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면?’ 싱숑 작가의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간단명료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일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루한 일상 속 웹소설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인 김독자는 조회수 한 자릿수를 간신히 유지하는 판타지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오직 단 한명, 나뿐이다. 기괴한 크리처의 출몰과 게임 속 퀘스트를 수행하듯 앞다퉈 싸우는 사람들, 지리멸렬한 혈투 속에 홀로 능수능란한 김독자. 큼직한 성좌 속에 숨은그림찾기 하듯 각 인물의 우주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어떻게 완성되었을까. 아포칼립스와 이세계물이 뒤섞인 액션 판타지를 재현하기 위해 현재 관객 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명민히 고민한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를 만났다.
- <미녀는 괴로워> <신과 함께> 시리즈 등 원작 IP를 영화화한 경험이 많다. 이번에는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을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내가 일관성 있게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다. (웃음) 좋은 게 매번 바뀐다. <신과 함께> 시리즈가 끝나고 어느 날 <전독시>를 읽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원작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현대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더 갖는데 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잃는 세상이다. 어린 세대에겐 이런 사회가 어떻게 비칠까. 아무래도 세상에 희망이 전멸했다고 느낄 것 같다. 그런데 <전독시>는 그로부터 위로를 준다. 김독자란 어떤 인물인가. 지방 대학교를 졸업해서 회사 비정규직 직원으로 일하면서 한번도 각광받아본 적도, 인정받아본 적도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이 한국이 아니라 지구를 구한다. 이 아무것도 아닌 친구가. 노바디, 언더도그, 루저. 모든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 겨울에 피는 매화처럼 모두에게 다른 희망이 필요하다. 그 지점을 <전독시>가 정확하게 짚어낸다.
- <전독시> 원작 자체가 워낙 대서사시다. 이번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를 다루게 될까.
세계관과 캐릭터를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왜 지구가 멸망하게 됐을까, 정확히는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그리고 이렇게 발달한 도시 문명과 테크놀로지,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고도 왜 우리는 우울할까. 이런 문제를 시대 반영을 통해, 그러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로 전달하고자 한다. 어쨌든 <전독시>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특정 메시지나 교훈을 교조적으로 내세우거나 강조하지 않고 흥미롭게 몰두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 영화라는 영상 포맷에 어떤 지점을 부각하고자 논의했나.
서사와 캐릭터, 감정이 없는 기술은 사실 모두 겉멋이다. 모두 의미 없다. 따라서 탄탄한 극적 요소를 이끌어가는 동시에 새롭고 신선한 장면을 갖추는 게 우리의 중요한 미션이었다. 섬싱 뉴, 섬싱 프레시. <전독시>는 회귀물이자 아포칼립스물이고 재난을 보여주면서 액션 판타지까지 갖추었다.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많아서 독자적인 레퍼런스가 될 거라 생각한다. 한창 후반작업 중인 요즘 천번 넘게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새롭다. 단언컨대 한국 영화산업에서 신선한 작품으로 발돋움할 거라 믿는다.
- 원작이 있는 영화는 두 가지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원작에 충실할 것인가, 새로운 상상력을 가미할 것인가.
그래서 <신과 함께>에서 정말 욕을 많이 먹었다. 엄청 장수할 것 같다. (웃음) 원작을 사랑하는 팬들로부터 작품을 훼손했다는 말도 많이 듣고. 물론 영화가 개봉한 뒤에 그런 이야기가 잦아들긴 했지만….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고민 없이 원작을 수용하기만 하면 영화는 재현에 그친다. 영상은 감정의 빌드업이 중요한 포맷이다. 긴 이야기를 점진적으로 끌어올려 2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이렇게 쌓여가는 감정을 관객들이 잘 따라가도록 원작의 서사와 캐릭터, 세계관을 그대로 갖고 오되 영화적 묘미를 위해 에피소드에서 변주를 주고자 했다.
- 김병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 감독에게 <전독시>를 제안한 이유는.
김병우 감독은 평소 무심하고 건조한 성격이지만 타인의 감정을 귀신 같이 잡아낸다. 그래서 그와 함께 일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전독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감정을 관객에게 노골적으로 강요하면 안되기 때문에 감정을 살살 이끌어내는 김병우 특유의 힘이 필요했다. 드라이하게 이어지는데 어쩐지 여운이 남는 장면들. 그만의 장기가 작품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전독시>는 멸망하는 세계를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희망이 중심이다.
-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신승호, 나나, 지수 등 젊은 세대의 배우들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과 함께해왔다. 나는 이제 스토리 산업에서 세대교체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한국 영화산업이 선순환구조로 나아갈 수 있다. 새로운 얼굴이 없으면 관객들은 그 안에서 지루함을 느낀다. 물론 중장년 배우들만의 저력이 있다. 다만 영어덜트 세대가 자신을 이입할 수 있도록 2030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처음에 안효섭 배우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김독자의 어리숙함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과연 이게 될까? (웃음) 근데 그게 되더라. 이 간극도 작품의 큰 재미가 될 거다. 또 나나 배우는 몸을 무척 잘 쓴다. 많은 관객이 그의 액션에 엄청 반할 것이다. 어마어마하다. 블랙핑크 출신의 지수 배우도 원작 팬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모든 배우가 연기력과 감정선에서 무척 안정적이다. 이들이 영화의 메시지를 물 흐르듯 잘 전해줄 거라 확신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
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 MYM엔터테인먼트, 스마일게이트리얼라이즈, 앤솔로직, 더프레젠트컴퍼니
감독 김병우 출연 안효섭, 이민호, 채수빈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2025년 여름<전지적 독자 시점>의 이 장면 “동호대교 위에서의 격돌. 원작에서도 명장면으로 꼽히는 부분으로, 두 남자의 에너지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장르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크리처에도 생생하고 역동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꼭 놓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