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사랑도 영화도 끝까지, <너의 나라>(가제) 이옥섭 감독
2025-01-23
글 : 김소미
사진 : 백종헌

이옥섭, 구교환 콤비가 장편영화로 뭉쳤다. 희극적이고 키치한 감수성,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음악, 웃겼다가 이내 비련해지는 드라마의 파고를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는 조합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사람의 신작은 지독하고 가혹해서 어쩐지 고전적인 사랑영화의 풍모를 풍긴다. <너의 나라>(가제)는 서로를 흠모하지만 이미 연인이 있어 애달아하는 교환(구교환)과 도연(장도연), 그리고 영화감독 소정(김소진)의 이야기다. 2X9HD라는 본진으로 돌아가 주연과 연출을 겸한 구교환, 코미디언에서 첫 장편영화 배우로 거듭난 장도연, ‘소정이’로 불리던 2X9HD 세계의 정체성을 새롭게 승화한 김소진이 희귀한 앙상블을 보여줄 예정이다. 쌉쌀한 로맨틱코미디이자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메타 드라마인 <너의 나라>를 완성한 이옥섭 감독은 픽션이 허락하는 “사랑의 끝”을 보려고 한다. 단편 <4학년 보경이>, 장편 데뷔작 <메기>에서 그랬듯 그가 실험하는 사랑은 기어코 촛불에 제 손가락을 대어보는 사람의 그것처럼 오묘하게 흥분되고 조금은 아플 것 같다.

- <너의 나라> 속 사랑의 막대기, 어떻게 얽혀 있나.

교환과 소정은 커플이고, 도연과 소정은 친한 사이다. 그런데 어쩌다 교환과 도연 사이에 묘한 기류가 생긴다. 소정은 그걸 눈치챘으면서도 두 사람과 함께 어울린다.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는데 자기만의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 인물들 저마다 관계의 제약 속에 놓인 상황이다. 극 중 감독인 소정의 관점을 놓고 보자면 왜 상황을 피하지 않고 삼각형 안에 더 얽혀들기로 하는지가 재밌는 질문거리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에 대해 나 또한 연출하면서 답을 찾아가고 싶었던 질문이다. 왜 그럴까. 최악의 것을 직접 보고 납득하려는 마음인 건지, 이 관계와 감정을 자기 작품에 담아내고 싶은 욕망인 건지, 연인을 놓고 싶은 건지 아니면 반대인 건지….

- 사랑은 기행도 유발하지 않나. 소정은 연인과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이 뒤섞인 경우라 더 그런 것 같다. 이옥섭의 사랑론이 궁금하다.

20대 땐 수십, 수백년 전 고전소설 속 사랑을 훔쳐보면서 흔들리는 내 마음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이제는 마음이 곧 나는 아니라고 받아들였고 다만 그런 지난한 과정들 ‘이후’가 궁금해서 사랑 소설들을 읽는다. 처음엔 <이선 프롬> 같은 결말을 그렸다가 바꿨고, 나중엔 윤단비 감독이 추천해준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가 영화에 좋은 자극을 줬다. 누군가에겐 우유부단하거나 자기파괴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내겐 무척 용기 있는 주인공이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를 직면하면서 대가를 치르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스스로 선택했다면 그게 벌 받는 결말이어도 좋을 것 같았다. 깔끔하지 않나. 무엇보다 내가 상대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만.

- 구교환 배우가 주연한 대작들이 예고되어 있고, 혼자 연출하는 작품도 준비했던 걸로 아는데 공동 연출작으로 <너의 나라>를 찍게 된 배경은.

나는 뭘 하고 싶은가, 굉장히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 일단은 투자사의 손해나 기획의 제약에 위축되지 않는 작업, 우리가 주체가 된 장편영화를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광고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통장에 쌓인 돈도 알뜰히 모았다. 엄밀히는 자체 자본으로 영화를 찍은 게 학생 때 이후 처음이다. 짧은 트레일러나 단편 작업도 이래저래 지원받은 경우였으니까. 내가 찍는 방식에서 나올 수 있는 그림은 내 예상 안에 있으니 그 너머에서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생길 새로움도 기다렸다.

- 독립영화와 연극무대에 뿌리를 둔 두 배우, 그리고 코미디언. 세 사람의 앙상블이 어떻게 조화를 찾아나갔을지도 궁금한데.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모든 것이 많이 바뀐 작품이었다. 얇은 선 하나 가지고 들어가서 새로운 무언가가 실현될 때의 생기를 좋아한다. 내가 쓴 것보다 배우가 던진 게 좋으면 그 뒤를 다 바꾸기도 한다. 구교환 배우와 장도연 배우는 그걸 좋아하고 일단 재밌어하는 사람들이다. 같이 술 마시다가 발견한 어떤 포즈나 표정을 그대로 요청하기도 했다. 한편 약속된 지점이 중요하단 걸 나도 이번에 제대로 배웠다. 최소한의 논리를 세우고 중심을 잡는 과정에서 작품에 훨씬 밀도가 생겼다. 김소진 배우와 작업하면서 더 시너지를 얻은 부분이다.

- 대만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해외 로케에서의 작업 방식은 어땠나.

앞서 <로미오: 눈을 가진 죄>를 찍을 때 선배와 대만에서 촬영을 진행한 시간들이 참 좋았다. 2023년 추석 즈음 이야기를 착안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 같이 바로 대만으로 넘어갔다. 선배와 장소의 영향을 흡수하면서 썼다. 저예산인 작업에서는 적절한 장소에 영감을 얻어서 거기 맞는 스토리를 쓰는 방식도 필요하다. 한번은 육교 아래에서 보니 마치 가랑이처럼 갈라지는 길이 재밌어서 캐릭터에 맞게끔 관련 대사를 집어넣었다. 이렇게 때론 장소와 음악이 선행하고 캐릭터와 장면이 거기에 도킹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사냥꾼처럼 돌아다니면서 장면을 채집하기 시작한 지 약 1년 만인 지난가을 크랭크인했다.

<너의 나라>(가제)

제작 2X9HD 감독 이옥섭, 구교환 출연 구교환, 장도연, 김소진 배급 미정 개봉 2025년

<너의 나라>(가제)의 이 장면 이옥섭 감독은 교환, 도연, 소정 세 인물이 모두 치킨집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꼽았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세 사람이 본심과 표면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를 주고받는 신이다. “20분간 끊지 않고 촬영했다. 주어진 대사를 다 소화한 이후부터는 배우들이 각자 대사를 만들어나갔다.” 우선 열어놓고 모두 찍은 후 편집에 필요한 부분 위주로 컷을 쪼개 따고 들어간 경우다. “세 배우가 모두 <너의 나라>를 각자의 방식대로 파악하고 있고, 저마다의 해석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켜보는 감독 입장에서도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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