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노스탤지어를 좇아 본능적인 발걸음을 떼는 대중적 현상의 이유를 가늠해보기로 했다.

짜잔! 뉴 레트로의 등장

문화계 전반에 향수 콘텐츠로 재현되기 시작한 시절은 아마도 7080세대일 것이다. 중간중간 도색이 벗겨진 매끈한 롤러장, 빨간 목폴라와 살아 있는 앞머리 뽕, 톡톡 튀는 오란-씨와 써니텐. 화려한 복고 문화를 자랑하는 7080 이미지는 영화 <친구> <써니> <피끓는 청준>, 걸그룹 티아라 3집 타이틀곡 ‘롤리폴리’ 등으로 꾸준히 재현되었다. 대중문화 발전에 가속도를 올린 1990년대를 향한 향수는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차용되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90년대로 시선을 모았고, 가장 정점에 오른 건 2014년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였다. 방영과 함께 ‘90년대의 향수’ 그 자체가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2020년대의 레트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향을 보인다. 7080세대를 지나 90년대를 넘어 이제는 2000년대 초반으로 가닿은 것이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 <지붕뚫고 하이킥!>(2009)을 반복 시청하고 <파리의 연인>(2004), <쾌걸춘향>(2005),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커피프린스 1호점>(2007), <궁>(2006) 등 그 시절의 풍경을 그대로 저장한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가뿐일까. 2000년대 초중등생 사이에서 전폭적인 인기를 휩쓸었던 10대 소녀 정보지 <미스터케이>는 고유한 부록 편선지를 모아 펀딩을 진행한 결과 목표액의 5456%인 5억4천만원을 달성했고, 2002년 해태제과에서 만든 ‘아바타 스타 슈’는 인스타그램으로 부활하자마자 온라인상에서 반가운 환호를 얻었다. 2000년대를 그리워하는 댓글을 달아달라는 ‘슈다방’에서 “나도 너처럼 영원히 열살이고 싶었는데 슬프다…”라는 문장이 많은 사람을 울렸다. 이러한 풍경을 두고 문화산업이 타깃 삼은 주요 소비층이 80년대 중반~90년대 중반(현 30대 기준)의 아래 세대로 내려갔다는 분석도 일리 있지만 그보다는 이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문화적 욕망, 사회적 허기를 짚어낼 필요가 있다.

시대가 이끌어낸 노스탤지어

2000년대 콘텐츠가 무작정 지금의 것보다 좋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지금보다 남성 중심적이거나 차별적인 언행에 무뎠던 당시, 대부분의 콘텐츠에는 그러한 허점이 묻어난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순재는 세경이를 두고 “집에서 걸레질하는 애”라는 표현을 자주하고,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박신양)는 데이트 폭력에 가까운 행동을 해도 로맨스로 취급받는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진헌(현빈)은 일터에서 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여아들에게 화장과 정리정돈을 주입하던 <미스터케이>와 선정적인 그림의 <프린세스 메이커>도 다시 보기 힘들다. 동시에 지금 갖지 못한 것들이 그 안에 있다. 타인에게 너그럽고 온정적인 태도,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 많은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싫어 혼자를 택하는 게 현재 관계망의 트렌드처럼 비쳐지지만 이들은 ‘횡단보도 혼자 건너는 아이를 본 시민들의 반응’, ‘사회초년생이 넥타이 매는 법을 물어본다면?’ 등 사회실험 콘텐츠에 눈물을 흘리는, 온정주의적 사회를 갈망하는 모순을 지녔다. 그러니 2000년대의 것은 그 갈망을 채워주면서도 규범적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특징이 있다. 작품 속에 현대적 가치에 맞지 않는 지점이 있지만 어쨌든 그것은 이미 20여년 전에 끝나버린 ‘완료형’ 콘텐츠다. 현재진행형인 동시대 콘텐츠가 같은 문제를 가질 때와는 다소 다른 무게의 비판을 받는다. 누군가는 이러한 풍경을 두고 “그때 드라마(영화)가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만들어졌다”라고 단순화해버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노스탤지어가 그때의 구시대적인 언행까지 환영한다고 보는 건 곤란하다. 작품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살육과 복수, 불륜과 치정이 주류가 된 숨 막히는 요즘 작품 사이의 일상적인 슴슴한 맛은 <도파미네이션> <도둑 맞은 집중력> 등 과잉 감정을 경계하는 요즘 세대의 저항적인 태도에도 적합하다. 도덕적 규범은 높아졌지만 세부 취향을 커스터마이징하는 데 익숙한 세대적 문화 능력이 뉴 레트류 현상에 굵직한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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