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우리 사진을 지우는 것만이 답인가요?”, 중고등학교 교사 11인이 말한 교실 속 딥페이크 성범죄
2024-10-04
글 : 이자연

2019년 2월,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에 개설된 단체 채팅방을 통해 불법 음란물을 생성하고 거래한 N번방 사건이 전국을 뒤덮었다. 미성년자 성착취, 협박, 영상물 무단 유포, 불법 촬영물 대규모 공유 등 인면수심의 범죄가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과거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의 디지털성범죄가 고개를 들었다. 가족, 친인척, 학교 선생님과 친구 등 주변인의 이미지를 무단 도용한 범죄자들이 포르노 이미지를 생성하고 그것으로 금전 거래까지 도모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의 쟁점은 10대 청소년 가해자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경찰청 보고에 따르면 지난 1월1일부터 9월25일까지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는 총 387명, 그중 10대가 324명으로 가장 높은 비중인 83.7%를 차지했다. 10살 이상 14살 미만의 촉법소년도 66명(17.1%)이나 된다. 5년 전, 디지털성범죄의 피해자가 10대 청소년으로 내려온 것을 넘어 이제는 가해자까지 학교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는 사람의 친근한 얼굴을 인간존엄을 짓밟는 포르노로 활용하는 왜곡된 성관념은 무너진 공동체의식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니면 짧고 자극적인 영상 범람에 길들여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이면이 뒤늦게 드러나는 것일까.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인문학의 결핍이 참혹한 또래 문화를 만든 것일까. 죄의식 없는 놀이터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 이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씨네21>은 7개 중학교, 4개 고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현재 10대 청소년의 비디오 리터러시를 들여다보았다. 이 세대가 공통적으로 지닌 어떤 문화적 태도가 딥페이크 기술을 만나 거대한 범죄를 낳았는지, 어떻게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에 실패했는지 교실 내의 풍경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기사에 인용된 모든 응답자의 발언은 익명으로 기재한다.

급변한 디지털 환경을 따르지 못하는 교육

현재 1020세대는 영상을 편리하게 활용하는 만큼 그것의 제작에도 매우 익숙하다. 유튜브에서 공부 타임랩스, 등굣길 겟 레디 위드 미, 시험기간 브이로그 등 특정 주제가 암묵적으로 10대 크리에이터의 주요 장르로 인식될 만큼 영상 제작의 진입장벽은 낮다. 오직 여가 시간의 환경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22년 서울시교육청은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수업을 늘리기 위해 중학교 학생과 교원 전원에게 1인 1스마트기기를 지급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스마트기기가 같은 ‘교실 구성원 모두에게’ ‘공식적인 루트로’ ‘동등하게 보급’되다 보니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활동과 온라인 세계의 진입은 장벽 없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스마트기기 보급 사업은 2020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점으로 디지털기기 보유가 힘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부분 지급되었던 것을 바탕 삼아 발전했다. 지자체 교육청은 모든 청소년이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지만, 기술과 기기 활용에 뒷받침되어야 할 윤리적 교육의 부재는 의도와 달리 범람하는 영상에 청소년들을 무차별적으로 노출시켰다.

틱톡, 릴스, 쇼츠 등 짧고 임팩트 강한 숏폼 콘텐츠가 아이들의 여가 시간을 채운다면, 스마트기기를 동반한 디지털 교육 환경과 영상 제작 과제 등이 아이들의 수업 시간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를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은 일종의 생존 능력이자 자기 표현 방식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이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은 타당하다. 다만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학생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미 제작된 교육부 영상을 시청하는 데 그쳐 중요도 높은 기술의 이면을 간과하고 만다. 중등교사 A씨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부족의 핵심을 예산 문제로 짚었다. “예산이 넉넉하면 반에 한명씩 외부 강사를 초청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눈맞춤하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그런 학교가 많지 않다. 대부분 특정 주제로 제작된 영상을 전 교실에 송출하는 식이다. 이때 교사들도 아이들이 교육 영상을 보도록 지도하는 데 그친다. 각 교실 선생님을 따로 교육하여 강사 양성에 힘쓰면 좋겠지만, 생명존중 교육, 자살 예방, 안보 교육 등 법정 교육이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방적인 교육 방식도 문제지만 교육 콘텐츠의 내용도 적극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의무교육 영상을 잘 안 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안 봐서 다행이다 싶은 아쉬운 수준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디지털성범죄 교육 영상에 피해 사례를 재연하는 짧은 드라마가 포함돼 있는데 아이들의 집중을 유도한 것인지 피해 내용을 너무 자극적으로 다루었더라. 아이들도 주요 메시지보다 재연 영상만 기억할 것 같았다. 디지털성범죄 예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직면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현실적으로 살피고 적용하는 과정이 시급하다.”(중등교사 B씨)

성인지감수성 격차가 낳은 분열

한겨레 신소영

디지털성범죄 교육, 정보 교육 등이 (간신히라도) 이뤄지지만 그것을 학습하는 사람이 마음을 닫으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총 11개 중고등학교 교사를 취재한 결과 한곳을 뺀 10군데에서 “디지털성범죄 수업의 남학생·여학생의 반응이 완전히 갈린다”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중등교사 C씨는 “교실에서 성범죄 주제를 다룰 때 여학생들이 발언하는 경우가 이전보다 더 많아졌지만 신난 듯 이야기하는 남학생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라고 말했다. 교실 내 발언권이 기울어진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부모 대상의 패륜적 표현이나 성적 농담을 큰 목소리로 구전하는 남학생들 모습에 여학생들이 직접 저지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디지털성범죄 교육 시간에 “피해자가 여성이라고 말하는 게 불쾌하다”는 남학생들의 집단적 불만은 곳곳에서 자연스레 제기된다. “젠더 이슈, 성평등 등을 거론하는 순간, 선생님이나 강사가 있어도 적대감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다.”(중등교사 D씨)

이번 취재를 계기로 몇몇 응답자 교사들은 교실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를 학생들과 토론하고 후일담을 전해주기도 했다. 남녀 학생의 판이하게 다른 반응은 여기서도 동일했다. 중등교사 E씨는 “성범죄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여학생들이 ‘범죄’에 무게를 싣는 반면, 남학생들은 ‘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학생이 전반적으로 무성한 소문과 뉴스를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면 남학생은 문제점을 비난하면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딥페이크 범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는 교실 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의견의 귀결 과정에선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또래 피해자의 상황을 공감하는 측면이 있는 한편 “지인으로 딥페이크 합성을 해봤자 성적으로 흥분되지 않는데 쓸데없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도덕적 기준을 성별로 나누어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응답자인 교사들이 이러한 인식 차로 인해 딥페이크 성범죄 교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요컨대 각 학생의 성인지감수성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을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

한겨레 정용일

오직 아이들만 문제일까. 청소년이 가해자가 되고, 또 미성년 피해자가 속출한 데에는 분명 어른들의 책임도 있다. 고등교사 F씨는 “OTT에 범람하는 선정적인 콘텐츠가 미성년자 유저 비율이 높은 숏폼 플랫폼에 흘러들어오는 상황에서 요즘 아이들은 이상한 것을 많이 보고 자란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튜브는 저작권 침해같이 사유재산 침해로 이어지는 문제는 적극 규제하면서 미성년자에게 유해한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는 왜 방치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미비도 지적됐다. 현재 학교마다 학교폭력, 교내 도박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즉각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스쿨 폴리스 제도가 있다. 인근 관할 경찰서에서 각 학교를 전담하는 경찰을 배정해 사건을 집중 조사하도록 마련한 제도다. 이에 대해 중등교사 G씨는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스쿨 폴리스가 아이들의 문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결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미수 사건을 맞닥뜨렸던 교사 G씨는 “경찰에서 진범을 잡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거나 피해자에게 상황을 반복해 진술하게 하는 모습 등이 총체적으로 불신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청소년의 죄를 따져 묻기 전에 아이들이 선택하지 않은,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에 어떤 구멍이 있는지, 그런 위험이 방치된 숨은 이유는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

에필로그

<씨네21> 취재에 응한 한 교사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관한 토론 중 한 학생이 <씨네21>에 꼭 보내고 싶다고 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N번방 사건에 대한 반응과 비교했을 때, 이번 딥페이크 사건에는 사람들이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비슷한 문제라고 무뎌진 것일까?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고 있나? 아무도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사진을 보면서 과거를 추억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조용히 지운다. 어른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