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은 좀비다.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유일한 좀비.” 네이버웹툰에서 2018년부터 2년간 인기리에 연재됐던 이윤창 작가의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하 <좀비딸>)은 간단하면서도 강렬한 로그라인을 가진 작품이다. 물론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좀비가 번창한 세상에 남겨진 부녀가 주인공인 ‘천만 영화’(<부산행>)도 존재한다. 그러나 웹툰 <좀비딸>은 보는 이들의 예상을 기분 좋게 반전시키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아빠 정환의 입장에서 좀비는 처치해야 될 괴생명체가 아니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할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자 자연스레 극의 톤도 바뀌었다. 그동안 <인질> <운수 오진 날> 같은 스릴러 장르만 연출해온 필감성 감독 또한 원작이 품고 있는 의외의 코믹스러운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밝혔다. 거기에 더해, 지난해 코미디 연기를 통해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조정석 배우가 주인공 정환을 연기한다. <좀비딸>의 결과물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그동안 연출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느껴진다.
스릴러도 좋아하지만 마음 한편엔 코믹 장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예전부터 <어바웃 어 보이> 등 워킹타이틀 제작 영화나, <미스 리틀 선샤인>과 같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관객 입장에서 예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영화들을 좋아했다. 사실 <인질> 때도 소극적으로 코미디를 시도하긴 했었는데(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완전 대놓고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 원작과 다른 영화만의 차별점은 무엇이 있을까.기본적으로는 최대한 원작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원작이 가진 부녀의 드라마만큼은 고스란히 가져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원작이 7권의 단행본 분량이라 영화의 러닝타임을 고려해 전략적인 압축이 필요하기는 했고, 그 결과 등장인물들에게 조금 더 적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됐다. 예컨대 원작이 아빠가 시골에서 딸의 증세가 호전되기를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듯한 뉘앙스였다면, 영화는 인물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어떠한 행동들을 펼치는 식으로 전개된다.
- 원작 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인기 고양이 캐릭터 애용이는 그대로 등장하는 것인지.
물론이다. 나 또한 애용이가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생각했기에 무조건 CG가 아닌 실사 버전으로 구현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여러 업체를 통해 오디션을 봐서 발탁된 치즈태비종이 애용이를 연기한다. 고양이가 다른 동물과 달리 트레이닝이 잘 되지 않는 동물이라서 걱정이 많았지만 아주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애용이가 선보일 연기를 기대해도 좋다.
- 좀비 장르에 관한 연출 면에선 어떤 새로운 점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미 유명한 한국 좀비물이 많은 상황이라, 관객 또한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거라 생각한다. 먼저, 원작을 본 분들은 알겠지만 좀비가 도시에 창궐한 모습은 초반 도입부에만 잠깐 등장한다. 그런 스케일이 큰 장면들보단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일상의 모습, 그 사이 삽입되는 호러와 코믹간의 경계가 모호한 장면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아마 이런 장면들에서 기존 좀비영화들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해서 기대해도 좋을 또 다른 새로운 부분은 좀비에 대한 묘사, 정확히는 그들의 동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론 좀비의 동작이 마치 안무처럼 보이도록 의도했다. 또 각 직업군의 특성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중간중간 소소한 웃음 포인트를 심어놓기도 했다. 우리 작품에 <부산행>을 포함한 여러 편에서 좀비 안무를 제작한 안무가님이 참여했는데, 그분이 <좀비딸>이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을 깨워줬다는 말씀을 하기도 했다. (웃음)
- 작품을 이끌어갈 부녀 역을 조정석 배우와 최유리 배우가 연기한다.
주인공 정환은 극에서 관객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적극적인 면모까지 보여야 하는 역할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떠오른 배우는 조정석 배우뿐이었다. 그 또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이거 나네”라고 했다고 해서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조정석 배우에게도 딸이 있어서, 영화 속 정환의 모습이 더욱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측면도 있었다. 최유리 배우는 <외계+인>에서 처음 봤다. 웃는 모습에선 보는 이들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는 귀여움이, 반대의 모습에선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얼굴을 가진 배우에게 좀비 분장을 시키면 영화적으로 상당히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두 배우 모두 내가 기대한 바 이상을 보여주어서 개인적으론 너무나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 이정은 배우가 연기하는 수아의 할머니 밤순 캐릭터도 궁금하다.
밤순은 극에서 만화 느낌이 나는 코미디를 담당함과 동시에, 관객들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도록 하는 리얼리티까지 제공해야 하는 캐릭터다. 연출자 입장에서 여러모로 소중한 캐릭터인데, 이를 연기해야 하는 배우가 느끼기엔 굉장히 부담스러운 미션이었을 수도 있다. 이정은 배우가 너무 잘해준 덕분에 영화가 담고 있는 감동적인 부분들이 잘 표현될 수 있었다.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의 이 장면 “영화 중반에 정환과 할머니, 애용이까지 모두 집 마당에 모여 앉아 좀비가 된 수아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있다. 주제적인 질문과 능청스런 코미디, 동화적 미장센, 뭉클한 가족애의 정서가 전부 녹아 있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은 스펙터클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큰 질문을 던진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가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환은 수아를 지키겠다는 선택을 내렸고, 이 영화는 곁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며 잠시 동안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