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김삼순의 일과 사랑, 성장 서사를 중심으로 새 편집을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 김윤철 감독
2024-09-13
글 : 조현나
사진 : 최성열

영화와 드라마를 1.5배속으로 시청하며 원작보다 유튜브 요약본을 선호하는 시청 방식은 현 세대에게 굳어진 지 오래다. ‘서사 몰아보기’를 추구하는 시청자들의 니즈에 맞춰 웨이브가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00년대 초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원작자의 손을 거쳐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로, 첫 타자는 김윤철 감독의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김삼순>)이다. 파티시에 삼순(김선아)과 그를 고용한 레스토랑 주인 진헌(현빈), 진헌의 옛 연인 희진(정려원), 희진의 주치의 헨리(대니얼 헤니)의 일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2005년 방영 당시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의 행보, 클리셰를 비켜간 연출은 19년이 지난 지금도 매력을 잃지 않는다. 9월6일 <내 이름은 김삼순> 감독판 공개를 앞두고 만난 김윤철 감독은 “편집을 위해 작품을 다시 보며 많은 것들을 새롭게 느꼈다”며 답변을 이어갔다.

- 영화가 아닌 드라마가 감독판으로 재편집돼 나오는 건 전에 없던 시도다. 웨이브의 ‘뉴클래식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 무척 놀랐다. SNS를 하질 않아 유튜브에서 <김삼순> 편집본이 회자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처음 감독판을 제안받았을 때도 “왜요?”라고 반문했다. 8부작으로 줄이는 게 도리어 원작을 훼손시키는 건 아닌지, 정말로 아직도 다들 <김삼순>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매번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물어봤더니 모두가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더라. 자기 후배, 친구들도 아직도 가끔씩 본다면서 말이다. 그때부터 추천받은 <김삼순> 유튜브 요약본 몇개와 원작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김삼순>을 다시 본 건 19년 만이다. 세번 정도 보고 나니 편집의 밑그림이 그려져서 하겠다고 했다.

- 어떤 밑그림이 그려지던가.

= 작품을 다시 보며 느낀 건 클리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용인됐지만 현재로선 문제가 될 행동들이 있었다. 가령 희진이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이유를 밝혔을 때 진헌이가 폭력적으로 대응한 것이 그에 해당한다. 물론 이건 19년 전에도 작가와 논의했던 부분이긴 하다. 그런 것을 들어내고자 했고, 8회차로 줄이기 위해선 김삼순의 일과 사랑, 성장 서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삼순이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소구되는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순과 진헌, 희진과 헨리 네 사람을 중심으로 이들의 관계성과 로맨스에 관해 다룬다면 클리셰는 덜어내고 훨씬 속도감 있게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편집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삼순이의 한라산 등반 장면이었다. 원작에서는 이 장면이 16부 중 12부의 엔딩이지만 감독판에서는 8부 중 7부의 엔딩이 됐다. 원작의 13~16화가 한 화로 압축된 것이다. 사실 삼순과 진헌이 재회한 이후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에필로그나 다름없다. 그래서 후반부를 대폭 압축하는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이런 그림이 그려졌기에 감독판 편집 제안도 수락할 수 있었다.

-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많이 덜어내야 했을 텐데 아쉽진 않았나.

=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특히 희진과 헨리의 관계가 그랬다. 처음엔 환자와 주치의의 관계로 소개됐다 갈수록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가는 디테일한 감정 변화를 많이 덜어냈다. 방영 당시 인기가 많았던 이영(이아현)과 현무(권해효)의 로맨스, 잠시 쉬어갈 틈이 되어준 일상의 풍경, 극의 톤을 밝혀줬던 영자(김현정)의 코미디 연기 같은 신을 눈물을 머금고 뺐다. 그럼에도 너무 달려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게끔 쉬어가는 신들을 적절히 배치하려 했고 화질과 음질도 많이 개선시켰다.

- 드라마 회차가 8~12부작으로 줄고 유튜브 요약본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이 늘었다. 이러한 콘텐츠 형식과 시청 방식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 1991년에 MBC에 입사했는데 그때 기준으로 미니시리즈의 회당 방영시간은 5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다 드라마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방영시간이 60분까지 늘어났다. 미국, 일본의 드라마는 10~12부작이 많고 방영시간이 회당 45분 안팎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측면에서도 대하사극이 아닌 이상 16부작을 채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서사를 다루는 방식이나 시청자의 집중 시간을 고려할 때 회차와 상영시간이 줄어드는 건 오히려 적절해 보인다.

- 19년 전 <김삼순>의 준비 과정부터 물어보고 싶다. 각본을 쓴 김도우 작가에게 먼저 협업을 제안했다고.

= 미니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하다 드라마 <눈사람>을 쓴 김도우 작가를 추천받았다. 정주행해보니 너무 잘 쓴 작품이었다. 형부와 처제의 연애를 다루기 쉽지 않았을 텐데 섬세하게 표현한 걸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어떻게든 같이 해야겠다’ 싶었다. <김삼순>은 인터넷 소설이 원작이다. 삼순이가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점, 직업이 파티시에란 점에 매력을 느꼈다. 소설을 바탕으로 김도우 작가가 시나리오 1~2부를 완성해 보냈는데 정말 재밌었다. 드라마타이즈가 워낙 잘돼 그때부터 급물살을 탔다.

- 삼순이는 흔한 유형의 여자주인공이 아닐뿐더러 첫 등장 신조차 평범하지 않다. 그런 삼순이에게 호감을 느끼고 삼순과 진헌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1~2화 연출에 힘을 쏟았다.

= 삼순이의 선자리를 훼방놓은 진헌이 남산으로 향하는 삼순이를 계속 따라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부터 삼순과 진헌, 희진이 케이블카를 타고 스쳐 지나가기까지의 시퀀스가 1~2화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여겼다. 특히 남산 신은 삼순과 진헌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촌스러우니까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도록 했다. BGM으로 쓴 니나 시몬의 <He Was Too Good to Me>는 진헌이 한 행동을 생각하면 반어적인 인용이다.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만 짚어낼 수 있을 요소들을 배치했다. 현장에서 삼순과 진헌이 투닥거리며 걷는데 둘의 케미스트리가 모니터를 통해 그대로 전달됐다. 그 시퀀스를 찍고 생각했다. ‘망하진 않겠구나.’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이기도 하다.

- 그 밖에 자주 회자되는 신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희진이 진헌의 변화를 감지하고 주차장으로 걸어나와 우는 신이다. 이 장편을 포함해 롱테이크를 자주 활용했는데, 인물의 감정선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만큼 현장에서의 자유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 기본적으로는 대본을 존중하되 해석의 기준은 감독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렇지만 배우들에겐 최대한 열어놓는다. 리허설은 반드시 하지만 배우의 애드리브나 의견이 좋을 경우 받아들이는 식이다. 물론 내 마음이 동해야 하지만 말이다. (웃음) 콘티를 짜고 숏을 설계할 때도 철저하게 배우의 연기와 호흡을 중심에 둔다. 배우가 걷다가 감정이 달라지거나 움직임이 생길 때 컷을 할 수 있고 때론 그게 필요하겠지만, 자칫하면 감정과 호흡이 죽어버린다. 끊고 다시 촬영하면 비슷한 감정은 나올 수 있지만 결코 같은 감정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롱테이크가 많아졌다. 롱테이크로 촬영한 또 다른 신 중 노래방 신을 좋아한다. 이번에 다시 편집하면서 김자옥 선생님을 뵈니 마음이 슬펐는데…. 당시에 대본 보자마자 가수인 남편 오승근씨에게 어떤 곡을 선곡할지 물어보셨다고 하더라. 그 과정을 거쳐 <울릉도 트위스트>와 <찰랑찰랑>을 고르신 거다. 감독판에는 한곡만 담겼지만 정말 에너지가 좋았던 신이다.

- 삼순이의 경우 다양한 각도의 클로즈업숏이 유독 많았다.

= 당시 드라마에서 자주 쓰던 바스트숏이 적긴 하다. 클로즈업은 일부러 과감하게 썼다.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에 왜곡되더라도 카메라를 인물 가까이에 붙이려고 애를 썼다. 보통 촬영감독들은 배우들이 밉게 나오니까 금기시하는데 다행히 배우가 흔쾌히 응해줬다.

-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김삼순>의 긴 생명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 TV드라마에서 잘 쓰지 않는 문법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긴 했다. 기법적으로는 앞서 말한 롱테이크 촬영이나 당시 오퍼레이터조차 많지 않았던 스테디캠을 자주 활용한 것도 포함한다. 마스터숏을 남용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연출에서의 클리셰도 많이 버리려고 했는데 예를 들면 여자배우들이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메이크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런 신들은 다 노메이크업으로 가자고 했다. 삼순이가 울 때 마스카라가 새까맣게 번지던 연출도 같은 맥락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실제 삶이 그러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 드라마는 다른데, 이 드라마는 진짜 같은데’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 문화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다. 20년 전엔 파티시에라는 직업조차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삼순이의 작업 공간, 작업 공정, 결과물을 디테일하게 보여줬고 드라마 방영 이후 디저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 고백하면 그땐 나도 잘 몰랐다. 당시엔 디저트 문화가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취재도 하고 관련 공부를 많이 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거란 확신은 있었다. 예쁜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건 어쨌든 유쾌한 일이니까. 디저트가 맛있어 보이도록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무척 공을 들였다.

- 김선아 배우와 <김삼순>에 이어 <품위있는 그녀>에서도 합을 맞췄다. 연출자로서 그가 어떤 힘을 지닌 배우라고 보나.

=김선아 배우와의 인연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아씨가 신인이던 시절, 단막극 <베스트극장-그녀의 화분 NO.1>을 같이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무척 좋았다. 그러다 한동안 김선아 배우가 <S 다이어리> 등 영화 작업만 했는데, 그걸 보고 다시 같이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철저하게 준비하더라. 살을 찌웠다는 그런 표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간 내공을 탄탄히 쌓았다는 게 느껴졌다. 선아씨는 자신의 본능과 직관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다. 물론 수많은 준비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배우를 좋은 연기자라고 여기는데 그 대표적인 배우가 선아씨라고 느낀다. <품위있는 그녀>의 복자는 삼순과는 다른 유형의 캐릭터지만 직관적인 연기가 필요하다고 여겨 같이하게 됐다.

- 김선아 배우 외에는 전부 신인으로 주연을 기용했다. 현빈 배우는 어떤 부분이 눈에 띄었나.

=당시 현빈 배우가 <아일랜드>에 출연했는데, 크게 주목받지 않았음에도 정말 잘생긴 루키가 있다는 소문이 방송가에 돌았다. 이후 미팅을 가진 순간이 지금도 기억난다.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거지만 예의 바르고 반듯하게 잘 자랐다는 인상이 강했다. 아무리 나쁘게 행동해도 사람들이 착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겠구나 싶은 느낌이랄까. 진헌 또한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캐스팅했고 결과적으로 정말 잘해줬다.

- 배우 정려원과 대니얼 헤니 역시 신선한 캐스팅이었다.

=려원 배우에게도 했던 이야기지만 당시엔 그가 가수였다는 걸 정말 몰랐다. 려원씨를 본 건 시트콤 <프란체스카>에서였는데,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가 눈에 들어왔고 미팅했을 때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미팅 끝나자마자 바로 같이하자고 했다. 대니얼 헤니씨가 제일 사연이 많다. 정말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김선아 배우의 매니저가 다른 배우의 광고 촬영장에서 헤니씨를 보고 내가 찾는 배우라는 직감이 왔다더라. 너무 잘생기고 영어도 잘했다고. 그래서 만나봤더니 정말 잘생겼었다. (웃음) 경험은 없지만 연기 욕심이 있어 브로드웨이에서 연기 워크숍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미국에 가야 한다길래 연기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자기가 어떻게 자랐는지부터 쭉 들려줬는데, 어릴 때 농구 선수를 꿈꾸다 그만뒀다고 했다. 그래서 후반부에 농구 장면이 들어간 거다. 확실한 개런티가 있어야 한국에 올 수 있다길래 과감히 캐스팅을 했고, 그렇게 처음 촬영한 신이 희진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 희진을 안아준 신이다. 예전엔 내가 배우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일을 하다 보니 결국 배우는 발견하는 거였다. 젊을 땐 상대적으로 눈이 밝았고, MBC가 믿고 맡겨줬기에 좋은 배우들을 운좋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지금은 다수의 드라마가 사전 제작되지만 20여년 전엔 실시간으로 촬영해 방영하는 것이 당연했다. 작품의 인기를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을 텐데.

= 딱 한번 있었다. 항상 촬영과 편집의 반복이라 집에 들어갈 새가 없었는데 우연히 <김삼순> 12화의 한라산 장면을 집에서 보게 됐다. 한라산 정상에 현빈이 등장하자마자 아파트 창문을 통해 비명이 들렸다. 월드컵 때처럼 말이다. (웃음) 그게 개인적으로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체감한 유일한 순간이다.

- 드라마가 종영한 이유 삼순과 진헌의 결혼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삼순은 차라리 맞선남과 연애를 했어야 한다는 바람도 언급되곤 했는데, 삼순과 진헌의 미래를 생각해본 적 있나.

= 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의 결말까지 고려할 때 이런 경우 대체로 헤어지지 않나라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삼순이가 맞선남을 만나진 않았을 것 같다.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지 않았을까. 결국 결혼은 안 했을 것 같다.

- <김삼순>을 보고 자라지 않은 세대에게도 여전히 작품이 소구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삼순이 주체적이고 강렬한 자아를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런 자아를 가진 캐릭터는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원한다. 그리고 삼순, 이영과 같이 여자주인공들이 각자의 성적 욕망에 관해 지상파 드라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한다는 건 무척 파격적이었다. 그런 인물의 솔직함 또한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삼순>이 유효한 이유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녀 관계에서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김삼순>이 나의 첫 미니시리즈였다. 19년간 안 보던 작품을 보니 고향집에 돌아와 세간살이를 실펴보는 느낌이 들었다. 대단히 잘 지은 집도 아니고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튼튼하게 지었구나 싶다. 내게 이런 생각을 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그래서 <김삼순> 감독판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주실지도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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