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공포를 창작으로, <바늘을 든 소녀> 마그너스 본 혼 감독
2024-10-18
글 : 박수용 (객원기자)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덴마크의 연쇄살인범 다그마르 오베르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바늘을 든 소녀>는 임신 중절에 실패하고 사생아를 낳은 가난한 여인 카롤리네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다그마르의 악행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제77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도 무도한 악행과 시대의 고통 속 자기결정권을 상실한 한 인생의 파멸에 대한 집요하고도 충격적인 묘사로 뜨거운 입소문을 모았다. 실제로 마주한 마그너스 본 혼 감독은 쾌활하고 단단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위한 최적의 수단을 손에 쥐고야 마는 야심가였다. 칸영화제에서 미처 보지 못한 <아노라> 를 그날 밤 회차 상영으로 보고 싶다며 부산을 제대로 즐길 채비를 하던 그에게 영화의 여러 선택을 물었다.

- <바늘을 든 소녀>로 처음으로 시대극에 도전했다. 한 세기 전의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자 한 이유가 있었나.

다그마르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자식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충격이자 공포였다. 다만 나는 이 공포를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내 안에 담아두는 대신 창작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점차 여러 맥락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악에 짓눌리던 사람들이 머지않아 악의 표정을 짓게 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 현재 폴란드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인 여성 신체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한 문제였다.

- 폴란드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지금껏 영화를 찍어온 것으로 안다. 다만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의 경우 폴란드와 덴마크 프로듀서들이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나와 오래 작업해온 폴란드 스태프들과 함께 폴란드에서 모든 회차를 촬영하되 덴마크 프로듀서들의 지혜를 빌려 덴마크 문화와 영화의 질감을 구현할 수 있었다. 더불어 포스트프로덕션은 스웨덴에서 진행했다. 이 이야기의 특성상 투자받기 쉬운 영화가 아니다. 유럽의 활성화된 공동제작 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큰 기쁨이다.

- 모든 장면을 폴란드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나는 코펜하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웃음) 1919년의 코펜하겐을 닮은 장소들을 폴란드 내에서 찾아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정확히 당신이 말한 시선 그대로 보려 했다. 코펜하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의 시선 말이다. 영화는 역사 수업이 아니다. 지리적 고증보다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우울한 도시라는 상황적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우선과제였다. 코펜하겐은 평지로 이뤄진 도시이지만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높은 언덕과 계단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곳이 100년 전의 도시라는 것을 정서적인 방식으로 설득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 거만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좋은 유의 거만함이라 생각한다. 일단 코펜하겐의 시가지는 너무 복잡해서 촬영이 쉽지 않다. 폴란드의 소도시에서 촬영하는 것이 더욱 용이하고 비용이 덜 들기도 한다.

- 흑백 촬영도 같은 이유로 인한 선택인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풍경은 대부분 흑백사진을 통해 전해된다. 이 영화 또한 그 자료들의 룩과 질감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프로덕션의 한계로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비용을 아껴야 했다. 먼저 흑백으로 촬영했을 때는 세트나 소품 등 미술의 색채에 투자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영화 중반의 공중숏에 담긴 빽빽한 건물 지붕은 로케이션이나 풀 CG 대신 미니어처 모형을 제작해 촬영했다.

- 여러 장면의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강렬한 충격을 자아낸다. 세 등장인물의 표정이 중첩되고 왜곡되는 첫 시퀀스나 동공을 바짝 클로즈업하는 몇 차례의 인서트숏이 대표적이다.

첫 시퀀스의 경우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정서를 반영하는 듯한 기괴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영화나 당시 실험영화의 스타일을 차용했다. 영화 중반경 약에 취한 카롤리네가 보는 환각으로 구상한 장면이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강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오프닝에 한번 더 삽입했다. 인물들의 얼굴이 서로에게 들어왔다 나가는 움직임이 영화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변하는 상대방의 얼굴을 발견함과 동시에 상대의 추한 모습을 자신의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다그마르는 극 초반에는 친절한 얼굴을 하지만 곧 악마의 표정을 짓게 되고, 카롤리네도 다그마르의 표정을 일부나마 갖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중간에는 뤼미에르 형제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직접 오마주한 숏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레퍼런스를 꼭 알아챌 필요는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 공포를 추동하는 장치로 기괴한 음악의 사용도 도드라진다.

영화 내부의 시대와는 동떨어진 가장 현대적인 음악을 원했다. 음악을 맡은 퓌스 메리는 이번에 영화음악에 처음 도전했으며 실제로 추구하는 음악은 이 영화보다 더욱 거칠고 실험적인 노이즈 뮤직이다. 그에게는 오히려 장면이나 인물의 서정을 전달하는 멜로디 테마를 만드는 것이 더 흥미로운 작업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 카롤리네와 다그마르의 관계에는 동지애나 가족애와도 비슷한 오묘한 감각이 존재한다. 다그마르의 어둠을 조금씩 인식하면서도 카롤리네가 이러한 유대를 쌓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멜로드라마로 시작해 점차 호러로 발전하는 구성을 의도했다. 카롤리네는 자신이 기댈 수 있고 자신을 정서적으로 돌보아줄 수 있는 엄마나 큰언니 같은 사람을 원한다. 마음속으로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애써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 대가 또한 치러야 한다. 일종의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인으로의 성장은 곧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깨닫는 과정이다. 악에 눈감으며 다그마르의 집에서 지내는 것은 편안하겠지만 탈출을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 바늘이 등장하는 어떤 충격적인 장면 이후로 영화의 스토리와 윤리적 질문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뀐다. <바늘을 든 소녀>라는 제목은 계속 그 장면에 관객의 기억을 묶어놓는 것만 같다.

물론 그것이 가장 큰 바늘이지만 영화 속의 바늘은 총 세번 등장한다. 한번은 재봉사 카롤리네가 사용하는 연약한 바늘로, 또 한번은 마약을 복용할 때 쓰는 주삿바늘로. 사실 제목에서 가장 원했던 건 일종의 동화 같은 느낌이다.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릴 수 있도록 지은 것인데, 한국어로도 잘 전해졌을지는 모르겠다. (웃음) 이 작품을 백마 탄 왕자와의 신분 상승을 꿈꾸다 실패하고 사탕 가게의 마녀에게 홀리는 꿈 많던 소녀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 악행에 대한 다그마르의 개인적인 이유나 그의 전사가 충분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실존 범죄자에게 변명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이유인가.

그의 동기에 대해 간단한 답을 내놓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분명 문제 해결을 위해 그런 행동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은 확실하다. 다만 그녀 스스로는 어떤 임무를 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 같은 슈퍼히어로영화의 악인이 떠오른다. 다만 절대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다그마르의 이야기가 아닌 카롤리네의 삶과 선택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주변 인물들의 세세한 감정 변화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게 되면 영화가 카롤리네를 놓치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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