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우>는 모든 것을 잠식시키며 시작한다. 갑작스레 홍수에 잠긴 세상은 고요와 함께 공포를 몰고온다. 돛단배에 겨우 몸을 피한 고양이는 그곳에서 여우원숭이, 카피바라, 새, 리트리버 등 다양한 종의 동물을 만난다. 생존을 위한 동물들의 분투기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이 대학에 재학하던 201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에 키우던 반려묘를 주제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 뒤에 장편으로 확장한 게 지금의 <플로우>다. 홍수, 그러니까 물은 크게 두 가지 상징을 지닌다. 먼저 고양이의 두려움 그리고 타인과 함께 협동하며 뒤섞여 살아가는 삶. 두려운 존재를 앞에 두고 다른 동물들과 맞춰나가야 하는 고양이의 상황을 말해보고자 했다. 주인공을 고양이로 정한 건… 사실 나는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 (웃음) 하지만 내 성향은 고양이에 가깝다. 혼자 있고 싶어 하고 독립적이고. 그런 삶의 태도가 닮아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 같다.”
본래 대화 없는 작품을 선호하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이번 작품을 연출할 때에도 자연스레 무성영화적 형식을 택했다. 말이 없어진 세상은 인간의 존재가 사라지고 문명의 흔적만 남은 <플로우> 속 세계가 추구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구현한다. “영화이기 때문에 말이 없어도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없으니 인간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조명, 편집, 음악 등 다른 장치가 그 여백을 채우며 더 풍성해진다. <플로우> 속 동물들은 현실주의보다 자연주의를 따른다. 이들의 몸짓, 표정, 발걸음 하나 그들의 본성 그대로 구현하려 했다. 동물들이 인간처럼 두발로 걷거나 인간의 옷을 입지 않은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미 현실에서도 많은 동물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감정을 전달하지 않나. 이들에게도 충분히 유머, 슬픔, 연민이 있다. 오히려 대화가 사라질 때 비로소 순수한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인공 고양이 곁에는 그와 연결된 눈에 띄는 관계들이 있다. 먼저 떼를 지어 다니는 새들은 오직 내집단만 바라본다. 다른 종을 향한 관심이 일체 없다. 하지만 그중 한 마리만이 위기에 처한 고양이에게 다가간다. 군중을 따르지 않는 새.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가치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새. 다른 이들에게 버림받더라도 고양이를 지켜낸 그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다른 종 사이의 갈등이 등장하는 만큼 종다양성을 뛰어넘는 지지와 공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새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웃음) 다만 새와 고양이 사이에는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듯 닮았다. 스포일러를 피해 말하자면 새는 고양이가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내가 느낀 고통을 다른 사람이 지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순간. 고양이와 새가 그것들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플로우>에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각기 다른 사정과 입장만이 존재한다. <플로우>를 보다 보면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이가 시나브로 애틋해져 평온을 염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