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 필요한>은 지구 안팎을 넘나들며 일과 사랑 모두를 향해 달려가는 요즘 청년들의 연애를 가능한 한 달콤하게, 그리고 동시대적으로 전하려는 애니메이션이다. 작중 동년배인 두 캐릭터이지만 목소리 출연한 김태리와 홍경이 자아낼 묘한 연상-연하미, 불안형과 안정형이 만난 연애의 구원 서사도 기대된다. 일상성이 돋보이는 단편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고 퀴어 로맨스 <그 여름>으로 데뷔한 한지원 감독이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발표하는 첫 장편애니메이션을 지휘했다.
우주 비행사와 뮤지션이라는 특수한 직업 세계의 일들에 국한되지 않는 감정에 더 주안점을 뒀다. 일과 사랑 모두를 열심히 고민하는 내 또래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또 자신의 꿈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일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적인 영역에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이 있지 않나. 그런 난영이 제이를 만나서 생기는 변화를 담고 싶었다. 이건 나 자신과 완전히 분리시키기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 ‘이 별’(지구)과 ‘이별’이 겹쳐지는 사랑스러운 제목이다.
제목은 동명의 다른 단편 작품의 허가를 받아서 차용했다. <이 별에 필요한>은 난영과 제이의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난영이 과거에 자신의 엄마와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별에서 멀어져서야 알게 되는 것들,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제목의 중의적인 의미가 나 역시 무척 마음에 든다. 헤어짐을 결심하고서야 사랑을 깨닫는 과정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역시, 지구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 여성 우주 비행사 난영을 떠올리면 단단하면서도 털털한 배우 김태리의 캐릭터성이 다분히 묻어날 것만 같다.
워낙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라 우주 비행사 하면 오로지 직업적인 면모가 굉장히 부각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들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고 일상의 영역에선 의외로 허술하거나 키치한 면모가 있다. 나는 난영이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이기보단, 자기 꿈에 집중하면서도 취향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의 또래 청년이었으면 했다. 태리 배우가 정확히 그랬다. 우직하고 강인한 직업인이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과 순수함이 있는.
- <청설>에 이어 로맨스물에서 활약할 홍경의 목소리, 어떤 매력으로 부각될까.
내가 처음 쓴 시나리오만 해도 난영이 중심이었는데 각색 작가가 제이 캐릭터를 점차 발전시켰고, 홍경 배우가 합류하면서 정말로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현실적이고 디테일이 섬세한 연기를 하는 배우다. 현재까지 주변 모니터링 결과 제이에 강한 호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더라. 우리의 여자주인공이 사랑에 빠질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어야 하는데, 홍경 배우가 가진 특유의 문학적이고 힙한 이미지가 적역이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너드함이라고 할지, 과거에 선호했던 마초적인 남성상이 아니라 여성들과도 편안하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요즘의 이상형에 정말 부합하지 않나 싶다.
- 우주가 극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적, 주제적 테마인 만큼 분량이나 배경 작화의 스타일 등이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진다.
분량으로 치면 지구 반, 우주 반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애니메이터의 입장에서 우주는 어렵지만 용이하기도 한 배경이다. 그릴 게 많이 없어서…. (웃음) 다만 특정한 무드를 확실히 구현해주고 인물의 감정선,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부분에 신경 썼다. 우주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사실 검은 어둠 속에 점이 찍힌 외부보다는 우주선 내부, 우주복 등의 디테일에 더 호기심이 생길 터라 그 부분에도 공을 들였다.
- 2D 셀애니메이션을 고수하는 감독이다. 동시대의 셀애니메이션을 어떤 방향으로 추구하고자 하나.
애니메이션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영유아용으로 시장성 있게 기획된 작품들 위주로 제작되기 마련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요즘 사람들이 요즘 말투와 요즘 옷을 입고 나오는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동시대성, 트렌디함을 2D 셀애니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이를테면 난영과 제이가 서로 나눠 끼는 별 모양의 작은 귀걸이가 있는데 그런 작은 소품에서도 ‘요즘 느낌’이 나도록 구현하려고 했다.
- 지구에서 우주 밖으로 송출되는 노래들이 감동을 줄 것 같다. 음악에 관해 말해준다면.
양자물리학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우리 모두가 아주 작은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결국 우리가 음악이고 하나의 노래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소리의 파동을 전하는 턴테이블과 LP가 <이 별에 필요한>에서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고. 만약 이 작품이 우주적인 영화라면 그건 우주 배경의 장면이 나와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 지구가 곧 우주라고 바라보는 작품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보컬 곡이 많은데, 모두 새로 작곡한 음악들이고 일부는 홍경 배우가 직접 녹음하기도 했다. 기대해달라!
<이 별에 필요한>
<이 별에 필요한>의 이 장면 “우리 곁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 사람들의 연애 풍경을 생생하게 장면화하고 싶었다.” 한지원 감독은 난영과 제이의 ‘애정 행각’을 묘사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일 수 있다고 예고한 그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딱히 못 담는 장면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로 기대감을 지폈다. 남편과의 연애 시절을 떠올렸고, 20대가 대다수인 <이 별에 필요한>팀 모두 각자의 연애사를 적극 반영해 꽁냥거리는 젊은 연인의 디테일을 한껏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