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삼순이는 있을 테니까, <내 이름은 김삼순> 배우 김선아
2024-09-13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만난 사람들에게 김선아는 배우 그 이상의 존재다. 모두가 알고 경험했지만 구체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그는 뜨겁게 현현했다. 4K 리마스터링 감독판으로 돌아오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를 서면 인터뷰로 만났다.

- 19년 만에 감독판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이 돌아온다. 소감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내 이름은 김삼순>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인생작으로 뽑힐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어 신기하면서도 너무 감사하다. 19년 만에 다시 만난 삼순이는 마치 오랜 시간 함께한 소중한 친구 같아서 설레고 행복하다. 시청자 중 한 사람으로서도 기대된다.

- <내 이름은 김삼순>을 선택했을 때 전작과 다르다는, 시청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듯한데 어땠나.

2000년에 드라마 <황금시대>를 한 이후 5년 동안 영화만 찍었다. 오랜만에 받은 드라마 대본이 <내 이름은 김삼순>이었다. 처음 대본을 받고 읽었을 때 김삼순이 곧 나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이미 무언가를 먹고 있을 만큼 대본 속 김삼순이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자신감보다는 이 작품을 촬영하며 김삼순의 인생을 대신 살아갈 배우로서 설렘에 가득 차 있었다.

- “어렸을 때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볼 때는 30살만 돼도 노처녀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은 30살에 결혼하면 빨리 하는 거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됐다”라는 반응을 많이 본다. 극 중 “여자는 서른 넘으면 다 아주머니 아닌가”라는 대사도 나오지만, 지금 시대에는 성립되지 않는 말이다. ‘서른살’의 의미가 예전과 달라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될 때만 해도 20대 때 무언가를 준비하고 서른살이 되면 인생의 무언가가 완성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의 ‘서른’은 인생의 완성이 아니라 이제 인생의 리허설을 시작하는 나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이나 사랑에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나이다. 서른살이 되기 전까지는 멀게만 느껴졌지만 지나고 나니 가장 열정 가득한 어린 나이였다.

- <내 이름은 김삼순>을 다시 보면서 김삼순은 본인이 프랑스 유학을 갔다온 능력 있는 파티시에였고, 호텔 상속자 현 남친과 건설회사 상속자 구 남친이 여친이 이미 있는데도 싸울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삼순이가 인간적으로, 직업인으로, 연애 상대로 가진 매력이 무엇인 것 같나.

김삼순은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고, 사랑 앞에서는 용기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당당함이 있다.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을 숨김없이 진심으로 표현하는 솔직함도 있다. 단순히 빵과 과자를 만드는 직업으로 알려졌던 파티시에에 대한 전문성과 자부심을 지닌 것 또한 큰 매력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작 서른인데….

- 마스카라 번진 눈으로 울고, 술 먹고 토하고, ‘지랄한다’며 욕하고, 다이어트를 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비빔밥을 비벼 먹는 모습 등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망가지는 연기’로 통칭되는 연기를 <내 이름은 김삼순>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잘 소화했다. 이같은 연기가 작위적이거나 과하지 않고 일상성을 더하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배우의 힘이 컸다고 보는데, 어떻게 접근했나.

가장 큰 접근 방법은 ‘삼순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고민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 남친이 집 앞에 찾아와 함께 호텔을 가는 장면은 다른 로맨틱코미디였다면 여자주인공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을 거다. 하지만 삼순이라면 그냥 집에서 나온 복장 그대로 갈 것 같았다. 그래서 호텔에는 어울리지 않는 추리닝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촬영했다. ‘망가지는 연기’라고 불리는 연기들이 망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삼순이라면 이 상황에 마스카라가 번지든 말든 울었을 거고, 누구에게든 욕할 수도 있었을 거고, 다이어트 따위 금방 포기해버리고 비빔밥에 소주 한잔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 <내 이름은 김삼순>과 관련된 ‘꾸준 떡밥’ 중 하나. 삼순과 진헌(현빈)은 결국 헤어졌을까 혹은 결혼했을까? 연기한 배우로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촬영이 끝나고 문득 ‘이 뒤에 둘은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결혼해서 잘 사는 것, 두 번째는 두 사람의 사랑이 현실의 벽에 막혀 안타까운 이별을 하는 것, 세 번째는 헤어진 이후 각자 결혼했다가 이혼 후 다시 만나는 것? (웃음) 삼순이를 연기한 배우로서는 첫 번째 결말이었으면 한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결말이었어도 삼순이는 늘 삼순이처럼 솔직하고 당당하고 행복하게 자신을 사랑하며 살았을 것이다.

- 매년 여름 <내 이름은 김삼순>을 다시 본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유튜브에서도 높은 조회수를 올린다.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다시 이 드라마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이 드라마는 특정 세대나 시대의 공감대를 말하기보다 어머니 세대도, 우리 세대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도 모두가 삼순이의 나이쯤에 고민할 자신의 삶과 사랑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든 삶은 살아야 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 드라마 속 삼순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사랑을 솔직하게 진심으로 대하고 아픔도 당당히 이겨내고 있다. 과거에도 삼순이는 있었고 현재에도 삼순이는 있으며 미래에도 삼순이는 있을 것이다. 각각 다른 이유겠지만… 그래서 세월이 지나도 대중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드라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시대가 바뀌고도 사랑받는 것 같다. 제목과 캐릭터의 이름의 힘도 크다.

-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활약하며 인생 첫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을 하기 이전과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드라마 내용처럼 ‘김선아’라는 이름을 남녀노소에게 각인시킨 것. 이전에는 ‘어느 영화에 나온 누구 아니야?’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었다면 김삼순 이후에는 ‘배우 김선아’라는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알린 것 같다. 마치 ‘내 이름은 김선아’같이. (웃음) 연기에 대한 마음은 <내 이름은 김삼순> 이전과 이후로 생각했을 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아직도 나에게 연기란 갈수록 어렵고 더더욱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20년째 여전히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 <MBC 베스트극장-그녀의 화분 No.1>을 함께했던 김윤철 감독과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다시 만났고, 이후 <품위있는 그녀>에서 오랜만에 재회한 바 있다. 이 드라마 역시 김선아의 중요한 필모그래피 중 하나로 꼽히지 않을까 싶다. 캐릭터 면에서도 장르 면에서도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는데 어땠나.

<내 이름은 김삼순>도 <품위있는 그녀>도 대본을 보기 전에 ‘김윤철’이라는 이름 석자만 듣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만큼 감독님이 나에게 주는 신뢰는 엄청나게 크다. 두 작품을 함께하면서 김삼순과 박복자라는, 한번도 만나기 어려운 인생 캐릭터를 두개나 얻었다. 특히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는 김삼순과는 너무 다른 캐릭터라서 고민이 많았지만 당시 감독님의 “자신의 감각, 육감을 믿고 가라”라는 말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큰 힘이 됐다.

-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에도 <시티홀> <여인의 향기> <키스 먼저 할까요?> <가면의 여왕> 등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매번 새로운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 혹시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것 중)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다면.

요 몇년 동안 장르물에서 전문직에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들을 많이 해왔다. 흔히 말하는 센 캐릭터들…. 그래서 이제는 휴먼드라마 속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어쩌면 흔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로드무비에서 택시 또는 관광버스 기사가 되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캐릭터 같은…. 여자 택시 기사, 여자 관광버스 기사 캐릭터라면 신선하고 매력적이지 않을까.

- 영화제나 극장 프로그램으로 김선아 배우전을 연다고 가정하자. 드라마를 포함해서 꼭 넣고 싶은 작품을 꼽아달라.

<위대한 유산>. 어쩌면 나에겐 삼순이 이전에 백조 미영이가 있지 않았을까? <잠복근무>. 김선아의 액션을 보고 싶다면 꼭 보시라!!! <내 이름은 김삼순>. ‘배우 김선아=<내 이름은 김삼순>’이지 않을까? <여인의 향기>.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가장 힘들었던 만큼 가장 몰입했던 작품이다. <시티홀>.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중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캐릭터 신미래! <품위있는 그녀>. 말해 뭐해. 박복자는 꼭 보시라!! 제2의 인생 캐릭터다. <붉은 달 푸른 해>. 웰메이드 작품이다. 꼭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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