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한 옛 연인과 공통된 정서를 공유할 수 있을까.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이 정백연, 주동우 주연의 중국 멜로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다. 헤어진 옛 커플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은 수년 뒤 우연히 재회해 지나간 시간을 함께 되돌아본다.
작품이 갓 나왔을 때 봤다. 멜로영화를 아주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보고 울었다. 내가 울다니! (웃음) 당시 개인적으로 지친 상태였는데 원작을 보니 촉촉해지더라. 그게 사람들이 멜로를 보는 이유일 것이다. 특히 젠칭 아버지가 샤오샤오에게 쓴 편지에서 ‘좋다고 해서 항상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연들, 그들과 잘 헤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해보게 됐고 그렇게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제안을 받아들였다.
- 고민해보니 잘 헤어진다는 건 무엇인 것 같나.처음에는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며 아름답게 시작해도 헤어질 때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듯 경황 없이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생각보다 차분히 이별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항상 끝이 아쉽고 나중에 그 사랑을 돌이켜봤을 때 좋지 않게 추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먼 훗날 우리>에서는 10년 만에 재회한 옛 연인이 다시 과거를 추억할 자리를 마련한다. 그게 주요했다.
- <먼 훗날 우리>(가제)를 작업하며 지키고자 한 원칙이 있다면.
이 영화가 왜 리메이크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굳이 리메이크영화를 보는가라는 질문을 두고 고민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 작품이 좋아서 리메이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잊지 말자고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래서 원작과의 차별화보다는 내가 원작을 보고 좋았던 지점, 작품이 지닌 장점을 잘 살리며 로컬라이징하려고 노력했다.
- 실제로 베이징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젠칭(정백연)과 샤오샤오(주동우)가 상경해 자리 잡으려 노력하는 한국의 청년들과 겹쳐 보였다.
한국과 중국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점들을 감지해 영화의 미술에 반영했다. 작품의 배경인 2008년의 감성, 가령 당시 사회적 정세로 인해 미래를 불안해하던 청년들의 모습, 그러면서도 현재의 관객이 바라보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2008년의 흔적이 남은 로케이션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했고 서울 안의 풍경을 비출 때는 고층빌딩, 아파트의 밀집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대비를 명확히 하려 했다. 이것은 결국 은호와 정원이 연인 시절 마주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 원작 영화에서 과거는 컬러, 현재 신 중 일부는 흑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젠칭이 만든 게임과도 관련된 설정이다. 이러한 요소는 어디까지 반영됐나.
유지하고 싶던 부분이기에 그대로 가져왔다.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컬러감과 더불어 게임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다. 게임에 관해 수많은 정보를 조사했고 은호와 정원의 관계를 게임의 스토리와 잘 결부지으려고 했다. 이처럼 원작의 큰 뼈대는 거의 그대로 가져왔지만 연기와 같은 디테일한 부분들은 많이 바뀌었다.
- 은호, 정원 역에 구교환, 문가영을 섭외했다. 두 배우가 한 프레임에 들어왔을 때의 그림이 궁금해지는 신선한 조합이다.
구교환 배우는 개성 강하고 특이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기에 멜로 장르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소화할지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문가영 배우는 <사랑의 이해>에서 봤는데 내가 본 적 없는 톤으로 이야기를 하더라. 언젠가 같이해보고 싶던 차에 함께하게 됐다. 작품을 할 때 나에겐 배우가 정말 중요하다. 맡은 배역에 관해 각자 어떤 해석을 해왔는지가 내가 생각하는 배우와의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구교환, 문가영 배우가 은호, 정원에 관해 해석한 것을 듣고 연기로 풀어내는 것을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얼굴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구교환 배우는 특정 신에서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명확하게 캐치해내는 능력이 있고, 문가영 배우는 상황을 유려하게 끌고 가며 멜로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원작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만큼이나 가족의 서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샤오샤오는 젠칭과 헤어진 이후로도 젠칭의 아버지로부터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원작만큼 가족이 강조되진 않고 은호와 정원의 관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만 정원에게 집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고 그 집에는 당연하게도 은호와 은호의 아버지가 포함된다.
- 두 번째 장편이자 첫 리메이크작이다. 아직 후반작업 중이지만 그럼에도 촬영 과정에서 느낀 점을 공유해준다면.
이번에 <먼 훗날 우리>(가제)를 작업하며 느낀 건 배우가 맡은 배역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같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 잘했으면, 다음 타자로서 내 것을 보여주는 게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용기를 내 <먼 훗날 우리>(가제)에 참여했고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해낸 우리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후반작업할 때 들은 것 중 가장 기분 좋은 피드백은 ‘원작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리메이크작을 만드는 감독으로서 굉장한 쾌감을 느꼈다. 감독으로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끌어냈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임할 것이다.
<먼 훗날 우리>(가제)
<먼 훗날 우리>(가제)의 이 장면 “<먼 훗날 우리> 원작 영화를 한국에서 리메이크할 수 있었던 건 누구나 비슷한 사랑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만나고, 사랑하고, 틀어져서 헤어지는 건 모두가 겪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대단히 특별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이 헤어지는 장면을 찍고 편집할 때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이들을 보며 관객들이 지난 인연을 한번씩 떠올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