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누구나 아는 음식이 정답이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감독·배우 마쓰시게 유타카
2024-10-18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음식 드라마의 핵심은 어쩌면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요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화면 너머로 맛의 감동을 전하는 것은 먹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기 때문이다. <심야식당> <와카코와 술> 등 식사의 일상성을 질료 삼은 동시대 일본 드라마 중 <고독한 미식가>가 지금까지도 큰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도 ‘잘 만드는’ 일보다 ‘잘 먹는’ 일에 있을 것이다. 그 행위성의 예술에 통달한 자가 바로 ‘고로상’, 마쓰시게 유타카다. 지난 12년간 밥 한끼에 우롱차를 곁들이며 혼밥의 매력을 설파했던 그는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에 이끌려 감독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언어를 넘어선 소통을 탐하는 진중한 배우이자 젊은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멋진 어른. 뽀얀 국물처럼 깊고 온화한 마쓰시게 유타카의 말들을 한 그릇 가득 담았다.

- 주연배우를 넘어 직접 각본과 연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현재 일본의 TV업계가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젊은 스태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큰 자극이 될 만한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도쿄!>에서 인연을 맺었던 봉준호 감독님에게도 편지를 보내 부탁드렸지만 일정 문제로 아쉽게 불발되었다. 어쩔 수 없으니 내가 해야겠다 싶었다. 며칠 만에 시놉시스를 완성하고 주변 스태프들에게 보여줬더니 고맙게도 큰 신뢰를 보여주더라. 이후 TV도쿄, 도호 등의 제작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실현할 수 있었다.

- 프랑스 파리, 일본 나가사키, 한국 거제도를 배경으로 삼았다. 로케이션 선정 기준은 음식이 먼저였나, 플롯이 먼저였나.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목표는 어드벤처영화다. 어떤 사고가 발생해 고로가 한국에 표류하게 되는 전개가 어떨까 싶어 지리적으로 가까운 거제도와 나가사키의 고토 열도를 선택했다. 또 다양하고 이국적인 풍경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음식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 ‘뽕, 뽕, 뽕’ 하면서 화면이 3단계로 멀어지는 <고독한 미식가>의 시그니처 장면이 있다. 어디서 찍으면 좋을까 하다가 에펠탑이 떠올랐다. 주변 스태프들에게 말하니 다들 절대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웃음) 다행히 항공사와 제휴해 파리를 영화에 담을 수 있었다. 지역간의 거리감이 다채로워지며 이야기가 더욱 다이내믹해졌다. 이 지점에서 수입 잡화상이라는 고로의 직업이 무척 효과적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깊게 다뤄지지 않는 그의 직업적인 면모를 영화에서는 세계를 누비는 이야기의 동력으로서 확인할 수 있다.

- 영화에서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의 두 가지 변화가 감지된다. 재료의 세계를 탐구하며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체험하게 되는 점,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일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그대로 옮겼다면 아마 110분 내내 먹기만 했을 거다. (웃음) 제작을 시작한 때가 마침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던 즈음이었다. 그간 우리 작품이 거쳐간 음식점들이 하나둘 폐점하는 상황을 보며 진심으로 격려를 보내고 싶었다. 제작 당시 중요한 지표로 삼은 작품이 이타미 주조 감독의 <탐포포>다. 쇠락한 라멘 가게를 부활시키기 위해 함께 애썼던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라멘을 먹는 장면을 이번 영화에 꼭 담고 싶었다. 고로가 홀로 담담하게 거리로 나서는 마지막 장면은 4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찍었다. 그는 다시 또 다른 음식을 찾으러 길을 나설 것이다. 고로와 우리가 모두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 고로의 독백은 전부 보이스오버로 처리된다. 대사를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그에 맞는 섬세한 표정을 구축하는 연기에 감탄했다.

모든 소통이 언어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장면을 전부 글로 적는 시나리오 작업에도 가끔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대사를 읊는 것만이 연기의 전부가 아니다. 유재명 배우와의 장면을 예로 들고 싶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풍부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대사 없이도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리고 나도 그것을 받았다. 이러한 것들이 이루어지는 게 연기의 기본이다. 마음을 전하는 서로 간의 캐치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 한국 음식 중 비교적 서민적인 메뉴인 황태해장국과 고등어구이를 선택했다. 생각해보면 드라마에서도 고로가 화려하고 비싼 음식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다.

고로는 흔히 생각하는 미식가와는 거리가 있다. 길을 걷다 훌쩍 들어간 가게의 돈가스 같은 평범한 음식에서 감사함을 느낀다. 그 순간이야말로 <고독한 미식가>를 성립시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때다. 한국에 다른 맛있는 음식과 식당도 많지만 이번에는 거제도 구조라해변의 황태해장국 식당을 선택했다. 고로가 도착한 항구로부터 불과 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이렇게 맛있는 해장국이 지척에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으면 했다. 누구나 아는 음식이기에 비로소 정답이었다.

- 시즌11이 막 방영을 시작했다. 제목도 <저마다의 고독한 미식가>로 변화를 줬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행위는 남녀노소 만국 공통의 행복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 모습들을 모아 <고독한 미식가>적인 것을 한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각화의 게스트가 가게에 들어서면 뜬금없이 이노가시라 고로가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다. 그렇다고 서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라 각자 고독하게 맛을 음미하는 구성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내가 각본부터 제작까지 맡았다. 최종적으로는 내년에 개봉할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로 전개가 이어질 가능성도 고려하며 제작했다.

- 음식과 식사는 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부 모아놓은 것과도 같다. 일본의 식사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독한 미식가>가 한국을 비롯한 해외 여러 국가에서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고독한 미식가>가 한국이나 중국, 대만에서 인기 있다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사실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국이나 대만에서 촬영한 특별편에서는 ‘음식이 맛있다, 그리고 먹는다는 행위가 행복하다’라는 감각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어쩌면 동아시아가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인 만큼 고로가 먹는 모습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젊은 관객들이 주목해준 점에 굉장한 영예로움을 느낀다. 다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은 없기에 그저 한국인 관객도 즐길 수 있는 부분을 넣어야겠다는 사명감만을 가지고 영화 작업에 임했다.

- 감독으로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 있나.

마침 영화제를 찾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님의 작품으로 데뷔한 이래 영화계에 40년가량 몸담아왔다. 그간은 연기자로서 작품 제안에 응하는 형식으로 일해왔지만 직접 연출을 해보니 작품 전체를 조망하며 영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정말 재미있더라. 다만 이번 작품은 <고독한 미식가>라는 뛰어난 콘텐츠의 힘을 빌렸기에 온전한 나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많이 격려해준다면 더 큰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무엇보다 젊은 제작진에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한국의 뛰어난 영화 환경의 힘을 빌려 한국의 제작진과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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